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인생에 있어 행복은 뭘까요?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요건 중 하나는 분명 돈일 테고 그 다음은 건강? 그럼 돈과 건강을 모두 가지면 행복한 사람일까요? 이런 의문점의 답을 내려주는 이가 있습니다. 올해 남한생활 7년차가 되는 68세 이경희(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이경희: 욕심 없이 살다 보니까 항상 감사하죠.
평양이 고향이지만 함경북도로 추방돼 1999년 탈북한 이경희 씨. 중국에 가서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가족들과 토굴생활을 합니다. 그러가다 2006년부터 남한에서 생활하고 있는데요.
이경희: 우리 조선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계절이 있어서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요. 가을, 봄이 있고요. 그리고 겨울엔 추워야 벌레도 많이 없잖아요.
지금은 이렇게 편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가 북한을 도망치듯 떠나올 땐 지금 생각해도 끔찍할 정도로 춥고 배고픈 계절이었습니다.
이경희: 그때는 먹지 못하고 추우니까 장마당에서 얼어 죽는 사람도 봤어요. 두만강 연선은 북이니까 여기 보다 한 달은 더 추워요. 넘어 올 때 강에서 나오니까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어요. 아직도 잊히질 않아요. 여기 한강 넓이만 한데 남편한테 매달려서 헤엄쳐 강을 딱 넘어 서니까 심장이 아플 정도로 춥더라고요. 여기는 그렇게까지는 안 추운데 거기는 북쪽이니까 추워요.
건강이 안 좋아 오래 병원생활을 하고 거둥이 불편한 이 씨가 날이 추워지면서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했지만 괜한 걱정입니다.
이경희: 여기는 천국이죠. 땔감이고 먹고 입는 것 걱정이 없죠. 지금 이불이야 다 있는 것이고 추우면 방 덥히는 것을 해서 뜨끈뜨끈해지고 밖에 나갈 때는 두툼한 동복에 따뜻한 신발 신고 나가면 되고요. 여기는 걱정 없어요. 겨울이라도
기자: 북한에서나 중국에서는 월동준비 많이 하셨죠?
이경희: 북한에서는 땔감 때문에 힘들었죠, 먹을 물도 없고 하니까요. 그런데 중국에서는 산에서 숨어 살다 보니까 땔감 걱정도 없고 괜찮았어요.
기자: 중국에서 보다 북한에서 더 힘드셨군요.
이경희: 북한에서는 먹는 것 입는 것 다 없으니 힘들었죠.
기자: 요즘은 추워서 집에만 계십니까?
이경희: 아니요. 앞산에 한 번씩 갔다 옵니다. 가면 운동하는 사람이 많아요. 뇌경색을 쓰러졌던 사람이라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 맞으면 안 되니까 낮에 더울 때 정오에 나갔다 옵니다.
이제 70세 고희를 바라보지만 목소리만 들으면 나이를 짐작하기 힘듭니다. 왠지 모르게 이 씨에게선 여유로움 또는 평화로움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그래도 혼자 운동도 가고 하지만 한 때 갑자기 쓰러지면서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을 맞기도 했습니다. 살만 하니까 위기가 찾아온다고 딱 그런 셈인데요.
이경희: 많이 회복 됐어요. 그때는 걷지도 못하고 재활 병원에서 1년을 있었습니다. 병원 에서 3개월 재활병원에서 7개월 있었어요. 아프니까 힘든 것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때는 손가락도 까딱 못했는데 재활치료 받으면서 조금씩 감각이 오니까 감사하더라고요. 북한에 있었더라면 벌써 죽었죠.
원래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 산속에 숨어 살면서도 크게 아프지 않던 이 씨가 남한에 가서 잘 먹고 큰 걱정 없이 살다가 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을까? 이경희 씨는 이렇게 한 번 크게 아프고 나서야 뭔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경희: 북한에서는 돈을 벌어도 내 것이 아니고 국가 일을 하면 나라 돈이잖아요. 여기선 벌면 다 내 돈이라는 생각에서 밤낮없이 일했어요. 돈 좀 벌어보자고요.
기자: 몇 년을 그렇게 일하셨어요?
이경희: 3년을 낮에는 호텔 청소하고 밤에는 사우나 매점일 하고요. 쉬는 날 없이 계속 일했어요. 그러다가 쓸어졌어요. 그때 벌어 놓은 것을 1년 병원생활 하면서 다 썼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일어서 걷고 말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죠. 입을 것 있지 먹을 것 있죠. 너무 행복해요.
다시 혼자서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한 것에 하루하루 살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는 이경희 씨.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걸까? 완전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듯합니다.
이경희: 자유롭게 하고 살아요. 난 텔레비전도 많이 안 봐요. 시력이 나빠질까봐 많이 안 봐요.
기자: 그러면 집에서 뭐 하십니까?
이경희: 라디오도 잘 안 듣고 탈북자 모임 있으면 갔다가 운동 갔다가 그래요. 집에 있을 때는 책도 좀 보고요. 텔레비전은 전자파 나오고 하니까 잘 안 봐요.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삽니다. 아프고 나니까 모든 게 감사해요. 처음에는 돈을 벌어 잘 살자고 욕심을 부렸는데 지금은 좀 있으면 베풀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뭐가 생기면 혼자 먹고 싶지 않고 나눠먹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래요.
남편은 자기보다 한 살이 더 많은데 아직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노동일은 안 해본 사람인데 남한에서 자기 몸 돌보지 않고 가족을 위해 일하는 남편이 고맙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에는 특히 신경을 쓰는데요. 시장에 가서 찬거리를 사는 것도 이 씨의 하루 일과 중 하나입니다.
이경희: 매일 매일 사다 먹어요. 매일 나가서 배추 한포기 사고 무 하나 사고, 내가 고 지혈 증이라서 고기는 안 먹지만 우리 신랑은 힘든 일을 하니까 고기 안 먹으면 안돼요. 닭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다 잘 잡숴요.
언론보도에서 남한 사회 일자리, 청년 실업자 문제가 심각하다. 대학 나온 고학력자들이 일자리 부족으로 놀고 있다 이런 기사가 나올 때마다 이 씨는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이 씨 부부는 정부에서 나오는 돈으로 기본 생활은 되지만 그래도 일할 수 있을 때 일해서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겠다며 젊은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경희: 일자리가 왜 없어요. 쉬운 일하면서 돈 많이 받자고 하니까 없죠. 외국 사람들 와서 일하고 돈 벌어 자기 나라 가고 하잖아요.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녜요. 아침 3시에도 나가고 5시에도 나가고 할 일이 있으면 요구하는 대로 나가서 해줍니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하고 같이 하죠. 남보다 좀 더 하면 되지 이런 생각으로 살아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행복은 욕심을 버린 마음에서 온다고 말하는 이경희(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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