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새해를 맞이하는데요. 1월 1일에 사회주의 혁명이 생긴 나라도 있습니다. 바로 꾸바입니다. 1959년 1월 1일, 꾸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했습니다. 그 날, 시골에서 유격투쟁을 벌이던 카스트로 형제를 비롯한 젊은 혁명가들의 군대는 꾸바의 수도인 아바나에 입성했습니다. 당시에 젊은 혁명가들은 희망과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곧 인민들이 잘 사는 미래를 만들리라 믿었습니다. 인민 대부분도 그들을 지지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정권에 대해 희망과 기대가 넘쳤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세계 어디에서나 구 소련과 비슷한 국가사회주의, 즉 명령식 중앙계획경제를 도입한 나라들의 경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만성적인 위기에 빠집니다. 군수공업 부문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룰 수도 있지만, 주민들의 생활은 이웃 자본주의 나라들보다 갈수록 열악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민들에 대한 애민정신이 많은 혁명가들은 이러한 경제난을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혁명가들은 평백성들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혁명가들의 열망과 관계없이, 사회주의 혁명을 이룬 국가들의 경제난은 전 세계 공통적인 결과에 해당합니다. 꾸바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꾸바의 핵심 수출품은 사탕가루입니다. 원래 미국에 주로 수출했는데요. 하지만 혁명 이후 1960년대 초부터 미국과의 무역이 중단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소련은 사회주의 동지국 꾸바를 위해, 꾸바산 사탕가루를 미국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구매했습니다. 꾸바는 혁명 이전에 500-600만톤의 사탕가루를 생산했는데,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후 1000만톤의 사탕가루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다른 나라들의 사탕가루 생산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지만, 꾸바의 사탕가루 증산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공산권이 무너진 90년대부터는 생산량이 급감했습니다. 오늘날 꾸바의 사탕가루 생산량은 혁명 이전 생산량의 4분의 1에 불과합니다.
공산권 출신 사람들에게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원래 혁명 이전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곡물 수출국이었는데요. 하지만 혁명 이후 40년이 지나자, 소련은 세계 최대의 곡물 수입국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공산정권이 무너진 이후 러시아는 10년 만에 세계 1-2위의 곡물수출국이 되었습니다.
꾸바의 슬픈 경제 역사로 돌아갑시다. 다른 좋은 사례는 커피입니다. 1959년 혁명 이전에, 커피는 사탕가루 다음으로 중요한 꾸바의 수출품이었습니다. 1959년 꾸바의 커피생산량은 6만톤이었는데, 2015년 꾸바의 커피생산량은 6000톤이 되었습니다. 생산량은 10분의 1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꾸바 경제의 실패는 수출품뿐만이 아닙니다. 주택건설을 봅시다. 혁명 직후 공산정권은 매년 3만 호의 살림집을 건설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건설된 주택은 1만 호 정도였습니다. 70-80년대 주택 건설이 조금 늘어났지만, 여전히 3만 호 공약의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결국 혁명 이전보다 주택 상황이 더욱 나빠졌습니다.
물론 사회주의국가의 경제, 생활수준은 단점뿐만 아니라 장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주의 국가들은 소득이 비슷한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교육수준이 높고, 특히 보건 수준이 높습니다. 문제는 사회주의 국가들은 경제성장 속도가 낮아서 시간이 갈수록 다른 나라들보다 낙후됩니다.
사회주의혁명은 원래 희망과 열망으로 가득 차서 시작하지만, 결과는 실패와 좌절이었습니다. 꾸바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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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i Lakov, 에디터:오중석,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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