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한국전 60주년과 6·15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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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6·25 동란이 발발한 지 꼭 60년이 되었습니다. 6·25 전쟁은 김일성의 무모한 군사모험주의와 스탈린, 모택동의 무책임한 흉계가 만들어낸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입니다. 지금도 북한정권은 6·25를 남한에 의한 북침전쟁이라며 주민들을 속이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까지도 6·25가 김일성에 의한 남침전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반드시 전쟁의 책임자를 가려내어 역사의 심판대 위에 세워야 합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6·25가 남침전쟁이란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소련의 스탈린도 중국의 모택동도 모두 후세 지도자들에 의해 잘잘못을 평가받고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유훈통치를 내세우며 세습독재를 하고 있으니, 앞선 지도자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김정일의 권력기반이 자기 아버지 김일성인 만큼, 김일성에 대한 비판은 곧 자기 권력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정권은 역사의 멍에인 6·25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기 위해서 6·15라는 새로운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6월 14일에 다 합의된 사항을 굳이 날짜를 넘겨 6월 15일 새벽에 서명을 하고, 6·15 선언이란 명칭을 붙였습니다. 6·15 선언은 기본적으로 북한 정권이 체제생존의 시간을 벌면서 남한을 교란하기 위한 대남 전략차원의 문건입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남한의 뜻있는 분들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기 때문에 이제 남한에서 6·15는 과거와 같은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남한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토대를 둔 것도 아닙니다. 남한의 통일방안은 남과 북이 점진적으로 교류협력하면서 잠정적인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궁극적인 통일국가를 만든다는 단계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입니다. 6·15 공동선언 제2항에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 사이의 유사성을 확인한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지향하는 남한 헌법 제4조에도 위반됩니다. 남한은 사람 개개인이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유민주 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런 남한의 평화통일정책은 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에 발표한 6·23 평화통일선언이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남한의 대북정책은 남북간 평화공존과 교류협력 그리고 공동번영을 지향하는 포용정책이며 그 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북분단사의 일대 장전(章典)으로서 지난 91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도 포용정책에 바탕을 둔 것이고, 지금까지 남한은 형편이 닿는 대로 북한을 지원하고 도와왔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북한주민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올릴 수 있는 대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구상도 이 포용정책에 그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핵과 6·15 선언을 고집하는 한 남한의 포용정책이 북한 땅에 스며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