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복 칼럼: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의 파장

작년 9월 마카오의 중국계 은행 방코델타아시아 은행(BDA)의 북한 계좌를 상대로 미국이 취한 대북 금융제재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번 미국이 취한 대북 금융제재 조치의 위력은 이 조치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북한은 작년 9월15일 미국이 북한의 위조달러 거래 및 마약거래 대금 세탁 혐의 등을 이유로 미국 은행들에 대해 방코델타아시아 은행과의 금융거래를 중지하는 조치를 취하고 이 조치에 놀란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이 동 은행의 북한측 계좌 15개를 긴급 동결하자 이에 대해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북한은 조선로동당 39호실 요원 20여 명을 마카오로 급파했습니다. 이들은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으로 들이닥쳐 "돈을 다 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는 특명을 받고 왔다"면서 동결된 예금을 인출하려고 온갖 법석을 다 떨었었다고 합니다.

조선로동당 39호실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을 관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카오에서 미국이 취한 대북 금융제재 조치에 대해 조선로동당 39호실이 이 같이 즉각적 반응을 보인 것을 보고 항간에서는 당연히 동결된 계좌가 김정일의 비자금 계좌임에 틀림없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반응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번에 미국이 취한 대북 금융제재 조치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베이징 6자회담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것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 문제를 6자회담과 연계시켜 미국에게 문제의 대북 금융제재 조치의 취소를 요구하면서 미국이 이에 응할 때까지 지난 11월 이래 '정회' 상태에 있는 제5차 6자회담의 '속개'를 거부하는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이제는 미국이 재미를 보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과격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고 이번 대북 금융제재 조치로 정말 북한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미국은 핵문제를 가지고 북한을 다루는 과정에서 북한이라는 폐쇄국가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에 어떠한 경제제재도 북한에게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통념에 시달려 왔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보고 그 같은 통념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달러를 위조하여 유통시키는 세계 경제질서 교란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 상황에서 중국은 물론 남한의 노무현 정권도 공공연하게 북한의 편을 들기가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엄격해 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제 위조달러 문제뿐 아니라 북한에 의한 마약제조와 가짜 미국담배 제조 의혹까지 문제 삼을 기세입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북한이 연간 가짜 담배 생산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8천만 내지 1억6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 국무부가 최근 발표한 심층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위조달러, 마약 및 가짜 담배 등 국제범죄로 벌어들이는 돈이 연간 10억 달러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알렉산더 브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김정일 정권을 가리켜 '범죄정권'이라고 호칭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사실 때문인 것입니다.

미국이 대통령 행정명령의 형태로 추진하고 있는 대북 금융제재 조치의 내용이 최근 공개되고 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이 조치는 일단 첫째로 미국의 모든 금융기관에 대해 방코델타아시아 은행과 거래를 금지한다는 것, 둘째로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이 다른 금융기관을 이용해 미국의 금융기관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서 이 조치가 가지고 있는 무서운 점은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이외의 다른 금융기관도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처럼 위조달러를 취급하고 마약과 가짜 담배 유통자금을 세탁하는 등의 불법행위가 발견될 때에는 방코델타아시아 은행과 똑 같은 취급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제금융기관들은 북한의 불법자금 거래에 관련되는 것보다는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선택할 것이고 그 결과 북한과의 거래를 끊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약 사태가 여기까지 진전되면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해외에서 관리하고 있는 정권유지용 비자금 체계가 심각하게 마비되고 그 결과 김정일 정권의 유지 자체에 위기가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점입가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조치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