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실, 리정호의 눈] “미 실용적 패권 전략 속 북러 관계 더 밀착”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흥총국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입니다”

[북한 전직 고위 관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과 핵심 권력층의 비밀을 파헤치고, 오늘날 북한 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보며 정치, 경제, 사회를 분석해 보는 ‘39호실 리정호의 눈’,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KPDC) 대표와 함께 합니다.]

“러시아는 종전 이후 전략적인 ‘준군사동맹’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북한을 병참 기지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고, 북한도 이를 기회로 삼아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겁니다.”

미국의 주도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전쟁이 끝나도 북한과 러시아는 밀착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러시아와 북한의 상공회의소가 협상을 체결한 것도 관련이 있는데요.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식량, 원유, 철강, 천연가스, 건설자재 등 전략 물자를 안정적으로 수입하고 노동력과 무기 등을 수출하는 방식의 무역 구조를 유지할 겁니다. 특히 종전 후 러시아의 재건 과정에서 북한은 노동력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일 가능성이 있고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을 계기로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 등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북한은 어떤 틈새 전략을 펼칠 지도 주목됩니다.

북-러 상공회의소 협정 체결, 종전 후 경제 협력 기초 단계

[기자] 리정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진행 중인데요. 지난달 28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했지만, 협상이 결렬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우선 대표님께서는 종전 협상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 그리고 종전이 되면 전쟁에 참가한 북한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리정호] 말씀하신 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은 미국이 주도하면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쟁 당사국도 막대한 인명 피해와 경제적, 군사적 손실을 감수하는 만큼, 종전은 그들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한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도 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양국 간의 충돌을 넘어 유럽과 러시아 간의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전 협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과 유럽의 핵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특히, 2014년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와 이번 전쟁으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보존 문제, 그리고 전쟁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 보장, 우크라이나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문제, 유럽연합군의 우크라이나 주둔 여부 등이 쟁점이 될 겁니다. 그리고 포로 교환 문제를 논의할 때, 북한군 포로도 함께 거론될 수 있습니다.

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된 이후에도 북한과 러시아가 준군사동맹을 유지하며 밀착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후 김정은과 미북 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커 보입니다. 다만,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러시아가 중재자로 나서 미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는데요. 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김정은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했고, 수십 통의 친서를 주고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굳이 러시아를 중재자로 내세울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마무리되는 즉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가 이른 시일 내에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러시아 쿠르스크 상공회의소와 화상회의 중인 평양 상공회의소 관계자들 (쿠르스크 상공회의소 텔레그램 계정 캡처)
북-러 상공회의소 화상회의 러시아 쿠르스크 상공회의소와 화상회의 중인 평양 상공회의소 관계자들 (쿠르스크 상공회의소 텔레그램 계정 캡처) (연합)

[기자] 종전 이후 북러 관계를 통해 북한이 얻게 될 실질적인 이익에도 관심이 쏠리는데요. 지난 2월 3일 진행한 [리정호의 눈]에서 러시아가 종전 후 북한에 광대한 토지를 제공할 계획이 있다는 내용을 다룬 바 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러시아 쿠르스크의 상공회의소가 지난 2월 27일, 북한 평양상공회의소와 화상 회의를 하고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는데, 이것도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

[리정호] 우리가 지난 시간에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가 북한에 상당한 규모의 토지를 제공하는 방안을 합의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이번 쿠르스크 상공회의소와 평양 상공회의소 간 협정 체결은 그 연장선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쿠르스크는 현재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이 우크라이나 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최전선 지역 중 하나입니다. 제가 들은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주택과 병원, 학교, 편의시설 등을 건설하고 정착촌을 형성해 수만 명의 제대 군인을 투입한 뒤 농사를 지어 생산한 식량을 북한으로 반입하는 계획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 2월 27일에 맺은 협정은 북러 간 경제 협력의 기초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또 러시아는 종전 이후 전략적인 ‘준군사동맹’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북한을 병참 기지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고, 북한도 이를 기회로 삼아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겁니다. 또 북한은 러시아의 군수품 생산을 위한 후방 기지 역할을 하면서 방위 산업과 연계해 무기 생산 및 공급망을 확장하려 할 겁니다. 뿐만 아니라 미사일 엔진, 정찰 위성, 방공 시스템, 드론(무인기),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첨단 무기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와 기술 협력, 고품질 설비 및 자재 납품을 진행할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식량, 원유, 철강, 천연가스, 건설자재 등 전략 물자를 안정적으로 수입하고 노동력과 무기 등을 수출하는 방식의 무역 구조를 유지할 겁니다. 특히 종전 후 러시아의 재건 과정에서 북한은 노동력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일 가능성이 있고요. 러시아와 관광 산업 협력을 통해 외화 확보의 기회를 창출하려 할 겁니다. 이 밖에도 북한은 부상을 입은 러시아 참전 군인의 치료와 재활을 위한 요양 시설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의료 설비와 자재, 기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북러 관계는 종전 이후에도 전략적 공조를 긴밀하게 이어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봅니다.

북러, 종전 후에도 전략적 군사동맹 유지 가능성

[기자] 지난 2월 2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결의안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표현이 빠져있습니다. 미국은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입장이고요. 러시아 편에서 참전한 북한에도 면죄부를 주는 것 같습니다. 종전 협정 과정에서 미국, 러시아,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데요. 종전 이후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리정호] 기자님이 언급한 것처럼,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정 과정에서 미국, 러시아, 북한의 이해관계가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놀라운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를 ‘침략자’로 규정하지 않고, 전쟁 피해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은 채 조기 종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도시와 마을 전체가 잿더미가 됐고,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매우 충격적인 변화인데, 현재 미국 정부는 이념적 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용적 패권 전략을 구사하는 듯 보입니다. 특히,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는 한편, 오랫동안 미국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이익을 취해온 동맹국들을 배제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됩니다. 물론, 상황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기존 국제 질서의 틀이 바뀌는 전환점에 놓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러시아와 북한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략적 군사동맹을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큰데요. 만약 미국과 러시아, 북한이 이해 당사자로서 얽히게 될 경우, 한반도의 긴장은 한층 더 고조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쟁이 종결된 후 수만 명의 무고한 우크라이나 국민을 희생시킨 러시아와 북한이 결코 전쟁 범죄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전쟁에서 희생된 수천 명의 북한군 병사들도 공개될 텐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인권과 정의, 양심을 중시하는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잔혹한 전쟁 범죄에 대한 심판을 요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지난달 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서해 해상에서 전략순항미사일 발사훈련을 진행했다.
북한, 전략순항미사일 발사훈련…김정은 참관 북한은 지난달 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서해 해상에서 전략순항미사일 발사훈련을 진행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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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광물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광물 협정까지 맺으려 했는데요.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광물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까요?

[리정호]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공급망의 안정성과 지정학적 이익을 위한 전략적 결정입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미국이 북한의 광물에 큰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작습니다. 이건 제가 북한에서 자원 수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북한이 보유한 광물 중 대표적인 것은 석탄, 철광석, 마그네사이트, 아연, 석회석 등인데요. 하지만 그 자원의 경제적 가치와 미국의 관심도를 우크라이나와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북한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마그네사이트 매장량(수십억 톤)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수요는 제한적입니다. 북한 무산의 철광석 광산도 크다고는 하지만, 개발 가치가 높지 않고요. 금광과 희토류 매장량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북한에는 미국이 매력을 느낄 만한 자원이 없다는 말이지요.

실례로 제가 2009년에 중국 기업가, 전문가들과 함께 북한의 철광석 자원을 시찰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중국 측 관계자들은 중국 내몽고 지역과 비교했을 때 북한의 광물 자원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는데요. 자원의 양이 부족하고, 인프라가 열악하다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정은, 핵 포기한 우크라이나 비극에서 교훈 얻어

[기자] 마지막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정 과정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냉혹합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의 주도권을 잃고 미국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버림받았다’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또 협상이 결렬된 지난 2월 28일의 정상회담은 2019년 베트남(윁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김정은 총비서는 어떤 메시지를 읽었을까요?

[리정호] 김정은은 이번 협상을 보면서 다시 한번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라는 교훈을 얻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당신은 더 이상 협상 카드가 없다”라고 말한 것이 상징적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서방의 지원을 받으며,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전쟁을 종식하는 단계에서 미국은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안보는 유럽에 떠넘겨졌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원하는 수준의 협상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 상황입니다. 김정은 입장에서 볼 때 이는 ‘핵을 포기한 국가의 비참한 말로’로 받아들여질 겁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핵무기가 많은 나라였습니다. 176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약 44기의 전략 폭격기, 1천9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에 따라 미국, 영국, 러시아로부터 영토 보전과 주권을 보장받는 대가로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에 반납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고, 2022년에는 침략까지 했죠. 결국, 영토보전과 주권을 보장받기로 한 양해각서는 휴지장이 됐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핵확산방지조약’(NPT)의 실패를 상징함과 동시에 미국의 통제를 벗어난 ‘핵 도미노’ 현상이 서서히 확산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김정은은 2013년 3월 “핵을 가진 국가만이 자주권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강조하면서 발칸반도와 중동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발칸반도는 바로 우크라이나를 뜻하는데요. 이는 김정일 시대부터 내려온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김정은은 이번 협상을 보면서 더욱 확신했을 겁니다. “핵은 나의 권력과 체제를 지키는 유일한 카드다”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도 더욱 공격적으로 핵 무력을 강화할 것이고, 완전한 핵보유국으로서 인정받으려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지금까지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와 함께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얻을 메시지는 무엇이고, 북러 관계는 어떻게 될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리정호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