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농민들, 새 살림집에 불만 고조

앵커: 북한 관영 매체들이 최근 한 목소리로 새로 지어진 농촌살림집을 선전하고 있지만 정작 농민들은 편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살림집 구조에 불만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날로 흥해가는 농촌’, 북한의 언론들이 새로 지은 농촌살림집을 자랑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구절입니다.

살림집을 지어준 김정은 총비서의 배려로 농민들의 생활이 날로 흥해간다는 건데, 정작 농민들은 앞날이 캄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복수의 양강도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양강도 농업 부문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2일 “요즘은 눈만 뜨면 신문과 방송으로 지방공업공장과 농촌살림집 자랑”이라며 “지방공업공장은 멈춰 있고, 농촌살림집은 얼음장인데 무슨 자랑이 저렇게 많은 지 모르겠다”고 전했습니다.

“새로운 살림집을 지어 농촌이 더욱 흥해간다고 하는데 솔직히 새로 지은 농촌살림집들로 농민들의 생활은 더욱 암울해지고 있다”며 “겉모습은 그럴 듯한데 실제로 농민들의 생활향상에 필요한 조건은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농촌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난방과 수도, 텃밭과 축산”이라며 “그러나 지금 짓는 농촌살림집들은 난방과 축산, 텃밭과 수도가 그야말로 엉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농촌에 살림집 건설을 시작한 것이 2022년 봄부터 인데 당시도 ‘지나치게 도시를 흉내 냈다’는 비판이 거셌다”며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이제는 농촌에 아예 5층, 7층짜리 아파트들을 짓는 실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농촌은 수도화(수도시설)가 되지 않아 강이나 샘터에서 물을 길어서 써야 하는데 5층짜리 아파트까지 어떻게 물을 길러 올리냐?”며 “새로 지은 살림집들은 단층이어도 가축을 못 키우게 단속하는데 아파트에서 무슨 수로 축산을 하냐?”고 소식통은 반문했습니다.

압록강에서 물을 길어 나르는 모습
압록강에서 물을 길어 나르는 모습 2017년 11월, 한 북한 남성이 북한 혜산 남쪽의 얼어붙은 압록강에서 물을 길어 나르는 모습 (Reut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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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소식통은 “새로 지은 농촌 살림집들은 단층일 경우 텃밭이 30평이고, 아파트는 텃밭이 15평인데 매 살림집들은 텃밭에 무조건 과일나무 한 그루를 심어야 한다”며 “그러다 보니 남새(채소)를 심어 먹을 땅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관련 양강도의 한 농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4일 “새로 지은 농촌살림집들은 설계상 바깥 벽체의 두께가 40센치인데, 정작 재보면 37센치도 안 된다”며 “여기다 모래와 시멘트로 벽체를 쌓아 겨울철 추위를 막아내지 못한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양강도의 농촌살림집들은 겨울철 잠을 자고 나면 행주가 꽁꽁 얼어 있다”며 “굴뚝도 높지 않아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연기가 거꾸로 쏟아져 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소식통은 “농민들은 텃밭에 심은 남새를 팔고, 집에서 키운 돼지와 염소를 팔아 돈을 버는데 새로 지은 살림집들은 텃밭 면적이 작은데다 돼지와 염소는 키우지 못하게 규정돼 있다”며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공동 축사를 지어 가축을 키우라는 건데, 그러자면 따로 경비 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싫다는 농민들도 강제로 입사시켜”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민들은 어떻게 든 낡은 집을 지키고, 새로 지은 살림집에 입사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며 “입사를 거부하는 농민들은 리 초급당위원회와 리 담당 보위원, 담당 안전원(경찰)들이 동원돼 강제로 입사 시키고 있다”고 소식통은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결국 새 살림집에 입사한 농민들은 생활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해 지게 된다”며 “제대군인들을 비롯해 그동안 집이 없어 고생하던 일부 농촌주민들만 그런대로 새 살림집에 적응해 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지난해 말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사회주의 이상향으로 끝없이 진흥하는 새 시대의 문화농촌’이라는 기사에서 지난 3년간 현대적 미감과 우리식 사회주의의 맛이 나고 지역 특성을 뚜렷이 살린 1,500여개의 선경마을들이 일떠섰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입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