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밝히면서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직접적인 비난은 삼갔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이 ‘비핵화 불가’ 입장을 재차 밝히면서도 대화 가능성은 열어놓은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 등은 9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전날 발표한 ‘미한일의 시대착오적인 비핵화 집념은 우리 국가의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제목의 담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김여정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지난 3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의지를 강조한 것에 대해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다”고 비난했습니다.
앞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 등 한미일 외교장관은 현지시간 3일 나토(NATO) 외교장관회의 참석 계기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 등을 재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김 부부장은 또 “핵 포기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은 물론 이미 효력을 잃은 비핵화 개념을 되살리려는 시도 자체가 우리 국가의 주권을 부정하고 헌법과 체제의 포기를 강요하는 가장 노골적인 적대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부부장 담화는 지난달 3일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함의 부산 입항에 대한 비판 이후 약 한 달만에 나온 것입니다.
당시 김 부부장은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대북 적대시 정책을 계승했다며 “오늘의 현실은 핵무력 강화 노선의 당위성과 정당성,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켜주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밝힌 바 있습니다.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은 9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에게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대화 및 협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확고히 밝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북한으로서는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핵미사일 고도화, 북러 조약을 체결하는 등 전략적 지위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 달라진 만큼, 이전의 비핵화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달라진 상황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고 전 원장은 김 부부장 담화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직접적인 비난이 등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북한이 자신들의 기본 입장은 밝히되 향후 있을 수 있는 미북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취임 이후 여러 차례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언급하며 대화 의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의 말입니다.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 특히 북러 간 조약을 통해서 나름대로 생존에 필요한 여러 조치들을 취해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방식의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 안 맞는다는 이야기죠. 향후 대화를 앞두고 기본 입장만 밝혀놓은 상황이고 아직 구체적으로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상황을 두고 보겠다는 것이지만 지금 돌아가는 이야기들은 자기들의 기본 입장과는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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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강화된 러시아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확산시키고자 할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은 앞서 제기된 바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의 성기영 수석연구위원은 지난달 18일 ‘러우 전쟁 휴전협상이 북한에 주는 함의 분석’ 보고서에서 “일정한 시점에 미북 대화 국면이 열리더라도 비핵화를 의제에서 배제하기 위해 러시아의 입을 빌려 비핵화 불가론을 국제사회에 기정사실화하고자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성 수석연구위원은 핵보유국 지위 포기 이후 러시아의 침략으로 인해 영토를 상실한 우크라이나 사례는 핵무기에 대한 북한의 집착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도 분석했습니다.
다만 성 수석연구위원 역시 북한이 향후 트럼프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필요 이상의 적대관계가 형성되지는 않도록 대미 비난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수석연구위원] 냉전구도가 고착화된 구도 속에서 러시아가 과거와 같은 일정한 세력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면 북한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고 러시아의 세력권에 편승해서 생존 능력을 강화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판단을 아마도 내리고 있을 거예요.
“북한군 MDL 침범과 김여정 담화는 무관”
한편 8일 오후 북한군 10여 명이 군사분계선(MDL) 이남으로 침범했다가 한국 군의 경고사격 이후 되돌아간 일과 관련해, 고유환 전 원장은 북한군의 우발적인 실수였으며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도형입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