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당국은 최근 몇 년 간 식량난 해결을 위해 강냉이를 심던 밭에 밀과 보리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올해 양강도에서는 겨울철 냉해와 가뭄으로 밀과 보리 농사를 망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 김정은 총비서가 식량난 해결을 위해 알곡 생산 구조를 바꿀 것을 지시하면서 강냉이 대신 2모작이 가능한 밀과 보리를 밭에 심을 것을 지시한 것은 2021년입니다. 이후 북한은 기존에 강냉이를 심던 밭을 밀, 보리 밭으로 빠르게 대체했습니다.
하지만 강냉이 대신 밀 보리를 심는 문제를 놓고 아직까지 농민들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데 올해는 밀, 보리 농사마저 망쳤다고 복수의 양강도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양강도의 한 농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14일 “올해 우리나라(북한)의 밀, 보리 농사는 완전히 흉작”이라며 “고산지대인 양강도와 자강도는 겨울철 냉해와 가뭄으로 밀, 보리 농사를 망쳤고 내륙지대는 가뭄으로 밀, 보리 농사를 망쳤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밀, 보리는 가을걷이가 끝난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파종을 하는데 종자가 땅속에서 겨울을 난 후 다음 해 봄에 싹이 터 자란다”며 “또 초여름인 6월 7일부터 17일 사이에 수확을 하고 그 자리에 감자나 벼를 심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양강도와 자강도, 함경북도의 일부 지방은 겨울이 긴데다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날이 많아 자칫 밀, 보리 종자가 땅속에서 얼어 죽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양강도와 자강도는 올해 음력설을 전후해 밤 기온이 영하 30도 가까이 떨어졌는데 이때 상당 양의 밀, 보리 종자들이 얼어 죽은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겨울철 살아남은 종자들이 많지 않아 농민들은 밀, 보리 밭을 가리키며 ‘탈모 환자의 머리 같다’고 말을 한다”며 “그나마 살아 남은 밀, 보리도 지난해부터 계속되는 가뭄으로 잎이 노랗게 죽어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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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양강도 농업부문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16일 “전국적인 가뭄으로 밀, 보리가 말라 죽는데도 국가적으로 저수지에 손을 못 대게 한다”면서 “밀, 보리에 물을 주게 되면 앞으로 벼 농사를 지을 물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냉해와 가뭄으로 밀, 보리가 얼마 돋지 못하다 보니 앞으로 밭을 다루기(가꾸기)도 어려울 것 같다”며 “밀, 보리는 워낙 빽빽하게 심어 그 사이로 풀이 자라지 못하게 되는데 지금처럼 땅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면 풀도 많이 자라 밭을 다루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모작 어려운 양강도엔 밀·보리 적합치 않아
“또 밀, 보리는 2모작을 위해 심는 곡종으로 여름철이 짧아 2모작이 어려운 양강도나 자강도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그런데도 중앙에서 밀, 보리 농사를 강요해 지금껏 강냉이냐 밀, 보리 농사냐를 놓고 농민들의 의견이 엇갈렸는데 올해 밀, 보리가 흉작이어서 논란은 더 커질 것”이라고 소식통은 전망했습니다.
소식통은 “여름이 긴 내륙 지대는 6월 중순까지 앞그루(전작)인 밀, 보리를 수확하고 그 자리에 뒷그루(후작)인 벼를 심는다”며 “하지만 여름이 짧은 양강도와 자강도는 6월 말이 돼야 밀, 보리를 수확하게 돼 뒷그루로 적합한 알곡 작물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양강도는 뒷그루로 알곡 작물 대신 배추와 무를 비롯한 남새(채소)를 심고 있다”며 “하지만 앞그루인 밀, 보리를 이미 망쳤기 때문에 올해 양강도와 자강도는 이미 알곡 생산의 절반을 망친 거나 다름없다”고 소식통은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내륙 지대 농장들은 앞그루 농사를 망쳐도 뒷그루인 벼 농사가 잘 되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며 “그런데 양강도와 자강도는 밀, 보리 농사를 망치게 되면 다른 알곡 작물이 없어 입에 풀칠조차 어렵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입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