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러시아에 이어 북한이 러시아로 군인을 보낸 사실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 이뤄진 북러의 잇단 파병사실 인정과 관련해, 연대 과시, 정당한 파병 주장 등 의도가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28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전날 언론기관들에 보낸 서면 입장문이라며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공화국 국가수반(김정은 총비서)의 명령에 따라 쿠르스크 지역 해방작전에 참전한 무력 구분대들이 높은 전투정신과 군사적 기질을 남김없이 과시했다”고 밝혔습니다.
당 중앙군사위는 또 김정은 총비서가 (쿠르스크 지역) 전황이 북러조약 4조 발동에 해당한다는 판단에 근거해 참전을 결정한 바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사실을 공식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서 러시아는 현지시간 26일 발레리 게라시모프 군 총참모장이 푸틴 대통령과 화상회의에서 “북한 군인, 장교들은 우크라이나 습격을 격퇴하는 동안 러시아군과 어깨를 나란히 해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히는 등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처음으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날 북한 당 중앙군사위 입장문이 공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는 크렘린궁 성명을 통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 군인들의 영웅적 면모와 헌신에 경의를 표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부원장은 28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북한과 러시아가 쿠르스크 지역 탈환 작전을 마친 이후 파병 사실을 공식 인정하기로 미리 합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북한군 파병 인정을 통해 러시아의 국제적 연대를 과시하는 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현 부원장은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26일 성명에서 ‘한 참호에서 어깨를 맞대고 피를 흘리며 싸웠다‘, ‘북한군이 보여준 연대는 양국 관계가 고도로 본질적인 동맹 수준임을 보여준다‘며 사용한 수사 수준에 주목하며, “대외적으로 특히 미국을 향해,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과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부원장] 쿠르스크 작전이 완전히 끝나서 러시아와 북한이 맺은 신조약 4조의 근거가 명확해질 수 있는 타이밍이 되면 그때 공개하자고 하는 사전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고, 그 다음에 러시아가 혼자 싸우지 않는다는 것, 러시아의 어떤 국제적 의지를 보여주는 그러한 기회로 이것을 활용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일단 듭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될 경우 러시아에게 있어 북한의 중요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전문가 사회 일각에서 제기됐었던 것과 관련해 현 부원장은 “대전략을 추구하는 러시아가 북한을 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오히려 북한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 부원장은 지난 2월 ‘러시아의 대외 전략과 한반도’ 보고서에서 푸틴 러시아의 대전략 목표는 다극세계질서 실현, 세력권 확보이며, 이같은 구상이 우크라이나 침공 정당성 등 대외정책 노선에 반영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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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국제사회에 ‘정당한 파병’ 주장”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28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북한과 러시아가 지난해 체결한 북러조약 4조에 따라 쿠르스크 지역 해방을 위한 정당한 파병을 진행했다는 주장을 국제사회를 향해 펼치고자 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북러조약 4조에는 북한, 러시아 중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지체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와 함께 박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이 가까워지며 북러가 결산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파병을 공식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고, 파병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이 파병을 공식 인정한 데에는 다수의 파병군 사상자가 발생해 이들을 영웅화하고 민심 동요를 관리해야 했던 내부적인 필요성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쿠르스크 지역으로 한정을 한 것은 어쨌든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게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지역이기 때문에 북한과 러시아가 작년 6월에 체결한 조약 4조에 따라서 정당한 파병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판단이 되고요. 그동안 러우 전쟁에서 협력해왔는데 북한군 파병이 이제 마무리 단계니까 여기에 대한 뭔가 결산이 필요해서 공식화했다고 판단됩니다.
러우 전쟁 종전 이후 향후 러시아와 북한 간 긴밀한 관계가 지속될지와 관련해 박 교수는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 등 보다 큰 틀에서 변하는 구조에 따라 러시아가 북한을 다룰 가능성이 높다”며 “변수가 많은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북한과 러시아의 파병 공식화로 인해 다음 달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러시아 전승절 기념식에 김정은 총비서가 참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 부원장은 유일영도체계인 북한이 다자외교 무대에 나서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며 현재로서는 김 총비서의 러시아 전승절 참석 여부를 일단 반반의 확률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도형입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