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한국 공무원의 유가족이 한국 정부에 피격 당시 상황 공개를 촉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전한 위로 편지를 반납했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020년 10월 서해상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한국 공무원의 유가족에게 위로 편지를 보낸 문재인 한국 대통령.
당시 문 대통령은 편지에 “진실이 밝혀져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묻고, 억울한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해양경찰의 조사와 수색 결과를 기다려주길 부탁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 3개월여가 지난 18일, 피해자의 유족들은 청와대를 찾아 문 대통령의 위로 편지를 반납했습니다.
이날 오전 청와대 분수 앞에서 기자설명회를 연 유족들은 피해자의 아들이 쓴 반납 이유를 담은 편지를 대독하며 “대통령의 편지는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면피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피격 공무원 유가족: 대통령님의 '직접 챙기겠다, 항상 함께 하겠다'던 약속만이 유일한 희망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편지는 당시의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면피용에 불과했고, 주적인 북한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고등학생을 상대로 한 거짓말일 뿐이었습니다.
피해자의 아들은 편지에서 “법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사실관계를 알고 싶어하는 제 요구를 일부분 허락했지만, 대통령님께서 그것을 막고 계신다”며 “아버지의 죽음을 왜 감추려고 하는지 의구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피해자의 형 이래진 씨는 같은 자리에서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따라 피격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씨는 한국 정부가 해상경계 작전 실패 사실을 국민의 죽음으로 덮는 만행을 저지르고 증거와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가 북한 해역에서 사망한 것을 월북으로 규정하고 북한 군 통신병에 대한 도청 및 감청 자료를 고급 첩보인 양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래진 씨: 이 나라의 군 통수권자이며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께서 말씀하셨고, 그 말을 믿고 1년 넘게 기다려왔지만 재판 일부 승소를 통해 관련 내용을 공개하라고 한 법원의 판단조차 무시하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입니까?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피해자 유가족이 한국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해경, 국방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 소송 1심에서 이 씨의 사망 경위와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지만, 해경과 청와대는 이에 항소했습니다.
한국 군 당국은 서해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뒤 구명조끼와 부유물에 의지해 표류하던 한국 공무원 이 씨를 단속정을 타고 온 북한 군이 지난 2020년 9월 22일 밤 9시 반쯤 총격을 가해 사살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시 북한 군은 이 씨를 사살한 뒤 시신을 불태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편 이날 기자설명회를 마치고 문 대통령의 편지를 청와대에 직접 반납하려던 계획은 경찰의 제지로 무산됐고, 유족들은 편지를 경찰 저지선 앞에 놓아둔 채 발길을 돌렸습니다.
기자 홍승욱, 에디터 오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