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코로나19 백신 거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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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국경 봉쇄를 이어가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백신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은 불가피한 내부 상황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한국 내에서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1일 주최한 북한 관련 토론회.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국제사회와는 다른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 단순히 폐쇄적인 정책 기조 보다는 내부적인 사정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세계적인 추세에 비해 지나치게 강한 봉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나 북한 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발표하고 있는 것, 국제사회와 한국이 지원하는 백신 지원 등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단순히 ‘비정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홍 연구위원은 특히 북한이 국제 백신공급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 즉 코백스의 코로나19 백신 지원을 수용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폐쇄적인 북한 체제의 특성상 백신 수량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사회 갈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북한 인구를 2천5백만 명 정도로 가정한다면, 코백스가 지금까지 북한에 배정한 6백8십만여 회분은 한 사람에 두 차례씩 접종할 경우 3백4십만 명 정도만 접종받을 수 있는 분량이라는 것입니다.

배정에서부터 실제 공급까지 시차를 비롯한 다양한 어려움이 발생하는 현실까지 감안하면 적은 수량의 백신 도입은 북한 내 대다수 주민들에게 감염병에 대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홍 연구위원의 설명입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이런 불확실성,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 백신을 도입하는 것이 북한을 통치하는 데 유리한가? 실제로 극소량만 특정 주민들에게 접종될 경우 대다수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긴장감, 불안함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홍 연구위원은 코로나19 백신의 안정적인 공급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북한으로서는 봉쇄 중심의 비상 방역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미국을 향해 장기적인 힘겨루기를 선언한 것도 북한이 전향적으로 외부로부터의 방역 지원을 수용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시행하고 있는 강도 높은 폐쇄 정책과 관련해서는, 서구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백신 접종을 통해 코로나19 방역의 성격을 개인 범위로 좁히는 이른바 ‘개인화’ 과정을 거친 것을 감안하면 북한이 아직 국가 및 지역 단위의 방역 체계를 고수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또 백신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만 빼면 북한이 비교적 성공적인 방역 성과를 보이고 있는 쿠바 등이 실행한 이른바 사회주의 보건의료 체계와 유사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실행하고 있는 코로나19 방역 대책 이면에는 사회·경제적인 불가피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홍 연구위원의 설명입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은 같은 토론회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북한 내 사회 변화를 끌어내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정 소장은 북한이 지난 2019년 초 하노이회담 결렬로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당이 군에 쏠려 있던 주도권을 되찾는 방향의 이른바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비상 방역이라는 명분하에 군 의료시설을 의료 기자재 생산 공장으로 바꾸는 것 등을 반대할 명분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북중 간 무역 중단으로 인해 군 산하 무역기관을 존속시킬 명분도 약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 소장은 또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사태와 비상 방역 체계를 지난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굳어진 관행을 개혁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습니다.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 비루스인 ‘오미크론’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북한 관영매체는 관련 소식을 전하며 연일 주민들에게 빈틈없는 방역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홍승욱입니다.

기자 홍승욱, 에디터 오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