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무인기가 5년 만에 한국 영공을 침범해 수도권 북부 상공까지 침투했습니다. 격추에 나선 한국 군의 대응 작전으로 한때 공항의 민항기 이륙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경기도 일대에서 북한 무인기로 추정되는 미상의 항적 여러 개가 포착된 것은 26일 오전 10시 반쯤이었습니다.
한국 군은 이 항적을 김포 전방 군사분계선(MDL) 이북에서부터 포착하고 이를 무인기로 식별한 뒤 경고방송 및 사격을 여러 차례 실시했습니다.
이어 공군 전투기와 공격헬기 등 대응 전력을 투입해 격파사격을 비롯한 격추 작전에 나섰습니다.
무인기는 모두 5대로 식별됐습니다.
북한 무인기들은 경기도 김포·파주와 강화도 일대로 넘어왔고, 여러 대가 각각 다른 형태의 항적을 보이면서 일부는 민간인과 마을이 있는 지역까지 내려왔습니다.
이 가운데 1대는 파주 인근 민간인 거주 지역 상공을 지나 수도권 북부 상공으로 진입했다가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인기들은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가거나 좌우로 움직이는 등 다양한 항적을 보였고, 한국 측 탐지자산에서 관측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무인기의 크기는 육안으로도 식별 가능한 정도였고, 지난 2014년 한국 측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기들과 비슷한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앞서 이날 오전 11시 40분쯤 공군 원주기지에서 이륙하다가 추락한 경공격기는 북한 무인기 대응 작전 지원을 위해 투입됐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한국 항공 당국은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에서 일시적으로 민간 항공기 이륙을 중단하는 조처를 내렸다가 해제했습니다.
북한 무인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한 것은 5년 만으로, 지난 2017년 6월 강원도 인제 야산에서 북한 무인기가 발견된 바 있습니다.
당시 이 무인기는 MDL을 넘어온 것은 물론 경북 성주의 사드(THAAD), 즉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까지 내려가 일대를 촬영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에 앞선 2016년과 2015년, 2014년에도 북한 무인기가 MDL 남쪽 상공을 침범하거나 해당 무인기의 잔해가 한국 측에서 발견됐습니다.
한국 군은 이날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이 명확한 도발 행위라고 규탄했습니다.
이승오 한국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한국 군은 26일 오전 경기도 일대에서 북한 무인기로 추정되는 미상 항적을 포착하여 대응하였으며, 이는 북한이 한국 영공을 침범한 명백한 도발 행위이다. 북한의 이 같은 도발에 대해 앞으로도 한국 군은 철저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
한국 군 당국은 유·무인 정찰자산을 MDL 근접 지역과 이북지역으로 투입해 영공 침범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한편 적 주요 군사시설을 촬영하는 등 정찰 및 작전활동을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의 여당 국민의힘은 논평을 내고 “최근 김정은 정권이 미북 관계에서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도발 수위를 점점 끌어올리고 있는 모양새”라며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어 “대한민국은 북한 도발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며 “내년부터 한미 연합군은 대규모 훈련을 재개해 그 어떤 상황에도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기자설명회에서 “북한은 더는 한국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며 “강 대 강 대치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무기와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 재래 전력에 이어 무인기까지 동원해 다양한 형태의 도발을 감행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기존 미사일 일변도의 도발 노선에서 벗어나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공격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하려는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 우리는 북한의 핵실험에 집중을 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예상치 못한 의외의 수단을 쓴 것 아닙니까? 이른바 '성동격서' 전술을 쓰는 느낌도 있고, 한국의 대북 대비태세를 좀 혼란시키려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특히 북한이 무인기를 통해 한국 군 뿐 아니라 주한미군 기지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시사하고 있는 것일 수 있으며, 연말을 도발 시점으로 택해 내년에도 대남·대미 공세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북한 무인기가 포착 즉시 되돌아갔던 과거와는 달리 상당한 시간동안 한국 측에 머무르며 혼란을 일으켰다며 과거보다 공세가 강화된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 과거에는 우리가 경고 사격을 하면 북한 무인기가 되돌아가곤 했는데, 이번엔 MDL를 넘어와서 한국 민가까지 왔다는 것은 그만큼 도발 양상이 더 위협적으로 변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 사무국장은 앞서 북한이 당 대회나 국방 전람회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무인기 개발 의지 등을 밝혀온 만큼 이 같은 시도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한국 군에 따르면 북한 무인기 전력은 자세히 파악되진 않았지만 많게는 1천 대까지 개발돼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자 홍승욱,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