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금 베트남, 즉 윁남 하노이에서는 역사적인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습니다. 하노이는 어떤 곳인지 서울의 노재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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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베트남, 즉 윁남은 역사적인 곳입니다.
미국과 베트남은 과거 전쟁으로 적대관계가 됐지만 종전 20년 만인 1995년 국교 정상화를 이뤄 지금은 동반자 관계가 됐습니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개혁·개방으로 발전된 베트남의 모습을 북한에 보여주려고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의 발전상을 강조하며 북한의 비핵화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 미국이 회담 장소로 베트남을 선택한 것은 북한 개혁·개방의 모델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냉전 시절 같은 공산 진영에 속해 있던 북한과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북한과 베트남은 1950년 수교를 맺었습니다.
1957년 호찌민 베트남 주석의 북한 방문과 이듬해 김일성 주석의 베트남 방문 등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더 발전했으며,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북한이 병력과 물자를 지원하면서 ‘혈맹’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두 나라는 1992년 베트남이 한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하노이를 방문한 것은 55년 만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지난 1958년과 1964년 두 차례 방문했으며 호찌민 베트남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베트남어로 ‘강의 안쪽’이라는 뜻인 하노이는 6세기 무렵부터 베트남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하노이는 1954년부터 베트남 전쟁이 끝날 때까지 북베트남의 수도였다가 1976년 남베트남이 멸망하면서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됐습니다.
하노이는 국제사회의 고립에서 벗어나 오늘날 베트남 경제발전을 이루게 한 도이모이 정책의 중심부입니다.
베트남어로 ‘새롭게 바꾼다’는 의미의 도이모이는 1986년부터 추진된 개혁·개방 정책으로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해 경제부흥을 이끌었습니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 : 베트남이 당시 도이모이를 추진하는 데 있어 미국의 제재 해제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이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베트남군을 철수했고, 베트남 전쟁 때 사망한 미군 유해도 송환했습니다.
하노이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박닌성과 하이퐁에는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운 산업단지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베트남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책임지고 있을 만큼 베트남을 대표하는 해외 투자 기업입니다.
개혁·개방 이후 하노이는 각종 국제회의를 열었는데 지난 2006년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세계경제포럼(WEF) 주최로 아세안 지역회의가 개최됐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재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