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지의 북한 풍향계] “코로나19로 김정은정권 위기대응능력 시험대 올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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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즉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 감염증 사태로 김정은 정권의 위기 대응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보건의료체계가 열악한 북한 체제의 특성상 감염증 확산은 단순한 보건 의료 문제가 아닌 체제 존립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인데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강하게 반발해온 북한이 스스로 외부 세계와 격리하는 고강도 자가봉쇄 조치를 단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북한 현안을 분석, 전망하는 '김은지의 북한 풍향계'입니다.

코로나19, 즉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 감염증 사태에 '국경 봉쇄'라는 고강도 방역 조치에 나선 북한. 중국과의 지리적 인접성과 취약한 방역체계를 감안해 초강수를 둔 겁니다.

1400여km에 이르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데다 교역과 인적 왕래가 활발한 중국에서의 감염병 확산은 북한에겐 그야말로 '재앙'에 가깝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중국 내 신형 코로나 확진자 수(3월 15일 기준)는 8만 1천 명, 사망자는 3천200명에 달합니다.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랴오닝성과 지린성도 확진자 수가 200명을 넘어섰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조치에 강하게 반발해온 북한 당국이 스스로 외부와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이른바 '셀프 제재', 즉 자가 봉쇄에 들어간 이윱니다.

천영우 전 한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세계 최초로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입국자의 방문을 전면 금지하고 스스로 외부세계와 격리하는 국경 봉쇄조치를 선제적으로 단행한 것은 취약한 보건의료 역량을 고려할 때 감염증 확산을 막을 다른 실효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신형 코로나' 사태로 김정은 정권의 위기 대응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보건의료체계가 열악한 북한 체제 특성상 바이러스(비루스)의 확산은 단순한 보건의료 문제가 아닌 '체제 존립'이 걸린 문제기 때문입니다.

제재 장기화에다 국경봉쇄에 따른 경제 위기 심화로 내부 불만이 확산될 경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력에도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한국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한 정권에게 최악의 사태는 군대 내부로 감염병이 확산되는 것으로, 이 경우 군사력 약화는 물론 군부 불만으로 이어져 북한 정권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군이 신형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약 30일간 봉쇄됐다 최근 훈련을 재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입니다.

북한 당국이 지금까지도 확진자가 없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하는 것 역시 감염증 확산으로 인한 체제 불안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홍민 한국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북한의 이 같은 입장은 상당히 정치적인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는 북한 내부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대내외적으로 알려졌을 때 주민 불안과 민심 저하 등으로 이어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통치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지난 3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 따르면 신형 코로나 감염증과 관련해 북한에서 격리된 인원은 7천~8천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 가운데 10분의 1만 확진자로 판명될 경우 700~800명에 달합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 매체의 보도를 보면 현재 국경지역에서 점차 지역 내로의 확산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직장과 단위별로 집단모임이 많은 북한 체제의 특성상 감염증이 급속도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75호와 2397호에 따라 지난해 12월 22일까지 중국에 체류했던 수 만 명의 북한 근로자들도 상당수 귀국한 상탭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해 12월 22일부터 노동자 강제귀국 기한이 만료돼 12월 23일부터 강제귀국이 시작됐고 북한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해외에서 들어온 내외국인을 격리 조치한 시점이 1월 13일부터라는 점에서 최소한 20일 동안은 북한 근로자들이 격리나 검진 조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설명인 거죠.

이 같은 정황을 감안할 때 북한 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신뢰하긴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입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13일 발병 사례가 없다는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와 달리 북한 내 발병을 꽤 확신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번 사태를 '국가 존망의 문제'로 규정하고 국가비상방역체계로 전환한 상탭니다.

문제는 북한의 열악한 의료환경 수준을 감안할 때 신형 코로나 감염증을 확진할 진단 능력이나 방역체계가 미흡하다는 점입니다. 격리 조치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최정훈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연구교수: 북한의 경우 진단 시약이나 치료 약물, 예방약 식량 등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데다 일반 병원의 경우 배급제 붕괴로 인해 수용시설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감염병에 의한 사망이 북한 주민 사망 원인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WHO의 발표는 북한의 열악한 의료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미 존스홉킨스대 보건안보센터가 발표한 '2019 보건안보지수'에서도 북한은 전체 조사대상 195개국 중 193위를 차지했습니다. '질병 대응 체계' 항목에선 전 세계 최하위인 11.3점을 기록했습니다.

신형 코로나 감염증의 경우 치사율은 과거 메르스에 비해 낮지만 빠른 확산 속도와 무증상 전염으로 위험도는 결코 낮지 않다고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특히 인구의 이동 범위가 제한적인 북한의 경우 대량 유행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지만 일단 확산이 되기 시작하면 만성적인 영양부족으로 인한 주민들의 취약한 면역력 탓에 그 파급효과는 훨씬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북한 당국이 신형 코로나로 인해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됩니다. 당장 김정일 생일 등 북한의 주요 정치행사들이 잇따라 축소되거나 취소됐습니다.

김연철 한국 통일부 장관: 북한은 이동 제한과 외국인 격리, 관광 전면금지 등 강도 높은 예방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며 김정일 생일 78주년과 건군절 72주년 행사도 예년에 비해 소규모로 진행됐습니다.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도 과거와는 다릅니다. 2003년 사스 당시 객관적인 보도에 그치던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상세히 국제사회의 발병 현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북한의 노동신문이 사설로 전파 방지를 강조한 것은 이례적으로, 북한 당국도 그만큼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북한 매체의 실시간 보도 역시 코로나 사태가 북한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주민들에게 부각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입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정운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합니다. 미국의 제재에 대응해 국가생존전략으로 내건 '정면돌파노선'은 초반부터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당 전원회의를 통해 '자력갱생'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면돌파전의 경우 사실상 중국의 지원을 염두에 둔 만큼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목표 달성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바이러스(비루스)유입을 막기 위한 '육해공 셀프, 자가 봉쇄조치'는 대북제재에 더해 북한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습니다.

이찬우 일본 테이쿄대 교수는 북한 내에서 시장경제화가 상당히 진행된 부문의 경우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계획경제 부문이라 하더라도 중국과의 무역에 의존해온 원료와 자재, 부품과 소비품의 경우 공급 부족에 따른 경제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에다 국경봉쇄와 격리, 이동 제한조치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주민들의 생계는 더욱 피폐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올해 당 창건 75주년이자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마무리되는 해를 맞는 김정은 체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북한이 코로나 국면의 출구전략으로 '도발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현재 처한 대내외적 위기 상황을 군사력 과시와 위기 조성을 통해 '정면돌파'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한국 내에선 북한이 현재 처한 어려움을 대내적으론 사회통제 강화와 숙청, 대외적으론 무력도발로 돌파하려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코로나 국면 속 북한의 잇따른 무력도발 역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기 전 내부 여론을 다잡고 체제 수호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사면초가에 놓인 북한이 상황 반전을 위해 오판을 하지 않도록 한미 양국이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하면서도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관건은 북한 당국이 발병 사실을 더 이상 은폐하지 않고 정확한 발병 실태와 정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주민들의 생존권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것이라고 한국의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