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폐 개혁은 큰 혼란을 일으키며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통화팽창의 억제, 신흥 자산계급의 견제, 후계 구도의 공고화 등을 염두에 두고 이번 조치를 단행했다고 보이며 앞으로 파생할 시장 기능의 위축, 물가 폭등과 같은 부작용을 억제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이에 관한 소식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북한이 지난달30일 오전 화폐 개혁을 전격적으로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선 화폐 개혁의 내용부터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한국에서 북한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테넷 신문 <데일리 NK>는 이날 북한 당국이 화폐 개혁을 전격적으로 단행했다면서 조선중앙은행 지점에서 화폐 교환이 시작됐으며 옛날 돈과 새 돈을 교환하는 비율은 100 대 1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렇지만 교환 한도와 교환 조건이 아직도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가구당 10만 원까지만 교환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은행에 예치했다가 찾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구나 북한 당국이 화폐 개혁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내각 결정 제423호를 내놓는 바람에 혼란은 계속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앵커:
이처럼 전격적으로 단행된 화폐 개혁에는 엄청난 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이는데 현지 사정은 어떻습니까?
기자:
<데일리 NK>가 3일까지 전한 바를 보면 북한 당국은 주민 동요가 일어나자 화폐의 교환 조건을 자주 바꾸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한도를 15만 원으로 올렸다가 환원했고 1000 대 1 교환 비율을 적용하는 저금소 저축은 교환 한도를 20만 원으로 책정했다 무제한으로 다시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화폐 교환이 전해졌던 30일 북한 장마당과 직장의 업무가 일제히 중단되는 대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일부 업소는 신화폐로 계산하라고 손님들에게 요구해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혜산 시장에서는 장사를 하는 여성이 화폐 개혁에 관한 소식을 듣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다 실신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북한 당국의 이 조치가 나온 뒤 모든 상거래가 중단되고 달러화와 위안화 가치가 오르고 물가는 수십 배나 폭등했습니다.
앵커:
자,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이런 혼란상을 무릅쓰고라도 화폐 개혁을 단행해야 하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기자:
심각한 인플레이션, 즉 통화팽창을 억제하려는 경제적인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북한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내놓아 부분적으로는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물가와 임금을 현실에 맞게 올렸습니다. 그 결과 통화량은 급속히 늘었지만 에너지와 원자재 난, 자체 경제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물가만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졌습니다. 북한은 자본주의 국가처럼 금리 정책으로는 풀린 돈을 회수할 방법이 없어 주민이 갖고 있는 돈을 사실상 몰수하려고 화폐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두어 들이면서 인플레이션, 즉 통화팽창을 해소하는 한편 주민의 부까지 회수하는 정책을 썼다고 보입니다.
앵커:
이런 경제적인 이유 외에 정치적인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고 보입니다. 정치적인 이유로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기자:
현재 북한에선 장마당을 비롯한 시장경제적 활동으로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나온 이후 부를 축적해 예비 자본가 계층으로 변한 세력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같은 잠재적인 도전 세력의 힘을 이젠 빼야겠다고 생각해 이번 조치를 단행한 측면도 있습니다. 화폐 개혁으로 주민이 키워온 시장경제는 타격을 받았지만 김 위원장이 노동당과 군대와 같은 권력기관을 통해서 육성해온 수령경제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시장경제를 통해 힘들게 돈을 번 주민은 가구당 10만-15만 원을 빼고 나머지 돈을 국가에 바친 꼴이 됐습니다. 김 위원장은 아들 김정은 씨가 달러를 갖고 운영하는 수령경제를 방패로 삼아 시장경제에 휘둘리지 않게 하려는 이유도 있습니다.
앵커:
북한의 화폐 개혁이 인민에게는 중장기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기자:
북한 당국이 당분간 체제 단속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의 싹을 짜른 효과가 있습니다. 또 화폐 교환의 한도를 10만-15만 원으로 책정해 주민의 부를 일부 회수함으로써 빈부차를 해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북한 화폐에 대한 불신을 낳아 앞으로는 달러화나 위안화에 대한 수요가 더욱 늘 것으로 전망됩니다. 북한 당국이 화폐 교환의 한도를 설정해 이에 대한 주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만이 조기에 해소되지 않는다면 체제 유지엔 오히려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전망됩니다. 북한 당국이 설정한 교환 한도라면 북한 주민은 생활비 몇 달 치의 돈만 신권으로 받는 것이어서 당국에 대한 불만을 쉽게 삭히기가 어렵다고 보입니다.
앵커:
북한의 화폐 개혁으로 남북의 경협 사업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있습니까?
기자:
영향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한국 기업은행 경제연구소의 조봉현 연구위원은 “화폐 개혁이 마무리되면 북한은 달러와 유로 등과 북한 돈의 교환 비율을 새로이 정하는 작업에 들어간다”면서 “이럴 경우 한국 기업이 개성공단의 북측 근로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화폐 개혁이 남북 경협에 영향을 직접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앵커:
이번 화폐 개혁이 성공하면 이후 금융 개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까?
기자:
개인의 자금이 은행으로 들어가 재원이 만들어지면 북한 기업이 정부의 재정 지원보다는 은행의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러면 돈의 흐름이 원활해 지면서 은행의 역할이 커지고 정부가 경제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오를 수도 있다고 일부 대북 전문가들은 전망합니다. 그렇지만 북한이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계획경제를 고수하거나 개혁과 개방 정책을 취하지 않는다면 이럴 가능성은 없다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앵커:
북한 당국은 화폐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나요?
기자:
북한 당국이 화폐 개혁으로 통화팽창을 잡는 데에 일부 목적을 두었다면 경제이론상 물자 공급을 늘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 기능이 줄어들면서 주민 생활이 더 어렵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자 공급에는 한국을 비롯한 외부의 지원과 경제 협력이 절대 필요합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전격적으로 단행된 북한의 화폐 개혁에 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