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 손혜민 박사의 북한경제] 고리채 늪에 빠진 진퇴양난 협동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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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요즘 북한 협동농장들에서는 봄 밭갈이와 (벼)모판 씨뿌리기가 한창입니다. 밭갈이에 필요한 연료를 비롯해 영농자재 마련이 시급한 농장간부들은 영농자금을 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협동농장들도 자력갱생하라는 당국의 방침 때문인데요. 그러나 올해에는 개인돈주들이 농장들에 영농자금 빌려주기를 꺼려하고 있어 협동농장들이 난관에 봉착했다는 소식입니다. 북한 경제를 전공한 탈북기자 손혜민 박사의 '북한경제', 오늘은 "고리채 늪에 빠져 진퇴양난의 협동농장"편을 보내 드립니다.

-자금 대부 거절하는 개인 돈주들...농장간부들 안절부절

해마다 봄철이면 협동농장에서는 개인 돈주로부터 영농자금을 빌리는 것이 관례처럼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해 농사 준비에 꼭 필요한 영농자재를 농장 자체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당국의 방침 때문입니다. 자력갱생 정신으로 나라의 쌀독을 책임지라는 당의 지시에 농장간부들은 개인 돈주로부터 자금을 먼저 돌려쓰고, 가을에 빌린 돈의 두 배로 계산해 알곡 현물로 갚아주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거래는 북한 경제난이 장기화되면서 일반화되었는데요. 그런데 올해는 개인 돈주들이 협동농장들에 자금 대부 요청을 외면하고 있어 농사준비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평안북도 용천군의 한 주민 소식통은 2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지난해만해도 3월에 들어서면 농장간부들은 시내에 나가서 개인 돈주들에게 1만위안 정도는 쉽게 돌렸는데, 올해는 100위안도 꿔주려는 돈주들이 없어 농장간부들이 안절부절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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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잘 지어 코로나 봉쇄 장기화에 대응하자는 강연 내용 일부. /RFA 자료사진

지난해보다도 대부금 이자를 더 올려주겠다며 농장간부들이 사정을 해봐도, 개인 돈주들의 반응은 차갑다고 하는데요. 돈주들의 태도가 돌변한 배경에는 김정은이 당 전원회의에서 협동농장의 빚을 탕감해준다는 특별조치를 선포한 것이 발단이라는 게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소식통은 “최고존엄이 당 제8기 4차 전원회의(2021. 12월 27~31)에서 협동농장들이 국가로부터 대부를 받고 상환하지 못한 자금을 전부 면제해주라고 선포한 이후 사법당국은 협동농장에 가을에 두배가 넘는 알곡을 돌려받기로 하고 돈을 빌려준 돈주들에 은근히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봄철에 협동농장에 돈을 꾸어준 개인 돈주들은 탈곡이 끝나는 11월부터 1월 사이 농장간부들로부터 대부금의 두 배에 달하는 벼나 옥수수를 받기로 약정합니다.

-협동농장 빚더미 탕감?...개인 빚까지 탕감해주라는 것

그런데 김정은이 직접 협동농장 빚을 탕감해주라고 특별조치 내렸으니 개인 돈주들도 당의 뜻을 받들어 어려움에 처한 농장에, 대부했던 자금을 스스로 탕감해주도록 사법당국이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를 거절하면 최고존엄의 지시를 어기는 반국가, 반사회주의자로 몰릴 우려가 크기 때문에 개인 돈주들은 협동농장에서 받아야 할 알곡을 받아내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함경북도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함경북도 무산군의 한 주민 소식통은 “눈을 뜨고 생돈을 국가(협동농장)에 떼인 것이다. 한 번 해보고 싶어도 개인 돈주들은 시범꿰미에 걸릴까봐 참고 있다”면서 “협동농장이 진 국가 빚을 면제해주라는 특별조치는 개인들의 자금을 몰수하려는 조치가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지 주민 : "농장이 국가에 빚을 진다는 게 무슨 빚을 지겠어요? (탕감조치로)국가가 손해 보는 게 아니라 개인(돈주)들이 손해 보지. 국가가 빚 탕감해주면 그 (협동농장)작업반장들이 택(턱) 씻기가 완전히 얼마나 좋아. 방침을 코에 걸고 개인 거 떼먹는 거지. 거기다(협동농장) 돈 넣은 사람들만 손해 보는 거에요. (농장에)돈 달라고 했다가 시범꿰미 걸리면 그것도 큰일이고..."

이 때문에 개인 돈주들은 다시는 협동농장에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며 돌아서고 있어 농장경영에 악재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농장 간부들은 자력갱생하라는 당의 방침으로 해마다 자금을 돌려쓰는(빌려쓰는) 개인 돈주들을 정해놓고 이들과의 대출거래를 통해 신뢰를 쌓으며 농사를 지어왔었는데, 이러한 신뢰관계를 당국이 끊어버린 셈이 되어 협동농장들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농장에서 자력갱생한다는 게 개인 돈주들하고 유무상통해서 국가에 손 안 빌리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건데, 협동농장 빚더미 탕감하라는 김정은의 한마디에 농장과 개인 돈주들간 유대가 끊어진 거에요. 농장에서 알아서 농사를 지어 국가에 이바지하려고 애를 써왔는데 국가가 잘라낸 거나 마찬가지죠."

-" 협동농장이 빚을 진 대상은 국가가 아니야 ..."

북한 주민들은 협동농장들이 빚을 진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 돈주들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평안북도의 한 농민 소식통은 “당국은 영농자재를 대주지 않으면서 농사가 잘 안 돼 나라에 바쳐야 할 군량미 등이 미달하면 이를 협동농장이 국가에 진 빚으로 계산한다”면서 “그것은 빚이 아니라 영농자재 공급 미비와 자연재해 등의 요인으로 알곡생산 계획이 미달된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그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주민 :"빚이라는 게 너네 농장에서 가을철에 농민들 식량줄거 내놓고 군량미가 얼마 뭐 얼마 국가에서 지정해줘요. 예를 들면 농경지에서 500톤 생산돼야 되는데 300톤밖에 알곡이 안 나와요. 그게 빚이에요. 군량미도 있어요. 그걸 못내요. 계획 못하면 그게 빚이에요. 근데 그걸 빚이라고 안하고 실제는 계획미달이라고 하지 농장에서는 그걸 (국가에)빚졌다고 생각 안 해요."

함경북도의 한 주민소식통도 “해마다 봄철이면 협동농장에서는 농사에 필요한 비닐박막과 비료 등 영농자재를 전부 개인 돈을 꾸어 장마당에서 구입해, 한해 농사를 짖고 있기 때문에 나라에 빚지는 게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현지 주민: "국가에서 돈이 없으니까 장사꾼이 돈이 많아서 그런 돈주들이 있재. 기름 살 돈이고 뭐고 없으니까 다 개인 돈으로...밭을 갈아야 되는데 뜨락또르에 넣을 기름이 없으니까 기름도 야매로 사야 되니까 농장에서..봄에 강냉이 한톤 값 주면 가을에 가서 벼로 한톤 받게 계약해요."

굿파머스 북한연구소 조충희 소장은 “협동농장들은 국가에도 빚을 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개인에게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면서 “서해안을 비롯한 벌방(평야)지대 농장보다 농사에 불리한 산간지대의 농장들이 개인돈을 돌려쓰고 물어주지 못해 빚더미에 앉아 있는 농장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굿파머스 북한연구소 조충희 소장 :"국가에 진 빚이라는 게 아직까지 국가와 농장 거래는 시장가격이 아니고 국정가격으로 하거든요. 국정가격에 쌀 1키로그램에 46원이에요. 국가에 빚을 졌다고 해도 쌀을 1~2톤 시장에 팔면 국가에 진 빚은 물어줄 수 있어요. 다시 말하면 국가에서 전기 물, 비료, 농약 이런 것들을 공급할 때 농장 계좌에 돈이 없으면 가을에 가서 (알곡)생산물을 수매해서 물어내도록 합니다.

(농장마다)국가의무수매계획이 있거든요. 그런데 (농장에서)알곡생산을 제대로 못해 (국가에 바쳐야 할 알곡현물)그것을 물지 못하면 농장이 국가에 계속 빚을 지게 돼요. 산간지역 농장처럼 조건이 안좋은 농장은 계속 국가에 빚을 지게 되요. 그래서 김일성이 1960년대 초 한번 (협동농장)빚을 탕감해줬는데 이번에 (김정은이)또 빚을 탕감해줬는데 그 조치가 개인과 농장이 거래한 자금도 갚아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봄철에 들어서면 국가는 연료와 비닐박막 등 필수자재를 협동농장이 해결하도록 요구하고,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은 작업반장들에게 내리먹이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3월이면 협동농장 작업반장들은 개인 자금을 빌리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현지 소식통은 말했습니다.

현지 주민 :"작업반장이 눈이 돌아가고 생각이 빨라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작업반에 돈이 없어요. 개인한테 (돈을)꿔야 되거든요. '중국위안으로 1천위안 주겠으니까 2천위안 달라. (현물로는)100위안당 벼 50키로 달라' 그래요. '그럼 (농장간부가) 알았어' 하고 꾸는데 봄에 100위안을 받으면 직돈으로는 벼 50키로지만 가을에 현물로 갚아줄 때는 100위안 당 벼 100키로 가격이에요. 두 배 줘야 해요."

-농장간부, 개인 돈주들에 호소...“돈 좀 꾸어달라”

그런데 북한 당국이 협동농장 빚더미를 탕감해준다는 조치를 발표하며 농장에 빌려준 개인 자금도 무효화될 위기에 처했고 이로 인해 올해 농장 경영에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영농자금이 나올 데가 없는데, 올해도 당국은 농장 스스로 자력갱생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안남도의 한 소식통은 “바빠 맞은 농장간부들은 개인 돈주들을 조용히 찾아가 지난해 꾸었던 자금도 이자를 계산해 가을에 돌려주겠으니 올해도 영농자금을 돌려달라고 사정하고 있다”면서 “그래도 돈주들이 거절하면 아예 농경지를 빌려주겠다며 사정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지 주민 :"농장 빚 없애준다고 국가가 돈주들도 그렇게 (탕감)하라고 해서 다 돌아섰어요...기니까 있지 작업반장이 직접 와서 '돈 좀 꿔달라' '뭐 믿고 주나' 그러니까 (농경지)땅 떼 주겠다고 지금 당장...밭을 갈아야 하는데 뜨락또르에 넣을 기름이 없으니까 기름도 야매로 사서 넣어야 하니까 안달이 났지..."

결국 협동농장 빚더미를 탕감해준다며 농업생산을 추겨 세우려던 당국의 조치가 개인 돈주들의 영농자금 대부로 유지되어 왔던 협동농장 경영에 악재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현지 주민: "개인들한데 호소해요. 너네 농장작업반에 돈을 얼마 줬냐, 이자를 얼마 받아야 되냐...그럼 돈주들은 중국돈 100원에 가을에 벼 한가마니 받기로 농장하고 계약하고 줬다고 말해요. 그럼 나라가 힘들어서 (협동농장)작업반장들한데 대줄 게 없어 그러는데 이해할 수 없냐. 본전만 받을 수 없냐 나라에서 개인한데 호소하죠. 돈을 또 꿔야 하니까..."

굿파머스 조충희 소장은 “국가가 협동농장의 빚을 탕감해준다고 하면서 개인이 협동농장에 빌려준 자금도 탕감해주도록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 개인 돈주들은 더 이상 농장에 투자하지 않으려 한다”면서 “이러한 조치는 오히려 농장 경영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굿파머스 조충희 소장 :"협동농장이 국가에 진 빚은 국가의 빚이고, 개인한데 진 빚은 개인 빚인데 북한 노동당이 그것을 똑같이 취급을 하면 안되요. 이 조치는 사실상 농사를 못 짓게 하는 것이고. 국가 은행에 돈이 없어서 협동농장에서 개인의 여유자금을 돌려 쓰도록 농장법이 만들어졌는데, 농장에 국가에 진 빚을 탕감해준다고 그의 몇 배나 되는 개인 자금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강압적 수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기자 손혜민,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