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6/27/22
앵커: 워싱턴DC 근교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97세 고령의 한국전 참전용사, 정규섭 예비역 해군제독이 최근 자신의 치열했던 삶을 담은 회고록을 냈습니다. 6.25전쟁 당시 아찔한 순간들도 담겼는데요. 심재훈 기자가 24일 그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6.25전쟁이 터지고 이틀 뒤인 27일, 당시 해군소령으로 국방부에서 근무했던 정규섭 예비역 제독은 지프차를 타고 급히 한국은행으로 갔습니다.
한국은행 총재와 ‘국가 재산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일’을 긴급히 논의하고 지하실로 내려가 금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하루만 늦었어도 대한민국 전재산이 북한에 넘어갈뻔 했다”며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합니다.
정규섭 예비역 해군제독 : 금괴가 지하실 금고창고에 있었는데, 그게 80상자 정도였고 그것을 여러 상자에 넣어서, 헌병대에서 GMC 트럭 2대를 보내서 거기에 다 실어서 헌병 1개 소대가 호위를 해서 진해로 내려보냈어요. 그때 우리가 하루만 늦었어도 우리나라의 전부를 북한군 손에 넘길뻔 했죠.
그는 북한군이 내려오는 상황에서, 식량을 보존하기 위해 대전 금융조합 창고에 있는 쌀 수천가마를 부산으로 내려보내기도 했습니다.
정규섭 예비역 해군제독 : 대전 정거장 옆에 굉장히 큰 창고가 여러개 있었는데, 충청남북도에서 나온 쌀이 거기에 수천석이 창고에 쌓여있었습니다. 그것을 전부 부산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정 예비역 제독은 경북 영덕 전선이 위험하다는 보고를 받은 뒤에는 경주 국립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신라왕의 금관과 석기시대 유품 등 국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정규섭 예비역 해군제독 : 밤중에 경주에 내려가서 경주 국립박물관에 있는 모든 국보급 고적들을 전부 상자에 넣어서 그것도 역시 진해로 내려보낸 일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직접 체험한 6.25의 긴박했던 순간들과 외무부 차관보 등 외교관으로 생활하며 경험한 한국 근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담아 회고록을 발간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정규섭 예비역 해군제독 : 80세 말쯤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늙은 노인이 지난 추억을 되새겨가면서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만둘까 생각도 했었는데, 집사람의 내조와 주위 몇분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이것을 끝마쳤습니다.
회고록에는 고향이 황해도인 그가 1945년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얼어죽을 위험에 처한 할머니를 구해냅니다.
정규섭 예비역 해군제독 : 나이 많은 부인이 돌을 잘못 밟아서 물에 퐁당 빠졌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도 그냥 가더라고. 내가 보니까 할머니가 그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 할머니를 건지니까 추운 겨울에 치마하고 속옷이 꽁꽁 얼잖아. 그 할머니가 걸을 수가 없잖아요. 30~40리 길을 걸어서 남한에 청단까지 왔어요.
이후 그는 해군사관학교 1기로 입학해 군생활을 시작합니다. 군에서 알게된 의사 이규택 박사로부터 영어를 배우게 되고, 이를 계기로 미국 해군 경리학교 연수 시험에 합격한 뒤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정규섭 예비역 해군제독 : 그런 도움을 받으면서 내가 살아왔어요. 해군에서 그랬고, 외무부에서도 그랬고, 그래서 내가 책 이름을 '저 높은 곳을 향하여'로 지었어요. 그곳을 향해서 우리부부가 애들 키우면서 살아왔거든요. 그렇게 살아오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줬다. 그게 내 스토리입니다.
정 예비역 제독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돕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는다며, 한인들이 협력하며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희생정신과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정규섭 예비역 해군제독 : 합치지를 못해요. 사람들이 개개인들의 능력은 있는데 합해서 무슨일을, 국가면 국가, 단체면 단체일을 해야할텐데 그것을 소홀히 하는 것 같아요. 각기 자기 의견들만 내세우고 그래서 자기 자신들이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희생적인 정신을 가지고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합치길 바랍니다.
기자 심재훈,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
*바로잡습니다: 정규섭 예비역 제독의 발언 내용 중 금괴 80톤을 금괴 80상자로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