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의 장마당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국이 취한 손전화 관련 제한 조치를 새로운 기술로 해제시키고, 주로 혼자서 음악을 감상한다는데요. 심재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학술지 ‘북한연구학회보’ 최신호(6월30일자)에 실린 논문 ‘김정은 시대 북한 새 세대의 음악듣기’.
연구를 진행한 한국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하승희 교수는 평양과 양강도, 함경남도 등에서 최근 탈북한 20~30대 탈북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여전히 주민들이 한국 음악을 듣지 못하도록 ‘지능형 손전화기(스마트폰)’에 기술적 제한을 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디카드’로 불리는 SD카드를 손전화기에 넣을 때, 디카드 속 파일이 모두 자동적으로 지워지도록 해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장마당 세대들은 이런 제한을 더 앞선 신기술로 해제시키고 원하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양강도에서 온 30대 탈북 남성은 “손전화에서 당국의 초기화를 피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한 뒤 디카드를 넣으면 파일이 지워지지 않아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초기화를 피하는 프로그램은 컴퓨터를 잘 다루는 동료에게서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장마당 세대는 주로 밤시간대, 혼자서 음악을 듣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평양에서 온 20대 후반 탈북 남성은 “집에 있을 때, 부모님 몰래 들었다”며 “밤에 공부하는 척하면서 이어폰을 꼽고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평양에서 온 30대 초반 탈북 여성은 “이부자리에 누워 노래를 듣다가 잠들었다”며 “귓속 음악이 자신이 좋아하는 세상으로 이끌어가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북한에서 2014년 탈북해 미국에서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는 30대 이서현 씨는 1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에 있을 때 주로 USB에 담긴 MP3, MP4 파일과 이어폰을 사용해 한국음악을 들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손전화와 SD카드 보다는 USB가 보안상 더 안전하다고 생각돼 USB를 이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북한의 틀에 박힌 음악보다 사람의 정서를 자유롭게 표현한 한국음악에 끌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서현 씨 :북한사람들은 북한 노래를 별로 즐기지 않죠. 모든 노래가 선전을 위한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다보니까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내용이 많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노래는 인류 보편적인 우정, 사랑, 심리를 잘 드러냈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도 즐겨 따라부른다고 생각합니다.
이 논문의 저자 하승희 동국대 교수는 여러 명이 함께 음악을 들었던 과거북한 세대와 달리, 젊은세대가 ‘혼자 손전화와 이어폰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검열을 강화할수록 젊은 세대의 청취양상은 더욱 개인화되고, 폐쇄적인 영역으로 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당국이 비사회주의현상을 통제하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한 상황에서, 기술발전은 장마당 세대의 음악문화를 더 개인의 영역으로 밀어넣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장마당 세대는 주로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이전까지 북한 주민들이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 국가를 대신한 장마당을 통해 생존을 이어갔던 시기에 태어난 세대를 말합니다.
과거 세대보다 체제에 대한 충성도가 낮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며, 이념보다는 돈벌이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북한 내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자 심재훈,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