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 귀국자의 기록을 기억하는 모임'이 재일동포 북송사업 피해자 50명을 면담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고령인 만큼 조사와 기록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사단법인 ‘북한 귀국자의 기록을 기억하는 모임’이 18일 서울에서 주최한 성과 보고회.
단체 소속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이 지난 4년 동안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거짓 선전에 속아 북한으로 간 ‘귀국자’, 즉 북송 피해자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담 조사(인터뷰)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이에 따르면 지난 1959년부터 1982년까지 이어진 재일동포 북송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향한 동포는 일본 국적인 가족 6천700여 명을 포함한 9만3천340명.
당시 재일동포 인구 6.5명 가운데 1명에 이르는 대규모 민족 이동이었습니다.
단체의 사무국장을 맡은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이 사업이 형식상으로는 국교가 없던 북한과 일본 간 적십자사들이 맺은 상호 협정을 통해 추진됐지만, 사실상 일본 정부의 방관 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북한 귀국자의 기록을 기억하는 모임' 사무국장:일본 사회 전체가 등을 떠밀어 북한에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업이었습니다. 일본 사회는 이것을 두고 '경사'라며 억압받던 사람들이 조국으로 가는 인도적 사업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습니다.
‘북한 귀국자의 기록을 기억하는 모임’, 즉 기록회는 피해자 50명을 직접 찾아가 한 사람당 평균 8시간을 들여 심층 면접을 실시했습니다.
대부분 고령인 점을 감안해 조사는 주로 1940~50년대 생인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이들 가운데 탈북이 비교적 용이한 북중 접경 지역 출신이 많았다는 설명입니다.
기록회는 사진이나 당시 북송 피해자들이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 우표 뒤에 적은 비밀 메시지 등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도 다수 수집했습니다.
북송선을 타고 청진항에 도착했을 당시 피해자들이 받은 충격에 대한 진술도 포함됐습니다.
재일동포 북송사업 피해자 : '아, 이곳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의 겨울은 한국보다 훨씬 추운데, 얇은 옷과 신발을 겨우 신고, 양말도 신지 않은 모습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당시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았던 일본에서 북한으로 건너가자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식량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합니다.
재일동포 북송사업 피해자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 전부 다 그랬습니다. 학교를 다녀와도 먹을 것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화장실에 가면 냄새가 나지, 자려고 하면 빈대도 많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기록회는 북송사업 피해자 9만 3천여 명이 북한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지금까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이 사업 때문에 북한과 일본 사이에 많은 이산가족은 물론 생사나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이 발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공백을 ‘재일동포 100여년 역사에 난 구멍’으로 표현하며 이를 메우기 위한 작업인 고령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기록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조사 결과를 온라인에 공개한 뒤 책으로 펴내는 것은 물론, 녹음한 음성과 사진, 편지 등 관련 사료를 정리 및 전산화해 보관하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자 홍승욱,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