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모녀 미국 정착기] ② 성착취에 계약서 강요... “나 같은 피해자 또 안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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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목숨을 걸고 북한을 떠난 탈북민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어느 하나 쉬운 여정이 없습니다. 혜진이와 엄마 강미영씨는 중국이나 한국에 아는 사람 한명 없이 무작정 떠나 탈북 중개인(브로커)의 협박을 피해 꿈에 그리던 한국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와야 했습니다. 미영씨가 탈북길에서 겪은 이야기를 어렵게 털어놨습니다.

기자가 강미영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월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주최한 한 탈북민 증언 행사였습니다.

미 국무부에서 나온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1월 유타주로 탈북민 4명이 난민으로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중 3명이 미영씨와 두 딸이었던 겁니다.

계속되는 코로나로 2년 만에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의 첫 탈북민 입국이었습니다.

연락처를 교환한 기자에게 미영씨는 꼭 할 말이 있다며 따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미영씨와 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기자는 미영씨 가족이 살고 있는 미 서부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미영씨는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미영씨 :차마 나는...브로커 나이가 물어보니까 28살이라는데 첫날에 저와 같이 온 처녀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한 것 같습니다. 저는 모르고, 피곤하니까 그냥 잤거든요. 그런데 다음날 처녀애가 말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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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Photo - 김태이

미영씨는 탈북 후 중국에 숨어 지낼 때 집주인이 알고 있다는 한국인 브로커를 소개받고 중국 선양으로 왔습니다.

한국인 브로커였는데 선양에서 탈북민들을 모아 태국(타이)으로 가기 위해 다른 브로커에게 보내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 브로커는 비밀 거처에 머무는 동안 탈북민 여성들과 강제로 잠자리를 했는데 결국 안전하게 한국으로 가야하는 탈북민들은 누구 하나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미영씨 :약혼한 남자가 여자를 데려가는 경우에도 자기 약혼녀가 그러는 걸 보고도 피눈물을 참는데요. 어느 게 나은가, 북한으로 가는 게 나은가, 한국으로 가는 게 나은가. 이 공정이 필수라 하더란 말입니다. 둘째날에는 방법이 없으니깐 하자는 대로 했습니다. 저도 당했고요. 그 후에 온 여자는 쉰 지났는데 그 여자도 저보다 더 나이가 많은데, 그여자도 역시 다 당했거든요. 누구랄 것 없이. 서로 얼굴 마주보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난 다 당해야만 가는 걸음이라 생각했습니다.

수치스럽고 분했지만 미영씨 역시 아이들과 한국을 가야했기에 눈물만 삼켰습니다.

그렇게 다른 탈북민 15명과 청도(칭타오)에 도착해 공안의 눈을 피해 한 가정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한국까지는 다른 브로커가 담당했는데 미영씨를 비롯해 그 곳에 모인 탈북민들에게 불러주는 대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옆에 있는 계약서와 비교해보니 미영씨의 계약서 금액이 터무니 없이 높았던 겁니다.

미영씨 :계약서를 쓰려고 했는데 옆에 사람 쓰는 거 보니깐 천만원이란 말입니다. 우리처럼 똑같이 국경 넘어 장백에서 왔는데 왜 나는 7천만원인가요. 아이들이 있다고 하면 3천만원이라고 하니깐 이 사람이 윽박지르기 시작했단 말입니다. '쓰라면 쓰라'. 써도 공평하게 하자, 설명해달라 하니까 '야 죽게된거 살려주니깐 이렇게 나오는가' 하면서 하면서 이 간나 저 간나 하더라고요.

미영씨는 비용이 공평하지 않다며 따졌고, 가격을 깎아주지 못하면 상환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그 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북한으로 돌려보내겠다는 브로커의 협박에 이럴 바엔 차라리 북한으로 가겠다고 맞선 미영씨에게 돌아온 답변은 더욱 험악했습니다.

미영씨 :계약서 안쓰겠다 하니까 이 사람이 그 여자 대가리 까서 죽이랍니다. 15명 그 사람들도 다 같이 지켜봤습니다. 청장년들이 두세명 있었는데 '그 여자를 묶어라', '그 여자 양심이 없는 간나'라고 나를...나를 머리를 까서 넣으라고 하게 되면 우리 아이들은...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궁지에 몰린 미영씨는 당장 창문으로 올라가 ‘조금이라도 다가오면 밖에 대고 중국말로 여기 탈북민들이 있다’고 소리치겠다고 맞대응했습니다.

살려면 그 방법밖엔 없었죠.

그날 한 방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 들어 자신을 묶어 넣기라도 할까 공포에 질린 미영씨는 아이들과 함께 복도에서 이불도 없이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일행들과 브로커들이 미영씨를 달랬지만 계약서 서명을 완강히 거부하자 브로커는 더 악랄하게 협박했습니다.

미영씨 :다음날에는 얼르더라고요(달래더라고요). 뭐라 하는가, '다 뜯어팔자고 생각했다, 다 뜯어 팔아도 이 돈이 나온다'. 7천만원이면 중국돈 42만원 정도인데. 옆에 여자들이 나에게 알려줍니다. 장기를 뜯어 판답니다. 우리는 북한에서도 안 찾고 이 땅에서 죽어도 중국 들어온지도 모르고 행방불명돼도 살인 이런 것도 해당이 안 되고. 장기라는 게 비싸답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댈까 두려워진 미영씨는 ‘1년 안에 7천만원을 갚고, 브로커가 정해 준 곳에서 일하겠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결국 서명을 했습니다.

하지만 미영씨는 이 계약서를 가지고 한국에 들어가 한달에 7천만원을 갚을 자신이 도저히 없었습니다.

브로커의 감시를 피해 극적으로 도망 친 미영씨 가족은 홀로 그렇게 중국에서 태국으로 넘어갔습니다.

미영씨는 서명한 계약서가 유호하다는 생각에 빚을 갚아야 하는 한국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간다는 한 탈북청년의 말을 듣고 엉겁결에 미국 난민을 신청했습니다.

태국 난민 수용소에서 2년을 기다린 끝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 미영씨.

가는 도중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만감이 교차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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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Photo - 김태이

미영씨 :도중에 인천공항에 12시간 있다가 미국가는 비행기 갈아타느라 있을때 저랑 아이들이 한참을 울었습니다. 한국 가자고 한게 한국 땅에는 못들어가고. 그래도 한국 땅에는 같은 민족, 조선 사람이 있거든요. 한국 가자고 떠났는데 한국도 못가고 인천공항 들어가서 '아 게 그렇게 가고 싶은 한국땅이었구나'. 한국땅 바라보면서 한창 울다가 미국 왔거든요. 잘됐는지 안됐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방법이 없어서 미국을 택했지, 원래는 한국에 들어가야 했거든요.

지난 2010년부터 1천200명이 넘는 탈북민을 구출해온 비영리단체 링크(LiNK)의 박석길 대표는 한국에 먼저 나간 가족 등 지인을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브로커를 찾을 경우 이를 악용한 일부 브로커로부터 인권 유린을 당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대표 :탈북하신 분들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젊은 여성분들이 많으시고요. 20~30대. 당할 수 있는 착취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중국까지 가시면 노동착취라던지, 성적으로도 착취를 당할 수 있고, 한국이나 미국에 가시려는 길에도 그런 위험성이 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혼자 브로커의 상담을 해야 한다면, 일을 잘하는 브로커들도 있지만 이분들이 어디 갈데가 없으니까, 경찰을 부를 수 있는 방법도 없고, 특히 중국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저항할 수 없는 착취의 위험에 처한 상황이기도 하죠. 그런 걸 악용한 브로커의 케이스(사례)가 안타깝게도 많았습니다.

계약서에 서명했다 하더라도 한국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없었을까?

미영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북한에서 살아온 미영씨는 부당함에 맞서 재판이나 소송이라는 법적 장치가 있다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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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Photo - 김태이

그저 계약서에 서명하면 무조건 책임져야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 아이들에게 해가 될까 그게 가장 두려웠던 거죠.

한국에서 탈북민들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제공하고 있는 박원연 변호사는 브로커 비용에 대한 계약서가 민사상으로는 효력을 가질 수 있지만 불공정한 과정으로 이뤄졌을 경우 충분히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박 변호사 :결정적으로 브로커 쪽에서 금액을 쓴대로 사인(서명)을 하라고 강요를 했는데 강요를 하면서 협박성 내용들이 뭐냐면 '북한으로 돌아가라', '어떻게 해버리겠다', 위협적인 상황으로 몰아갔단 말이죠. 한국 법원에서는 무효로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하지만 도망자 신세로 중국에 숨어 있는 탈북자들이 자신의 한국행을 책임지는 브로커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 변호사 :이런 불공정 계약에 대해서 싸우기가 힘든 상황이에요. 사실상 본인의 신변 안전 문제가 브로커에게 전적으로 맡겨진 상황에서 북송 위험, 시골에 팔려간다거나, 불법 성매매 업소에 팔려갈 위험에 처했기 때문에 거부하라고 할 순 없는데.

박 변호사는 다만 나중에 부당한 계약을 증명할 수 있도록 같이 탈북한 일행들의 정보와 연락처를 최대한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미영씨는 왜 처음 본 기자에게 어디에도 하지 못한 어려운 이야기를 터놓았을까.

미영씨 :제가 바라는 건 뒤에 오는 북한 사람, 한국에 저처럼 이렇게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저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거란 말입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막다른 골목에 처하면. 좀 빠져나왔는데 이미 일을 하면서 일생 그렇게 사는지도 모르겠고. 또 당할 사람들이 있을거고.

기자 김소영,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