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자체 수입원 없이 국가예산에서 운영자금을 받고 있는 북한 기업소들이 내년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상급기관 간부들을 찾아다니며 뇌물을 고이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 안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함경남도 단천시의 한 기업소 간부 소식통은 4일 “내년 예산편성이 끝나는 12월에 접어들면서 각 예산제(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기업소들이 부지런히 윗 기관 간부들을 찾아다니고 있다”며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면 예산을 주무르는 간부들에게 뇌물을 고여(주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독립채산제 기업과 달리 예산제 기업은 종업원들의 월급과 기업경영에 필요한 자금을 국가예산에서 받기 때문에 기업소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되는지, 일부 삭감되는지 여부가 정말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기업은 독립채산제 기업과 그 반대 개념인 예산제 기업으로 나뉩니다. 당국이 허용한 한도 내에서 독자성을 가지고 경영활동을 하는 독립채산제 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비용을 자체로 조달하고 동시에 이익금의 일부를 국가에 바쳐야 합니다. 반면 생산을 하지 않아 자체 수입원이 없는 예산제기업은 경영에 필요한 자금을 전부 국가예산에서 받아 씁니다. 예산제기업에는 원림, 상하수도 등 도시경영부문과 학교, 병원과 같은 공공부문 기관, 기업소들이 속합니다.
소식통은 “예산제기업소가 작성한 내년 예산안은 군 인민위원회 해당부서의 승인을 거쳐 도에 올라간다”며 “도에서는 다시 도인민위원회 해당부서와 지구계획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다음 해 국가예산에 반영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서 “하지만 도인민위원회와 지구계획위원회가 각 기업소들이 제출한 예산안을 꼬치꼬치 따지고 묻는 등 깐깐하게 검토한다”면서 “재정 상태가 열악하다 보니 당국에서는 생산물이 없는 예산제 기업소들의 예산을 어떻게 하나 줄이려고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결국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각 기업들이 예산을 다루는 부서와 간부들에게 뇌물을 고이며 사업(로비)을 한다”며 “우리 기업소도 책임기사와 계획지도원이 11월에 나흘이나 도(함흥)에 올라가 사업을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소식통은 “우리 기업소는 도인민위원회와 지구계획위원회 간부에게 각각 술 20kg(8.2$)과 휘발유 표지(쿠폰) 10장(144$)을 뇌물로 주고 예산안 심사를 무난히 마쳤다”며 “당국이 여느 해보다 예산안 검토를 너무 빡빡하게 하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업소가 작성한 예산을 통과시키기 어렵다”고 증언했습니다.
북한에서 간부들이 뇌물을 현금으로 받는 것을 꺼릴 수 있어 임의의 순간에(언제든지) 돈으로 전환이 가능한 휘발유 표지를 주었다는 겁니다.
소식통은 그러면서 “국가 예산을 받아 운영되는 기업소의 예산을 줄이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며 “실례로 원림사업소나 상하수도사업소 같은 도시경영 부문 기업소의 예산이 줄어들면 원래 이들 기업소가 할 일인 도로와 공원, 상하수도 관련 시설 관리와 청소 같은 것을 주민들을 동원시켜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소식통은 북한에선 뇌물 고이는 게 일상적인 일이지만 특히 최근 북한 경제 상황이 코로나 등으로 매우 열악하고 관련 예산도 감축됐기 때문에 뇌물을 통한 예산 확보 로비 현상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관련 양강도 운흥군의 한 주민 소식통은 5일 “11~12월초면 각 (예산제)기업소들이 내년 국가계획에 따르는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며 “우리 기업소도 전달에 계획지도원과 노동정량원이 예산안 통과를 위해 도에 네 번이나 오르내렸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기업소가 작성한 내년 예산이 검토과정에서 지적을 받아 삭감되면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게 된다”며 “식량배급을 못 받는 노동자들에게 월급마저 주지 않으면 다들 출근하지 않아 기업소 운영에 큰 지장이 생긴다”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면 도시경영 부문 기업소의 경우 노동자들이 제대로 출근하지 않으면 도시미화 상태가 엉망이 된다는 겁니다.
소식통은 계속해서 “그러니 기업소 간부들이 뇌물을 싸들고 윗 간부들을 찾아다니지 않을 수 없다”며 “또 뇌물을 고이지 않고 제출한 예산이 그대로 통과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한국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북한 정부의 1년 예산은 91억 달러, 한국 정부의 1년 예산은 북한의 40배가 넘는 3,709억 달러 입니다.
기자 안창규,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