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북한 쌀지원 배로 보답해

남한의 평범한 70대의 농부가 자비를 들여 북한에 쌀 천가마를 보냈습니다. 21년 전 겪었던 물난리 때 북한에서 쌀과 구호품을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지난 1984년 남한 전역은 태풍 ‘준’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남한 돈으로 2천억 원이 넘는 재산 피해가 났고 1백 89명이 목숨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북측은 이 해에 큰 피해를 당한 남한 수재민을 위해 쌀 5만 석과 시멘트 10만 톤 등을 남측에 보내왔습니다.

남북통일은 돼야하고 그런 뜻에서 북한에 주는 거지 아무 뜻 없어.

평택 서탄면에서 농사를 짓던 홍한표 씨 가족도 태풍으로 인해 논과 집이 모두 물에 잠기는 큰 피해를 입었고 북측에서 보내온 쌀 닷 말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씨의 가족들은 이 쌀로 근 한 달을 지냈습니다. 홍씨의 큰 아들인 성동씨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홍한표: 그 때 제가 대학교 일학년이었는데 집에 돌아가 보니 집논이 다 잠겨있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셔서 모두 11가족이었는데, 북측에서 준 쌀로 한 달 먹고 남아서 떡도 해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홍한표 씨는 북한의 식량 사정이 어렵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이때 받은 도움을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드디어 지난 9일 자신의 힘으로 마련한 쌀 천가마를 북한으로 보내는 것으로 이때의 고마움을 되갚았습니다. 남한 SBS에 보도된 홍한표 씨의 말입니다.

홍한표: 남북통일은 돼야하고 그런 뜻에서 북한에 주는 거지 아무 뜻 없어.

홍씨가 지원한 쌀을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은 쌀 2백 가마와 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받은 토지 보상금의 일부를 털어 마련한 8백 가마로 시가 170만 달러, 한화로 1억 7천만 원 어치입니다.

홍한표 씨의 가족들은 처음 홍씨가 토지 보상금으로 북한에 천가마의 쌀을 지원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당황했지만 아버지의 평생 생각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응했습니다.

홍씨 가족: 아버지는 항상 그런 말씀을 해왔기 때문에 그러시라고 했습니다. 사실 결정은 쉬었는데 쌀을 북으로 보내는 과정이 더 어려웠습니다.

홍씨의 가족들은 이 같은 지원 의사를 지역 농민회에 전달했고 지역 농민회는 전국농민연맹을 통해 북측에 지원의사를 전했습니다.

북한은 지원을 수락하는 의사를 전달해 왔고 농민회는 홍씨가 준비한 쌀을 20 kg씩 4천 포대로 나눠 육로를 통해 북측에 전달했습니다. 쌀을 지원하는 길에는 거동이 어려운 홍씨 대신에 홍씨의 큰 아들 성동 씨가 동행했습니다.

홍성동: 이렇게 짧은 길을 너무 멀리 돌아 왔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서 특별히 환대하거나 하진 않았고, 대신 고마운 마음을 담아 돌아왔습니다.

성동씨는 지원된 쌀이 필요한 곳에 잘 전달되기를 바랬습니다.

홍성동: 전달할 때 보니까 인수자가 20대의 젊은이었는데 체격이 왜소해 보였습니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전달이 됐으면 좋겠고 북한의 식량 사정이 빨리 좋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홍씨가 지원한 쌀은 개성에서 북한 농업근로자연맹에 전달돼 북한 주민들에게 나눠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