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대북협상, 단계적 접근 시 덩어리 크게”

위성락 전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9일 국회 한반도평화포럼이 ‘신국제질서와 대한민국 외교의 방향’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위성락 전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9일 국회 한반도평화포럼이 ‘신국제질서와 대한민국 외교의 방향’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RFA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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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위성락 전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일괄 타결 방식으로 북한 비핵화 협상을 끝내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 북한의 요구대로 단계적 접근을 수용할 때는 개별 협상의 크기를 가급적 큼직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위성락 전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9일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오래 끌더라도 하나의 합의, 이른바 일괄 타결로 끝내는 게 이상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위 전 본부장은 이날 국회 한반도평화포럼이 ‘신국제질서와 대한민국 외교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연속세미나 첫 날 “대부분의 국제 분쟁이 이 방식으로 결론 났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위 전 본부장은 지난 2015년 이란이 핵무기 개발 노력을 중단하는 대가로 대이란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을 담은 이란 핵 합의(JCPOA), 1973년 베트남 전쟁 종결을 약속한 파리 협정을 예로 들었습니다.

위성락 전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이상적으로 보면 협상은 오래 어렵게 하더라도 타결은 하나의 합의로 하는 게 낫습니다. 그게 이상적인데 거의 대부분 주요 국제 분쟁은 그런 방식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다만 위 전 본부장은 “북한이 언제나 단계적 접근을 강조하기 때문에 협상 시작 자체가 어렵다”며 “이상을 현실에 맞춰 단계적 접근이라는 컨셉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위 전 본부장은 한국 정부가 단계적 접근에 임할 시 조심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을 말했는데 먼저 “많은 단계를 거치면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이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살라미 전술은 협상 과정에서 하나의 안건을 여러 개로 쪼개 각각에 대한 보상을 받아냄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위 전 본부장은 또 “많은 단계를 거치면 중간에 잘못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북미 간 신뢰 구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행이 중도에 좌초된 것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위 전 본부장은 “단계적 접근이라는 컨셉을 수용하되 단계의 숫자는 가급적 최소화하고 각 단계의 크기는 최대한 키우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위성락 전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현실과 이상을 어떻게 맞출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단계적 접근이라는 컨셉은 수용하되 단계를 가급적이면 최소화하고 슬라이스를 작게 하는 것은 살라미에 이용 당할 수 있으니 슬라이스를 크게 하는 그런 식의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 전 본부장은 대북 협상 방법에 있어서는 인센티브와 디스인센티브를 함께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며 둘의 배합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정답은 없으며 정세에 따라 매순간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밖에 위 전 본부장은 “심화되는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한국은 정치적, 경제적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 쪽에 더 가까운 좌표를 설정하고 중국과 접점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위 전 본부장은 “미국, 중국 중 누구를 선택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한국의 입장,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이를 통해 정세 안정을 도모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위 전 본부장은 또 “성과를 내려면 잘 조화된 정책적 틀과 국민적 지지, 즉 외교적 역량과 정치적 역량이 함께 있어야 한다”며 “이 두 가지 역량을 장기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 외에 한반도 비핵화에 다른 묘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위 전 본부장은 지난 1일 한국의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선후보인 이재명 후보자의 직속 실용외교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습니다.

위 전 본부장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밝혀왔기에 한국 정치권 일부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기자 한도형, 에디터 오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