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박성우 parks@aisa.rfa.org
탈북자 피아니스트 김철웅씨. 김철웅씨는 지금껏 ‘탈북자가 피아노도 친다’는 것 때문에 한국에서 유명해 진 측면이 있었는데요... 얼마 전에 김철웅씨가 서울에서 독주회를 가졌습니다. 이 독주회를 계기로 김철웅씨는 이젠 ‘피아니스트 김철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김철웅씨 이름에는 항상 ‘탈북자 피아니스트’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탈북자가 피아노도 친다.’ ‘째즈 음악이 좋아서 탈북을 했다더라.’
처음엔 이런 식으로 한국언론에 자신이 소개되는 걸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는 김철웅씨. 하지만 이젠 ‘그건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다고 말합니다. 북한에도 클래식 음악 연주자가 많이 있고, 자신은 그냥 째즈가 좋아서 무작정 탈북한 게 아니라, 틀에 박힌 북한 음악 말고도 다양성을 강조하는 바깥 세상 음악을 듣고 싶어서, 그리고 또 연주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입니다.
박성우 기자: 올해 아무래도 한국에서 언론 통해서 많이 알려진 계기가 독주회를 가진 점 아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요?
김철웅: 일단은 클래식계에... 대한민국 클래식계에 입문을 했던... 이제는 나 피아니스트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한 독주회였구요. 또 의미가 있는게 내 생애 첫 독주회였다는 거.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당연히... (한국에서는 독주회를 못하는 이유가) 제가 기량이 떨어져서 내지는 공부를 못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는 개인 독주회를 할 수가 없어요. 어떤 종합 공연에서 독주는 할 수 있는데 독주회는 할 수가 없어요.
그런 이유로, 상당히 하고 싶었던 독주회였는데, 이번에 처음 했다는 게 상당히 의미가 있었고. 그리고 ‘탈북자가 피아노를 친다’ 이게 일단은 사람들에게 뉴스거리가 된다고 생각했던 거 같고, 두 번째는 ‘그런데 독주회를 한데’ 이런 게... 그런데 저는 그런게 별로 안좋아요.
물론 인터뷰는 했어요. 인터뷰에서는 저는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거기서도 클래식을 한다. 그리고 잘 한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기사가 나온 걸 보니까, ‘애가 와서 첫 독주회를 했데. 북한에서는 못한데’ 이렇게 돼 있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것도 솔직히... 거기도 사람 사는 나란데. 왜 신기해 하지... 그러니까 이런 게 서로간에 잘못된 교육에 의한 영향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되요.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피아노 친다는 거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거기도 피아노를 치나? 클래식을 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독주회가 열렸던 게 12월13일, 서울 장천 아트홀이었죠? 사람들 굉장히 많이 왔었다면서요?
김철웅: 네. 그게 얼마 전에 개방된 곳이죠. 여러분들이 저를 사랑해 주시는 거 같아서 굉장히 고무됐어요. 그간 5년간 하면서 많은 연주를 했는데, 독주회는 처음이고... 고맙게도 그렇게 많이 오셔서... 상당히 저로서는 너무 너무 고마웠던 일이에요. 성황리에 잘 끝난 거 같아요.
김철웅씨가 한국 언론에 제일 먼저 알려진 거는 재즈가 좋아서 탈북을 결심한, 북한의 영재 교육을 받은 천재 피아니스트... 이런 식이거든요.
김철웅: 그런데요. 그게 좀 다른 게... 저는 째즈가 딱 좋아서 온 게 아니에요. 그냥 (재즈를) 비롯한 모든 음악을 치고 싶고 듣고 싶다고 말했지, 그게 좋아서... 이런 말은 안했어요. 좀 와전됐죠. 기자들이 좀 와전을 시켰는데. 재즈를 비롯한 모든 음악. 장르를 떠나서 세상에 있는 모든 음악을 듣고 싶어서, 치고 싶어서, 또 부르고 싶어서 왔다... 제 이야기는 그거였는데. (기자들이) 재즈를 딱 고르더라구요.
옆에 피아노도 있는데... 북한에서 치던 음악은 이런 식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치는 음악은 이런 거다... 비교가 될 수 있는 예를 두 가지 정도만 들려 주실래요?
김철웅: 그러죠.
이건 무슨 곡입니까?
김철웅: 이 곡은 아주... 북한의 정말 표준적인 찬송가라고 해야겠죠. 북한식 찬송가. 김일성 주석을 그리워하는 국민들의 마음... 이런 건데. 노래 제목이... 아... 제목이 뭐였지 이게... 제목도 다 잊어 버렸네. 자우간 애절하게 당신을 그리워하는 그런 내용이에요. 바로 이게 북한에서 이야기하는 민족적... 그런 색깔도 들어가 있고,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그런 곡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한국에 들어오셔서 최근에 연습 하셨다든지, 그런 곡 한 곡 부탁드릴게요.
제목이 뭐죠?
김철웅: 밤하늘의 피아니스트... 사랑의 크리스티나라는 곡이구요. 리차드 크라이더만의 곡이에요. 제가 리차드 크라이더만을 너무 좋아해서... 이런 곡들을 치고 있죠.
북한에서 연주하시던 음악과 비교를 해 보자면... 한국에서 지금 연주하시는 음악들과... 큰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게 있습니까?
김철웅: 솔직히 말씀드려서요.. 제가 지금 연주를 하고 있는 음악들도 클래식이잖아요. 북한에서도 똑같은 장르를 했었고. 제가 차이를 이야기한다고 하면, 받아들이는 문화의 차이인 거 같아요. 그쪽에는 다양한 문화가 아니라 단순 문화잖아요. 한가지 문화에 대해서 적응해야 되고 복종해야 되고. 그런데 여기는 다양한 문화들... 다양한 색깔의 문화들을 맛을 보고, 내가 고를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상품도 많겠지만, 문화도 다양해서... 내 입에 맞는 거. 어떤 사람은 락을 좋아한다면, 어떤 사람은 랩을 좋아하고, 힙합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발라드를 좋아한다면, 어떤 사람은 트로트를 좋아하고. 이렇게 내 입맛에 맞는 것들을 고를 수 있다는 게 참 큰 장점인 거 같아요.
문화의 다양성을 누리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피아니스트 김철웅씨. 그래서 김철웅씨는 북한 음악이든, 한국 음악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연주하면서 내년 한해도 열심히 살겠다고 말합니다. ‘탈북자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피아니스트 김철웅’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