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함경북도 당국이 도내 기관 기업소들에 가을걷이에 필요한 농기구와 영농자재 과제를 부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해 가을걷이를 실속있게 준비하라는 중앙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 안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함경북도의 한 간부 소식통은 3일 “며칠 전 청진시당에서 진행된 당 행정책임자들의 회의 끝에 각 기관, 기업소들에 가을걷이와 낟알 탈곡에 사용할 농기구 과제가 하달되었다”면서 “경제난과 코로나 사태로 공장 기업소를 유지하기도 벅찬데 농기구 과제까지 수행해야 하는 기업소 간부들의 시름이 깊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회의에서는 시당 책임비서가 직접 연단에 나와 농촌을 적극 지원하는 것은 우리 당의 일관된 방침이라며 가을걷이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했다”면서 “공장, 기업소 별로 할당된 농기구 목록에는 삽, 낫, 삼태기, 곡식을 묶을 끈, 각자(목재), 못, 등 소소한 농기구뿐 아니라 철근, 시멘트, 베어링, 각종 피대(벨트), 디젤유, 윤활유 같은 영농자재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서 “기관 기업소들이 모든 품목을 다 바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베어링, 피대, 디젤유, 윤활유 중에서 한두 가지는 과제 수행에 포함되어야 한다”면서 “문제는 기업들이 여유로 보유하고 있는 물품도 아니고 대부분 장마당에서 돈을 주고 사야 하기 때문에 공장 기업소 책임일꾼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함경북도 소재 각 기업소들이 여름이면 낙지(오징어)잡이를 위해 바다에 나가 일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8.3 시간을 줘 노동자도 살게 하고 기업소도 많은 8.3과제 수입을 거둘 수 있었다”면서 “올해는 코로나 감염과 관련해 일체 바다에 나가지 못하다나니 지금 한창 오징어잡이 철이지만 8.3과제를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공장 기업소들에도 여유자금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8.3 과제란 지난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 이후 공장 기업소들이 필요한 자금과 물자 부족을 자체로 해결하기 위해 장사 등 생계활동으로 시간이 필요한 노동자에게 출근하지 않도록 허용해주고 대신 돈이나 물자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가운데 함경북도의 또 다른 간부 소식통은 “기계제작 설비를 가지고 있는 몇몇 공장들에는 무동력 수동식 탈곡기를 만들어 바칠 데 대한 과제가 하달됐다”면서 “수동식 벼탈곡기는 사람이 자전거 발 디디개(패달) 같은 것으로 탈곡기를 돌려 벼를 탈곡하는 간단한 구조의 농기계”라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나라의 식량 생산량을 좌우지(좌지우지)하는 황해도 지역의 큰 농장들에는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가끔 농기계들을 공급하지만 정보당 알곡 생산량이 보잘것없는 함경북도 농장들에는 농기계와 부속품이 거의 공급되지 않는다”면서 “농장들에 오래된 구식 탈곡기가 있긴 하지만 정전이 자주 돼 탈곡기를 제대로 돌릴 수 없는데다가 베어링과 피대 같은 부품도 구하기 어려워 탈곡기를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서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장들에서는 전기가 필요 없는 수동식 탈곡기를 많이 요구한다”면서 “하지만 대규모 기계설비를 가진 공장들도 수동식 탈곡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자재와 부품이 없기 때문에 모두 다 자체로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소식통은 “수동식 탈곡기를 만들자면 용접봉, 철판, 철근, 베어링, 피대 등 다양한 자재와 부품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을 시장에서 다 구입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면서 “이전과 달리 올해에는 코로나 사태로 공장들이 가지고 있는 여유자금이 없어 결국은 종업원들로부터 얼마씩이라도 돈을 거둬야 할 형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소식통은 그러면서 “중앙에서는 당의 방침을 받아서 아래 기관에 과제를 주는 나누기 계산이나 하면 끝이지만 지방일꾼들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집행해야 한다”면서 “일부 간부들속에서 ‘지방 간부는 정말 해먹을 것이 못 된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면서 과제수행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소식통들은 북한당국은 해마다 가을(추수)할 때가 되면 정보당 수확량이 적은 북부 지방 협동농장들에는 영농자재와 농기구를 공급해주지 않고 해당 도에서 자체로 해결하라고 떠미는 바람에 각 지방 기관 기업소들이 농기구를 구입해 농장들에 공급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자 안창규,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