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에서 학생들의 러시아어 능력을 평가하는 경연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서 출제된 문제의 대부분이 러시아어 구사 능력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북한 정권과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에 대한 찬양 일색인 질문들로 가득했습니다. 이경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 14형에 대하여', '조선로동당에 대하여' 등 5문제에 각 200단어씩 러시아어로 60분간 글짓기를 하시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의 위대성에 대하여', '만경대고향집에 대하여',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위대성에 대하여', '금수산태양궁전에 대하여' 등 50문제 중 2문제를 1인당 8분동안 발표 강연하시오.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에 따르면 이 문항들은23일 평양외국어대학 부속 러시아어 센터에서 열린 제4회 러시아어 올림피아드에서 실제로 출제된 문항들(사진)입니다.

이렇게 러시아어 구사 능력을 평가하는 학문적인 시험에서까지 북한은 정권과 김정은 위원장을 우상화하는 내용으로 시험 문제를 낸 것입니다.
또한 북한의 러시아어 교육 방식이 러시아의 사회와 문화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북한의 정치적인 색채가 들어간 이러한 문항들은 일반적으로 한국,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출제된 러시아어 평가 문제와 사뭇 비교됩니다.
실제 2017년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영역 러시아어 총 30 문항 중 정치적인 내용을 포함한 문항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시험 문제는 길 위치, 시계 보는 법, 러시아 문화 등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러시아어를 바탕으로 출제됐습니다.
또한 전세계 외국인을 위한 러시아어 인증 시험인 토르플(TORFL) 쓰기 영역에서 출제된 문항들을 살펴보면, '학교에서 남녀 분반에 대한 장단점에 대하여', '친구한테 자신이 다녀온 여행지를 추천한다면' 등 정치적인 색채 없이 일반적인 내용을 서술하는 문항이 출제됐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러시아어 경시대회가 개최된 것은 북한에서 러시아어 습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북한에서는 과거 러시아어가 영어와 함께 가장 각광받는 외국어였지만 최근 들어 중국어에 밀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이번 경시대회에서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대학, 평양외국어대학, 평양 철도대학 등에서 31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며 "대회 결과는 26일 발표된다"고 23일 밝혔습니다.
또한 대사관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와 박정진 평양외국어대 총장이 참석했습니다.
한편,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2014년 개정된 교과서에서 김위원장이 3살 때 총을 쐈고, 시속 200km의 초고속 배를 몰았다는 등의 내용을 포함시켜 김 위원장을 우상화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북한 학생들의 외국어 교육도 자유화 개방화 정책이 아닌 국가사회주의 노선 지도자를 만들기 위한 세뇌 교육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