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외국인에 달러 대신 북 화폐 사용지침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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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 외무성이 평양 주재 해외공관과 인도주의 단체에 북한 내 상점에서 미국 달러화 대신 북한 원화를 지불수단으로 사용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코로나19로 인해 돈이 돌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을 막고, 외화난 등을 극복하려고 취한 조치라고 분석했습니다. 이경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해 익명을 요구한 북한 주재 외교공관을 두고 있는 한 국가 외교 관리는 2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 외무성이 29일 달러 환전과 관련한 새로운 지침을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지침에 따르면 평양의 외국인 전용 상점과 대동강 외교관 클럽 등에서 더 이상 달러와 ‘나래카드’를 받지 않고, 북한 원화만 받습니다.

‘나래카드’는 북한의 조선무역은행에서 발행한 평양 지역에서 사용되는 전자 선불카드입니다. 카드에 일정량의 외화를 예치하면, 카드회사에서 북한 원으로 환전해 카드에 충전해 주고, 이를 가지고 현금카드로 사용하는 지불 방식입니다.

아울러 이같은 새로운 지침은 29일 북한 내 해외 외교관, 국제기구 직원 등 외국인들에게 배포됐다고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도 인터넷사회연결망인 페이스북을 통해 전했습니다.

특히 이번 새로운 환전 지침에 따라 1인당 하루 미화 100달러나 50달러로 환전 한도가 제한됐고, 대동강 외교관 구역 환전소에서만 환전이 가능하다고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 ‘NK뉴스’도 29일 보도했습니다.

이 같은 조치에 따라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은 소지한 달러를 원화로 환전해야 북한에서 물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환율은 미화1달러에 북한 화폐 8천원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대사관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지난 2월에 환율이 1달러에 8천400원인 것과 비교하면 현재 북한 화폐의 가치가 약간 올라간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북한 당국은 외국인들에게 자국 내 상점에서 북한 화폐 사용을 요구하면서도, 일일 환전 한도를 설정하고, 대동강외교관 구역 내 환전소 한 곳을 지정한 배경과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북한의 투명하지 않은 외환보유고 현황과 경제 상황, 그리고 코로나19로 북한 내 화폐가 돌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 북한의 외화난, 극심한 ‘인플레이션’(inflation) 방지, 북한 경제의 달러통용화 방지, 공식환율과 실제 시장환율 격차 등 복합적인 원인을 이번 조치의 이유로 꼽았습니다.

미국 조지타운대학의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2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의 환율은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북한 당국의 의해서 북한의 화폐 가치를 절상, 절하 하는 등의 환율조작이 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북한이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은 북한의 경제상황과 외화보유고의 문제가 있다는 이상한 움직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환율시장과 암시장을 포함한 실제 민간시장 환율은 큰 차이가 있다면서, 외국인들의 원화 사용을 늘려 평양의 실물 경제를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브라운 교수 : 이러한 움직임은 외국인들의 자금흐름을 통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북한 정권이 민간 부문의 달러 수용과 달러의 사용을 동시에 자제시키려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I expect this move is a way to try to control the movements of the foreigners. So the regime may be trying to halt private sector acceptance and use of dollars and coincident to that.)

그러면서 그는 현재까지 제한된 북한의 경제지표와 정보로 이번 조치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북한 당국이 외국인의 환전 한도를 설정하고 환전소를 한 곳으로 지정한 이유는 미국 달러의 유입 급증에 따른 북한의 화폐가치의 급격한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란 쉽게 말해 화폐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같은 조치에 대해 미국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의 트로이 스탠가론 선임국장도 2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코로나19로 인해 북한에서 특정 물품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외교관들에게 북한 원화로 물건값을 지불하도록 요구하고, 그들의 환전 능력을 제한함으로써, 외교관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그는 외화를 통한 직접 상품구매를 제한하는 이러한 조치는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의 경제가 달러화 위주로 운영되면서, 잃어버린 북한의 자금 흐름에 대한 통제를 개선할 수 있게 해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조치가 북한이 외국인에 대한 상품 판매를 제한하고, 북한에서 외화 사용에 대한 통제를 돕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아울러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데이비드 맥스웰(David Maxwell) 선임 연구원도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의 이러한 조치는 북한 내 주민들의 외화사용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분석했습니다. (I think this action is simply because the regime wants to eliminate the use of foreign currency among the Korean people in the north.)

특히 그는 북한에서 외화가 장마당, 밀수입 시장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이 자국 화폐 사용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외화 사용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신욱 한국 동아대학교 교수도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러시아도 지난 1997년 11월 러시아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상거래에 대해 외화표시 및 지불을 금지한 사례가 있다면서, 보통 한 국가가 달러 등 외환이 부족하면 자국화폐 사용을 강제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신욱 교수 : 지난 1월 말부터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져 중국, 러시아와의 무역이 사실상 중단되었고 관광객들도 입국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외화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 그는 나래카드의 경우 북한 중앙은행에서 정한 공식환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실제 시장 환율, 이른바 장마당 환율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외국인들의 나래카드 사용을 금지한 이유는 북한 당국이 외국인들이 쓰는 달러를 민간에 새어 나가지 않게 하고, 공식환율로 달러를 확보해 이득을 취하고 외화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이 교수는 북한이 내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를 계기로 5년 단위의 새 경제개발계획을 발표할 예정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외화를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을 지낸 수 김(Soo Kim) 랜드연구소 정책분석관도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이러한 조치가 2009년 실패한 북한의 화폐개혁을 떠오르게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연구원은 북한이 코로나 19와 제재 등으로 인해 경제 상황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국가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김 연구원은 김정은 정권이 실물시장의 환율 상승을 막고, 북한 주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금을 시장에 돌게 해 빨리 흡수하려는 조치라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