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지방도시까지 화장 강요…추석 성묘객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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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당국이 최근 농지확보와 산림회복을 명목으로 화장을 강요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추석을 맞아 친지들과 함께 성묘할 곳을 잃어버린 데 대해 당혹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양희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당국이 지난 4월 양강도와 함경북도 등 평양 이외 지역에서까지 유골을 화장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추석에 가족·친지들과 함께 조상의 무덤을 찾아가 성묘를 하고 시간을 보내곤 했던 주민들이 황당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의 언론매체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추석을 하루 앞둔 12일 양강도의 취재협력자의 말을 인용해 이 같이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대표: 결국은 땅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런 강력한 지시가 내려왔는데, 당국에서 관리하는 화장터에서 화장해서 납골당에다 보관하든지 아니면 경치 좋은 곳이나 강에 재를 뿌리든지 할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선조, 가족의 묘를 잃어버린 거죠. 그래서 이런 추석 (성묘)문화도 많이 변화될 수 밖에 없다. 추석 때 친척들이 모여 같이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리고 술도 마시고 그러던 전통적인 문화도 묘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사라질 수 밖에 없게 됐다. 이런 급작스런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

북한 당국이 깊은 산속의 무덤이나 나라에 공헌한 열사들의 무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의 무덤에서 유골을 찾아내 지난 6월 10일까지 화장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이시마루 대표는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추석에 친척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마련해 성묘하던 장소가 없어진 것뿐 아니라 화장이라는 제도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로부터 죄를 범한 사람이 화형을 당하곤 했다며 혼이 떠돌지 않고 편안히 잠들게 하기 위해서는 고인을 땅에 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민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노인들은 자신이 사망하면 깊은 산속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땅에 묻어 달라고 호소한다고 이시마루 대표는 덧붙였습니다.

한편, 평양에서는 김일성·김정일 시대부터 이미 화장문화를 정착시키려는 시도를 해 왔기 때문에 주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추석에 조상묘가 아닌 납골당이나 집안에 보관해 둔 유골함에 차례를 지내는 문화가 상당히 확산돼 있습니다.

한국에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최근 한국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평양의 경우 시신을 낙랑구역 오봉산에 있는 화장터에서 화장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20년 전까지만 해도 시신을 평양시 주변 산에 묻었지만 지금은 화장한 유골을 주민들 각자가 사는 구역의 유골 보관소에 맡겨 두고 추석이나 제사 날에 찾아 집이나 대동강 등 야외에서 제를 지낸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미관상의 이유를 들어 수도 평양에 묘를 쓰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조상의 시신을 화장하지 않은 평양 시민들은 먼 곳까지 이동해 성묘를 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