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 손혜민 박사의 북한경제] '알짜' 개인 온실채소 판매망마저 나라에 빼앗길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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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지난 18일, 김정은 총비서는 당 창건(10.10)기념일까지 함경남도 연포일대에 남새(채소) 수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온실농장을 완공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국가 주도로 남새 생산 집약화와 공업화를 이뤄 사철 푸른 남새를 함흥 주민들에게 공급한다고 선전했는데요. 그러나 주민들은 개인들이 이미 구축해 놓은 남새공급망을 국가권력으로 빼앗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북한경제를 전공한 탈북기자 손혜민 박사의 '북한경제', 오늘은 '개인이 구축한 온실채소 판매망, 국가가 장악 시도' 편을 보내드립니다.

- 코로나 속에서도 운영되던 개인 온실 국가에 빼앗겨

함경남도 함주군 일대에 수 만 톤 능력의 연포온실농장이 착공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지주민들은‘국가에서 개인 온실을 빼앗으려는 공사’이라며 토로하고 있는데요.

현지 주민 : "코로나 때문에 다 막혀도 이게 안전한 장사였잖아요...(개인이 운영하는)온실에서 배추랑 오이랑 토마토랑 키워 장마당에 팔면 겨울에는 진짜 돈벌이 잘되요. 장마당 장사보다 훨씬 낳으니까...그걸 국가가 하겠다고, 개인 장사 빼뜨는(빼앗는)거잖아요..."

코로나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장사를 못하는 주민들의 생계가 타격 받는 와중에도, 개인 텃밭에서 온실농사를 짓고 있는 일부 주민들은 남새를 팔면서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되었는데, 국가온실농장이 착공되면서 규모가 작은 개인 온실농장들이 파산 직전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함경남도 함흥시의 한 주민 소식통은 20일“함흥은 인구가 70만명이 넘어서 남새 수요가 많은 도시”라면서 “이에 함흥과 인접한 함주군과 정평군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남새 온실이 유달리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대규모의 연포온실농장을 착공하고 함흥주민들에게 남새를 공급한다고 선전하고 있으니 남새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주민들의 우려가 커지는 것입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개인 온실 농장 등장

개인 온실 농장은 1990년대 식량배급제가 무너지며 등장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협동농장 농민들과 주민들은 개인 텃밭에서 자체 소비용으로 재배하던 다종 남새를 장마당에 내다 팔아 식량 마련에 나섰는데요.

2000년대 중반부터 주민들의 구매력이 향상되기 시작하며 장마당 남새 시장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신선하고 푸르른 남새 수요가 늘어났는데, 이때부터 개인 텃밭에서 판매용도로 단순 재배되던 남새와 과일은 비닐온실에서 재배되면서 겨울에도 수확하는‘고수익 상품’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개인 텃밭에 비닐박막으로 온실을 짓고 동지섣달에도 싱싱한 딸기와 오이 등을 재배하면 외화벌이 못지않게 고수익이 창출된다는 것을 일반 주민들이 깨달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평의 텃밭에 옥수수를 심으면 3인 식구가 2개월 소비할 식량생산에 그치게 되지만, 온실을 건설해 남새와 과일을 재배하고 장마당에 판매하면 식량은 물론 얼마간의 현금 저축도 가능할 만큼 높은 수입을 올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으로 2010년대 들어서 개인 온실 농장이 확대되었는데요.

개인 온실 농장의 초기 자본은 토지와 연료가 필수 비닐박막은 재활용

하지만 개인이 온실 농장을 운영하려면 온실부지로 사용할 수 있는 토지가 있어야 하고,또 온실을 덥힐 수 있는 연료와 비닐박막 등도 필수입니다.

함경남도 소식통에 의하면, 온실 부지로는 개인 텃밭이 활용되고 있어 문제가 아니지만, 에너지연료는 시장가격으로 구매해야 하므로 초기 자금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돈이 없는 주민들은 온실을 작게 운영하다가 점차 밑천이 생기면 온실 규모를 늘리게 됩니다. 태양빛판도 온실 에너지로 사용되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볏짚을 엮은 나래를 사용한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현지 주민 : "온실은 기본 연료지…구멍탄이랑 착하탄이랑 있는데 구멍탄은 가스 나니까 그 안에 부뚜막 길게 해가지고 그냥 태우지 않고 거기 불 때지. 채소가 얼까봐 짚 둘둘 말아서 나래 씌우기도 하고..."

온실에 사용되는 비닐박막은 장마당에서 구매하는데요. 코로나 사태로 비닐박막 수입이 중단되면서 개인온실에서는 찢어진 비닐박막을 덧대어 깁는 방식으로 재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려운 조건에서 개인이 재배한 온실 남새와 과일은 국영상업망인 신흥관을 비롯한 개인식당과 장마당에 유통되어 판매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소식통은 “현재 함흥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온실 고추 1키로 가격은 내화 2만원, 싱싱한 오이 1키로 가격은 내화 1만 5천원”이라면서 “개인이 밤잠을 설치며 온실 남새 재배에 3년만 투자하게 되면 땅집(단층집) 한 채 (5천달러 정도)는 살 수 있는 돈을 모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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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평성장마당에서 판매되고 있는 온실 남새와 과일 가격표. /내부소식통이 제공한 물가에 기초해 손혜민 작성.

그런데 국가가 대규모의 온실 농장을 연이어 지으면서 개인이 온실을 운영하며 구축해 놓았던 남새공급망을 가로채려 한다고 평안남도 소식통은 말했습니다.

현지 주민 : "지금은 국가가 어케 하냐면 개인이 먼저 시작하고 뭐든 발전하거든요. 개인이 먼저 장마당에서 돈벌이가 뭐가 잘되는지 창조 하잖아요. 뭐가 다 개인이 앞서가요...그러면 국가는 개인장사 막으려고 국가농장이 온실농사 지으라 하고..."

국영 온실농장도 시장가격 판매 ...

주목되는 것은 민생을 위협하며 북한 당국이 2년 전 완공한 함경북도 중평온실농장에서 재배된 배추와 오이 등이 시장 수요가 적다는 것입니다. 판매가격이 시장가격보다 조금 낮지만 신선도가 떨어져 시장에서 밀려난다고 하는데요.

“남새 운송수단과 연료가 부족한 게 주요 원인”이라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개인들은 남새와 과일을 수확하는 즉시 시장에 배달해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도 결혼식장 등에서 수요가 많습니다.

청진 주민 : "오이요 쑥갓 이런 거 심어요…우린 데는 개인들이 큰상에 올리는 거 재배하지...오이들이랑 토마토랑 쑥갓이랑 결혼식 상에랑 올려놓는 거니까. 생생한 거 큰상에 올리느라 비싸게 사지. 사진 멋있게 나오게 하느라고…"

특히 코로나 사태로 국경을 통해 조금씩 수입되어 국내 유통되던 바나나, 파인애플 등 남방과일 물류가 중단되면서 국경도시와 내륙도시에서도 개인이 재배하는 국산 과일이 수입산 과일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 눈 여겨 볼 대목입니다.

국가 주도의 상업망 복원 ... 시장가격의 남새공급체계 시도

전문가들은 2년 전 김정은 총비서가 중평남새온실 완공에 이어 지난 18일 또 다시 연포온실농장을 완공하도록 지시한 것은, 1990년대 경제난으로 유명무실해진 국가 상업망을 복원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남새공급가격이 주목되는데요. 함흥에 주둔한 군부대 군인들과 국가공급대상에게는 국정가격으로 공급하겠지만, 온실 운영이 정상화되려면 남새를 시장가격으로 공급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 : "8차 당대회서부터 김정은 총비서가 국가상업망을 복원하겠다고 했는데, 국영상업망을 복원하려면 사계절 수요가 있는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공급하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국가 주도로 대규모 온실농장을 건설하고 온실농장을 통해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국영상점에서 남새를 공급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온실농장을 국정가격으로 운영은 못합니다. 나중에 대량 공급이 가능해지면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초기단계는 시장가격보다 조금 낮추어 주민들이 소비하게 만들고 점차 시장가격을 적용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봐야 합니다.”

탈북민으로 북한 함흥도시를 연구한 위영금 박사도 “공장·기업소가 밀집되어 있어 노동자도시로 상징되고 있는 함흥 주변에 대규모 온실을 건설하는 (북한)의도가 주목된다”면서 이는 이미 시장가격으로 형성되어 있는 남새공급망을 국가가 흡수해 국가상업망을 복원하려는 시도이다”고 평가했습니다.

위영금 박사 : "함흥은 평양 다음으로 큰 도시이고 화학공업도시에요. 노동자들이 많이 밀집되어 노동자도시라고도 하거든요. 함흥 주변에 대규모 온실농장이 착공되었다는 건 생산과 소비지 거리를 가깝게 하려는 체제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또 김정은체제가 지속적으로 자립경제를 강조하고 있거든요. 함흥과 같은 소비규모가 큰 도시 주변에 대규모 온실농장을 짓는다는 건 지역의 자립경제라는 의미도 있지만, 국가가 남새공급체계를 바꿔보려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기자 손혜민,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