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1억 천주교 신도들의 지도자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84세를 일기로 지난 2일 서거했습니다.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는 특히 공산주의 치하에 있던 폴란드에 민주화 운동이 꽃피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파킨스씨 병을 앓아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2월 호흡곤란과 인후염으로 입원한 뒤 계속 병세가 악화돼 결국 2일 저녁 서거했습니다. 교황의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 전 세계 지도자들은 일제히 성명을 발표하고 그의 서거를 애도했습니다. 로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시의 성베드로 광장에는 수많은 신자들이 모여 애도의 물결을 이뤘습니다.
특히 교황의 고향인 폴란드에서는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츠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임성호 교수는 현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임성호: 문화행사가 완전히 취소되고, 그리고 TV도 하루 종일 교황님 관련 보도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대중음악 채널 같은 경우에도 방송자체가 안되고 있습니다. 벨카(Marek Belka) 수상이 공식적으로 추모기간을 6일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공공기관에는 조기가 게양돼 있고요. 바르샤바에서 대규모 야외미사가 있었는데요, 거기에 15만 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폴란드 국민들이 교황의 서거에 대해 이렇게 깊은 충격과 슬픔을 보이고 있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8년에 교황에 선출됐는데, 이탈리아 출신이 아닌 사람이 교황 자리에 오른 것은 45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공산주의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던 폴란드 국민들에게 폴란드 출신의 교황은 더없는 민족의 영광이자 자랑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이듬해인 1979년에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폴란드는 민주화 운동의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됩니다.
90년대 말 폴란드 외무차관을 지낸바 있는 라데크 시콜스키(Radek Sikorski) 씨는 4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폴란드 방문은 폴란드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중요한 계기가 됐었다고 말합니다. 현재는 미국 워싱턴에 소재한 민간연구소인 미국기업연구소(AEI)에 적을 두고 있는 시콜스키 씨는 당시 공산정권은 사회구성원들을 분열시켜서 국가 앞에서는 모두 힘없는 존재로 살아가도록 했는데, 교황으로 인해 폴란드 국민들은 일체감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Radek Sikorski: It also made them feel together. It established a feeling of community. Totalitarian regimes were about atomizing society, making everybody feel powerless in the face of the power of state.
그리고 폴란드 출신 교황의 존재는 폴란드 국민들 사이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키고, 대신에 신앙을 더 큰 의지로 삼게 만들어줬다고 시콜스키 씨는 회고했습니다. 특히 교황의 지지에 힘입어 폴란드 국민들은 교황이 방문한 이듬해인 1980년 공산주의 세계에서는 최초로 자유노조를 설립했습니다. 폴란드 당국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유노조 운동을 탄압했지만, 교회는 민주인사들을 간접적으로 계속해서 도왔습니다.
교황은 1989년 폴란드에 첫 번째 민주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모두 세 번이나 폴란드를 방문해서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밖에도 공산주의 체제아래 있는 다른 교회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발언과 행동을 통해 동유럽과 구소련에서 공산주의가 해체되는데 정신적으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김연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