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중국 내 많은 탈북 여성들은 지금도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오도 가도 못하는 인권유린 현장에 내 팽겨져 있습니다. RFA에서 올 한 해 보도 되었던 중국 내 탈북여성 인신매매 실태를 종합 정리해 드립니다.
이 원희 기자, 올 한해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 시간과 여성시대를 통해 팔려 다니는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의 실태를 보도 했습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이원희 기자: 지금 한족들만 사는 시골로 팔려가 있는 한 탈북여성, 가명의 이 선화 씨의 얘기를 우선 들어보죠. 그러면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중국 돈으로 나이가 어리면 16.000위엔 나처럼 나이가 있으면 14.000-15.000 에 팔린다 말입니다. 그 많은 돈에 팔려도 다 자기네가 가져가지 우리는 일전도 모릅니다. 정작 살다 보면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탈북자 하나는 도망가다 붙잡혀서 거꾸로 매달아 놓고 때렸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맞아 죽은들 그 누가 압니까?
이런 형편입니다.
이런 탈북여성들이 얼마나 됩니까?
이원희 기자: 거의가 다 숨어 살면서 옮겨 다니는 형편이기 때문에 얼마나 되는지 숫자는 나오기가 힘듭니다. 탈북여성들이 더러 도망도 하지만 다시 잡히거나 해결책이 전혀 없기에 스스로다시 팔리게 된다는데요 겨우 끼니 해결이 전부입니다.
여기 참 많습니다. 여기가 유리하다면 연변보다는 안전하다는 정도 입니다. 생활은 농촌 살림이 기차게 째지게 가난 합니다.
이선화씨 경우는 어떻게 조선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닌 한족들이 사는 곳으로까지 오게 되었는지요?
이원희 기자: 이 여인은 북한에서 앉아서 그대로 굶어 죽을 수 없어 조선족이 사는 시골이나 또 교회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팔려서 이곳 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한국 목사도 있고 식량도 많다는 소리도 들었고 조선족 교회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곳 농촌으로 팔려와 심양까지 기차표는 30원, 버스비는 60원 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가겠습니까? 이렇게 팔려 다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교회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 통해야 의지를 하지, 말도 모르는데 우리가 근본 적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한족 교회라 나가지도 못하고 가더라도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으니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군요. 돈은 일체 만지지도 못합니까?
이원희 기자: 물론 이곳저곳 농촌을 찾아 일을 한다면 아주 적은 돈 이라도 벌 수 있지만 이렇게 되면 신변이 노출되고 또 일을 시키는 사람들이 그런 약점을 알고는 공안에 신고한다는 위협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족이라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가족 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실은 정말 기가 찹니다. 일체 자유도 없고 돈 일전 한 푼 손에 쥐고 있지 않습니다. 남편 형제들도 오면 돈 주지 말라고 쑥덕쑥덕 하는데 우리가 말을 전부 모르지만 눈치로 알 수 있습니다.
이원희 기자: 이선화씨도 처음에 팔려 간 곳에서 정말 소처럼 일만 했다고 합니다. 너무 암담해 도망을 나왔는데 말도 모르지, 돈도 없지,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지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다시 한족을 만나 살고 있는데 다행히 마음은 착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주변에서 탈북자들이 팔려 다니며 사는 모습을 자주 보겠네요.
이원희 기자: 그렇죠,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이 되었습니다만 한족 중 에서도 건강하지 못 한 사람들 특히 신체적인 결함이 있거나 너무 가난해 결혼을 못한 나이 많은 중국인들에게 팔려가고 있습니다.
아이도 낳고 살지만 남편이 때리고 그러나 아이가 불쌍해서 할 수 없이 사는 것도 있고 나이차이가 엄청나게 많아요. 내가 아는 탈북자는 남자가 신경환자나 마찬 가지 인데 그냥 그렇게 삽니다. 한족들이 우리를 팔 때 그래도 살만 한 곳에 밀어 넣고 아무리 말은 몰라도 좋은지 나쁜지 의향이라도 물어 보아야 하는데 물어보는 것도 없이 그저 돈만 받고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돈을 받고 자신이 팔려가지만 정착 본인들의 의사는 전혀 무시된 채 액수도 전혀 모른 채 팔려가고 있다는 얘기인데요?
이원희 기자: 그렇습니다. 다시 선화 씨의 말입니다.
우리는 얼마에 팔렸는지도 모르고 살면서 같이 사는 집에서 남편 이라는 사람이 말 합니다. 부모들이라는 사람이 말하고 그래서 알지 팔릴 당시는 얼마에 팔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이 낳고 살다가도 팔려가는 경우가 있습니까?
이원희 기자: 이는 같이 사는 한족에게 전적으로 달려있습니다. 탈북여성들은 바로 남편이라는 명목의 한족들의 밤에는 성 노예 낮에는 일하는 노예인 것입니다.
우리가 물건처럼 팔렸지만 우리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남자 고이앉아 일하기 싫어하는데 그 꼴을 어떻게 봅니까? 우리 나름대로 자존심이 있으니까 정말 못 살겠다 내가 이 땅에 와서 이렇게 살겠는가 하고 티격태격 하다보면, 달아난다 이렇게 생각하고 팔아먹는단 말입니다. 이 한족들이 조선 사람을 사람물건 취급 한단 말입니다. 어떻게 살다 팔 수 있습니까?
그동안 저희 자유아시아 방송에서는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에 대해 많은 보도를 하면서 보도 할 때마다 다시 놀라고 이럴 수가 있나, 정말 해결책은 없나 하는 심정 인데요 당장 해결책은 없더라도 이런 상황이 조금씩 이라도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 않네요.
이원희 기자: 지금도 물론 국제인권단체나 한국의 대북 인권단체들이 탈북자들의 인신매매 실태에 대해 현지에 들어가 조사도 하고 힘닿는 대로 한 두 명씩 구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만 구출을 기다리는 중국 내 여성 탈북자들의 수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합니다.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의 케이 석 연구원의 말을 들어봅니다.
케이 석: 사실 조선족 들이 탈북여성들의 보호막이 될 수 있지만 어떤 경우 북한여성을 이용하는 측면도 있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 있습니다. 언론이나 엔지오에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환기시키는 것이 중요 합니다.
이원희 기자: 그런데 조선족들도 그런 인간들이 있지만 한족의 경우 탈북여성들과 살다가도 자신의 말을 무조건 듣지 않으면 그냥 팔아버리기 때문에 당장 도망이라도 치고 싶지만 이런 상황에서 도망간들 어디로 갑니까? 다시 굶어 죽으로 북한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엔지오라는지 한국의 대북 인권단체에서 구출 활동을 벌이고 있지요?
이원희 기자: 중국 당국이 탈북자들을 돕는 종교인이나 단체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활동을 규제하고 잡아들이기 때문에 많이 줄었습니다. 그나마 숨 구멍만한 탈출구는 인권단체들의 구출입니다. 이런 길을 통해 지난 12월에 구출된 탈북여성을 소개해 드리죠
실제로 우리 남편이 인신매매를 했어요 이전에 북조선 사람 장사를 했어요. 우리사람이 나도 이전에 몽골에 팔려고 했는데 내가 사정사정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원희 기자: 한 5년 정도 중국에서 전전 긍긍하며 살던 가명의 박 선자 씨는 올 상반기 저희방송과 전화통화에서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남자가 실제로 인신매매를 했던 사람이고 공안에 \x{cad2}기지 않기 위해 자신까지 팔려고 했던 사람과 할 수 없이 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조선족 남편은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하루가 멀다 하고 박 선자 씨를 두들겨 패고 있다는 겁니다.
너무 술을 마시고 어제그제도 막 때리고 해서...나는 죽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권도 없고 호구도 없이 이렇게 살고 있는데 ....하루 빨리 한국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박선자씨는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원희 기자: 네 다행히 지난 11월에 중국에서 탈출 했는데요 남한의 민간단체 피랍탈북연대에서 박선자씨를 포함한 탈북여성 6명을 구출 했습니다. 이 단체 도 희윤 대표의 얘기입니다.
참 이 여인은 힘들었습니다. 중국에서 갖가지 사연을 다가지고 있었는데 .... 특히 자유아시아 방송을 듣고 구조를 요청했던 박 씨가 장소를 여러 번 옮기면서 그래서 태국 이민국 수용소에 안전하게 수감되었습니다.
이원희 기자: 12월 초의 일입니다. 태국 이민국 수용소의 박선자씨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거기지금 이민국 수용소가 어떤지요?
여기는 말도 아닙니다 화장실에서 잡니다. 앉을 자리도 없고....지금 화장실에서 자니까 다리가 부었어요. 허리도 아프고 할 수 없이 300원 주고 자야 합니다.
중국 돈 300원?
태국 돈 300원 또 자리는 13.000 주고 샀습니다.
이원희 기자: 300바트는 한국 돈 13.000원정도 13.000바트는 약 4십만 원 돈입니다. 어렵게 탈출한 박선자씨는 지금 있는 수용소 역시 잠을 잘 자리 앉을 자리를 그 안에서 계속 사고팔 만큼 탈북자들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3-4개월 후에는 자신이 원하는 자유국가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수용소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기다리며 양보 할 수 있다고 박 선자 씨는 전했습니다.
이런 길을 통해 구출되는 일은 아주 행운인데요 브로커, 탈출비용을 들여서 중개인을 통해 한국이나 미국으로 갈 수도 있지 않아요?
이원희 기자: 남성, 젊은 탈북자들의 경우는 여기 저기 일자리를 찾아다니며 그래도 돈을 모아 여러 해 동안 탈출비용을 마련 할 수 있지만 이렇게 팔려 다니는 여성들 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여성들의 앞날은 아주 깜깜합니까?
이원희 기자: 그래도 길은 찾아야죠. 종교 단체나 엔지오 관계자들과 조금이라도 접촉한 여성들은 자신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아야만 인신매매에 희생당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 사람들 만날 기회만 되면 외부세계로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한 재미 동포가 만나본 탈북 여성들의 바램 은 너무 간절했습니다.
남편 없이 어린 새끼 둘 데리고 이곳으로 왔는데 북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한번 씩 중국정부에서 정세를 긴장시키면 심장을 쥐고 삽니다. 제발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사람대접 받으며 살고 싶습니다.
이원희 기자: 탈북여성들의 한결같은 소망,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난민지위를 받을 수 있도록 외부 세계에서 도와 달라는 절규였는데요 이들을 만났던 이 종교인은 지금 이들의 행방을 전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3국이나 남한으로 갔으면 다행인데요 아마 대부분은 강제 북송 된 것으로 본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중국의 탈북여성들이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한다면 중국에 숨어살면서 팔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2월4일 미 하원에서 중국 내 탈북여성들에 대한 인신매매 등을 근절 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 시키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탈북여성들에게 밝은 빛이 될 수 있을까요?
이원희 기자: 인신매매 희생자 보호 법 안 인데 중국 내 여성 탈북자들에 대한 인신매매 행위를 감시 하고 미국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도록 촉구하는 내용도 있는데요, 압도적인 표차이로 통과 되어 이를 위해 국무부와 법무부에 담당부서를 신설 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탈북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빠른 시일 내 실행이 되었으면 합니다만....
그런데 외교적 노력 강화가 난민지위 인정 촉구로 연결이 되지 않을까요?
이원희 기자: 중국은 탈북자들을 정치 난민이 될 수 없는 경제난민이라 유엔기구에서 인정하는 난민은 아니라고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인신매매 희생자 보호 법안으로 비정부 기구나 종교단체를 통한 피해자들의 좀 더 적극적인 실태 조사와 함께 지원을 강화 할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특히 탈북 여성들이 다행히 자유국가로 간다 하더라고 상처가 아주 클 텐데요 이런 상처를 먼저 치유하는 조치가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이원희 기자: 좋은 지적입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는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 겪은 인신매매는 아주 큰 정신적 고통이라고 말 합니다.
심하게 매 맞고 강간이나 성적 모욕을 당했던 사람들은 정신 외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원희 기자: 따라서 이런 여성들의 정신건강은 육체적 건강과 함께 종합적으로 돌보아야 한다고 강조 했구요 자신들도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매사를 생각하면서 병원치료가 필요할 때는 피하거나 숨기지 말고 병원에 가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합니다.
연말 특집, 중국 내 탈북여성들의 인신매매 실태에 대해 이원희 기자와 함께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