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일부 공장, 기업소에 혁신자를 선발해 휴양소에 보내라는 지시와 함께 휴양권이 제공됐습니다. 지난 3년 이상 코로나 상황으로 중단됐던 노동자 휴양이 재개된 것인데요. 그런데 정작 휴양을 가겠다는 대상이 없어 공장 간부들이 속을 앓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안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여러 지역에는 노동행정성 휴양관리국이 관리하는 100여개의 휴양소가 있습니다. 휴양소는 5월 중순부터 10월까지 노동자 사무원들의 여름 휴양을, 12월부터 다음해 2월 중순까지는 농민들의 겨울 휴양을 보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각 휴양소에는 전국에서 선출된 혁신자와 유해(건강에 안 좋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15일 정도 집단적으로 학습과 오락, 운동 등을 하며 여가생활을 보냅니다.
2000년 이후 경제난으로 운영이 중단된 휴양제도를 최근 북한 당국이 다시 강조하면서 하나씩 휴양소들이 운영을 재개하고 있지만 지금은 모든 생활조건을 국가가 보장해주던 이전과 달리 휴양을 가는 근로자가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9일 “며칠 전 우리 공장에 휴양권 1장이 내려왔다”며 “하지만 휴양을 가겠다는 사람이 없어 간부들이 고심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당국은 심각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체제 선전, 근로자들의 생산 의욕과 사기를 돋구기 위해 일부 휴양소를 간신히 운영하고 있다”며 “모든 것을 국가가 보장해주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휴양기간 먹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위에서 권고하는 준비품 목록을 보니 현금 (내화)10만원(미화 12달러) 정도 준비하라는 내용이 있었다”며 “그 외 쌀 5kg과 마른 반찬감, 그리고 고추장과 양념장 같은 것도 준비품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오랜만에 공장에 휴양권이 차려졌지만 휴양을 가겠다는 사람이 없어 간부들이 고심하고 있다”며 “혁신자로 공장의 추천을 받았다 해도 돈이 없는 사람은 절대 휴양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계속해서 “휴양생(휴양 노동자)을 무조건 보내야 하는 만큼 공장 간부들이 생활이 좀 괜찮은 사람들에게 휴양을 권고했다”며 “결국 한 8.3 노동자가 한 달 현금과제를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휴양을 가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8.3 노동자는 매달 공장에 정해진 금액을 바치는 대신 출근하지 않고 장사를 하며 개인 돈벌이를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공장에 바치는 금액은 지역과 시기, 공장에 따라 다 다르지만 함경북도에서는 보통 4~10만원(미화 4.8~12달러)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같은 날 양강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백암군에도 어쩌다 한번씩 휴양권이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며 “하지만 휴양을 가겠다는 사람이 없는 현실”이라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지난 7월 친구가 다니는 임산사업소에 동해 바닷가에 있는 송단휴양소 휴양권이 1장 내려왔는데 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며 “휴양기간 생활에 필요한 현금과 식량, 말린 산나물, 고추장 등을 준비해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양강도 산골에서 태어나 바다를 즐기지 못한 내 친구가 휴양을 가겠다고 나섰다”며 ”그후 휴양에서 돌아온 친구가 현금과 쌀, 고추장, 양념장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전했습니다.
휴양소에 입소할 때 정해진 식비만 내면 보장되는 식사는 강냉이(옥수수)밥인데 쌀을 가지고 간 사람들은 따로 쌀이 섞인 밥을 주었고 기름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반찬이 너무 맛이 없어 식사때마다 집에서 준비해 가지고 간 고추장과 양념장으로 밥을 먹었다는 겁니다.
소식통은 이어 “친구가 남들이 나서지 않는 휴양을 가겠다고 한 것은 바닷가에서 실컷 노는 것이 소원이었기 때문”이었지만 “휴양기간 바다에서 즐기는 일정은 별로 없이 사업소에서와 똑같이 8기 8차 당전원회의에 관한 학습, 주변 혁명사적지 참관 등의 사상교육과 집체 활동이 반복되는 것이 싫어 9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부모님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휴양을 가면 정말 좋았다 한다”며 “하지만 지금 휴양은 물질적 부담과 함께 사상학습과 집단생활을 강요하니 가겠다는 사람이 없는 것은 너무나 응당한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