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남한과 북한의 달력을 보면 음력 절기가 같고 민족의 명절인 설과 추석도 같은 날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일제 시대때 억압 받던 우리 민족이 태극기를 들고 방방 곡곡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던 범 민족 항일 운동인 3.1운동이 북한의 달력에는 표시조차 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어렵게 구한 북한 달력을 보고 있습니다. 벌써 3월입니다. 3월의 첫날 3월 1일을 봤습니다. 토요일이고 음력으로 1월 24일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달력입니다.
남한의 달력을 봅니다. 똑같이 3월 1일 밑에 음력은 1월 24일로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과 다른 3월 1일 입니다. 남한의 달력에는 3월 1일을 3.1절 하고는 공휴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불리는 3.1절은 3.1 인민 봉기 투쟁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남한은 3월 1일을 3.1절이라고 부르며 민족의 명절인 말 그대로 최고의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3월 1일이 단순 기념일로, 남한보다 그 날의 중요성이 크게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는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지배에 항거해서 분연히 일어선 우리 민족의 용기와 투지가 북한에서는 어느 한사람의 치적으로 둔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형직 사범대학 역사학과 출신 탈북자 박광일씨입니다.
김형직이 당시 평양에서 숭실학교 다닐때 청년들이 3.1운동에 나설 수 있도록 지도를 했다, 이끌었다 . 김일성이는 그때 6살인가 했는데 김일성이도 만세 부르면서 하루종일 시위에 참가했다. 그런식으로 교육을 하죠.
그러나 남한의 사료에는 어디를 뒤져봐도 3.1운동을 주도했던 인물 가운데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란 이름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고려대학교 유호열 교수입니다.
그당시에는 남녀 노소가 모두 참가했기 때문에 평양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던 김형직이 평양의 만세 운동에는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김형직이 주도했다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부분은 확인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에서는 3월 1일 우리 민족의 일본에 대한 항거를 김일성 일가의 혁명적 정신에 의해서 이뤄진 것 처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유호열 교수는 지적합니다.
1980년대 들어서 북한은 민족주의적 요소를 정치 체제에 가미하고 김일성 김정일 가계 우상화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3.1 운동도 역시 김일성의 아버지 김정일의 할아버지인 김형직이 주도했다고 각색한 것입니다.
역사 기록에는 서울 종로 탑골 공원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했던 33인의 독립투사들의 이름과 18살의 어린 여학생의 몸으로 태극기를 움켜쥐고 일제의 총칼 앞에 대항해 당당히 맞섰던 유관순 열사의 이름. 그리고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에서 쓰러져간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희생자들의 정신이 후세들을 위해 각인돼 있습니다.
특히 유관순 열사는 당시 아오매 시장에서 태극기를 나눠주다가 체포되 옥살이 중 사망한 독립 투사로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을 일으켜 세워 주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 유관순 열사의 이름마저 김일성 일가 사람들의 이름 속에 묻어 버렸습니다.
박광일: 유관순, 김일성의 회고록에 나와요. 김일성이 3.1운동에 대해 기재를 하면서 참여했던 사람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유관순에 대해서 잠깐 다뤘어요.
3.1 운동은 당시 18살이었던 유관순에 의해 주도됐고, 우리 민족은 유관순 열사를 일제에분연히 항거해 민족의 혼을 일으켜 세웠던 여성 지도자로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주인공인 유관순을 김일성 일가가 주도한 3.1운동을 도운 인물로 폄하시킴으로써 결국 민족의 지도자인 유관순은 두번 죽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