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이산가족 상봉 수수료 북에 지급 추진

이산가족 상봉에 소극적인 북한을 움직이기 위해 남한 정부가, 통일 전 동서독의 사례를 바탕으로 협상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산가족이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개인별로 수수료를 북측에 지불하거나, 일정한 금액의 외화를 북한 원화로 바꾸도록 의무화한다는 게 그 골자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김연호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남한 정부가 검토 중인 새 제도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죠.

김연호 기자: 남한의 한국일보는 14일 남한 정부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남한 정부가 동서독의 사례를 북한에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64년 동독은 서독인이 동독을 방문할 때 의무적으로 일정금액 이상을 동독 화폐로 바꾸고, 다 쓰지 못한 돈은 다시 서독화폐로 바꿔주지 않는 소위 ‘강제 환전제’를 도입한 바 있습니다. 또 서독인이 동독 국경을 넘어 친지를 방문할 때 일정금액을 비자 발급 수수료나 도로 통행료로 내는 소위 ‘입경 수수료제’도 도입했었습니다. 남한 정부는 이 같은 제도를 적용해서 이산가족이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개인별로 수수료를 북측에 지불하거나, 일정한 금액의 외화를 북한 원화로 바꾸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남한 이산가족들이 상봉행사 때 북측에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 것은 없습니까?

김: 현재 북한을 방문할 때에 공식적으로 내는 수수료는 없습니다. 비자 발급료도 없습니다. 금강산 관광객이 1인당 50달러씩 내는 방북 비용만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북한에 투자나 현물지원 같은 경제적인 대가를 지불하고 북한의 가족들을 만나는 이산가족들도 있지만 1년에 5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남한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새 제도가 도입될 경우에 어떤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까?

김: 남측의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일 경우 현재 금강산에서 가끔씩 단체상봉 형태로 진행되는 이산가족 상봉이 크게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산가족 왕래를 자유롭게 허용할 경우 경제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을 북측이 갖게 된다면 이산가족 상봉의 문을 활짝 열고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독의 경우 강제 환전제와 입경 수수료제를 통해서 통일 전까지 약 55억 마르크, 미화로는 약 20억 달러의 수입을 얻었습니다. 남한 정부 관계자는 동독의 사례가 제대로만 실행된다면 이산가족 상봉의 폭이 확대돼서 결국 자유왕래까지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한국일보에 밝혔습니다. 그러나 남측의 제안대로 시행될 경우 서민층 이산가족에게는 경제적인 부담이 가중돼서 자칫 이들이 이산가족상봉에서 소외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지원대책도 같이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또 원래 인도적인 배려에서 추진되는 이산가족상봉이 새 제도를 통해 그 취지가 퇴색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그동안 시행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 우선 북한 측이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인 차원보다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다루려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대가의 형식으로 가끔씩 이산가족 상봉을 허락하는 북측에게 경제적인 동기를 자극하는 제도 자체가 먹혀들 수 없었습니다. 또 동독이 서독에 흡수 통일됐다는 사실도 북한이 동서독 사례를 적용하는 것을 꺼리게 하는 원인이 됐습니다. 이 때문에 남측도 동서독의 개별 상봉 방식을 피하고 단체 상봉 방식을 채택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동영 장관이 취임한 이후에 통일부가 동서독 사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여기에는 심각한 경제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북한이 이제는 경제적인 동기를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았겠냐는 판단도 한 몫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한에는 현재 이산가족이 얼마나 있습니까?

김: 현재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이산가족이 12만 명을 넘고 있고, 등록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모두 7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2만여 명은 이미 사망했고, 매년 수천 명의 이산가족 1세대가 고령으로 사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이산가족 상봉이 그전보다 활발해져서 1만 명 가까이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났지만, 전체 이산가족 수에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