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통신, 이 시간에는 납북자 가족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서울과 부산, 익산과 통영, 주문진 등 전국에서 온 납북자 가족 약 50 명은 7일 서울 송파구의 수협중앙회에서 열린 정기 총회에 참석해 납북자와 관련한 소식을 나누고 서로 안부를 물었습니다.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룡 대표는 지난해 제정된 납북 피해자 보상과 지원법에 대해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앞으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 계획을 밝혔습니다.
“ 앞으로 우리의 아픔을 담은 전단지도 계속 보낼 것이고 개정 법률안 발의에 대해서 국회에 호소할 것입니다. 최근 정부가 납북자와 국군포로를 돈을 주고 사온다고 하는데 그것은 원칙적인 해결은 아닙니다. 북한하고 협의해서 생사를 확인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날 모임에는 지난해 남한 방송이 제작한 납북자 가족과 관련한 동영상을 상영했습니다. 동영상이 방영되는 내내 납북자 가족들의 울음 소리가 멈추지 않아 그동안 납북자 가족들의 아픔과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올해 75세의 이간심 할머니는 지난 1971년 휘영호를 타고 조업을 하다 북한에 납치된 아들 정안상 씨의 사진을 보여주고 살아서 꼭 만나기를 소원한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아들, 우리 아들입니다. 명절 때 제일 보고 싶어요. 배가 고파서 돈 벌러 간 사람을 월북자라고 모두 말한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소원은 만나는 것이 소원입니다. 아들아, 언제라도 하늘 밑에서 살아만 있어라.”
1968년 납북된 북일호의 기관장이었던 김경두 씨의 외동딸인 김정희 씨는 40년 전 헤어진 아버지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운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코에 점이 있었는데 바늘을 불에 달궈서 점을 빼 주시고 항상 대학까지 보낸다고 자랑하셨습니다. 또 저희 큰 집에 망나니 삼촌이 계셨는데 삼촌이 난동을 부릴 때면 늘 저희 아버지를 모시러 왔습니다. 그 때마다 말이 없이 나가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동전도 한 통 모아서 저를 주시고, 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놀았던 것도 생각납니다. 아버지 사진을 거실에 걸었는데 항상 보면 눈물이 납니다.”
김정희 씨는 아버지가 납북된 후 가족들 가운데 4명이 자살했을 정도로 연좌제로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희 씨는 아버지의 생사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이제는 지나간 아픔을 잊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호적이 여기 있으니까 생사가 확인돼야 돌아 가셨으면 사망 신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북한에 납치됐다고 사망 신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돌아가셨으면 가슴에 묻고 살고 싶습니다.”
올해 43세인 남장희 씨는 지난 1972년 유풍호를 타고 동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북한에 의해 납치된 아버지 남정열 씨의 유골이 송환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아버지가 북한에서 사망하셨다는 통보를 받고 마음이 더 간절해 졌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작년에 북한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통보를 받았습니다. 제 소망은 돌아가신 분의 유골이라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미국도 6.25 때 사망한 군인들의 유해를 발굴했는데 돌아가신 납북자들의 유골을 받는 것이 저의 큰 바람입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납북자 피해 보상과 지원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귀환 납북자와 납북자들 가족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고 납북자 송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 돈을 주고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데려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납북자 가족들은 정부의 이같은 방침을 납북자 문제의 해결에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더 적극적인 정책을 마련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특히 납북자 피해에 대한 보상 수준이 지금보다 높게 개선된다면 북한에 억류된 납북자들을 더 많이 데리고 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납북자 가족 허용근 씨입니다.
“지금 남과 북의 관계가 경색되어 있으니까 남아 있는 희망마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족들의 아픔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소홀히 하는 것 같아서 실망스럽습니다.”
이날 모인 50여명의 납북자 가족들은 앞으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통해 북한에 살아있는 납북자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힘차게 구호를 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