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은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과정” - 박원순 변호사

서울-하상섭 has@asia.rfa.org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는 고문은 한 인간에게 외형적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영혼까지 파괴하는 행위라고 지적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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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변호사 - RFA PHOTO/하상섭

박 변호사는 또 공익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고문은 실제론 권력유지를 위한 경우가 많다면서 이는 억울한 희생자만을 양산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박원순 변호사님께서는『야만시대의 기록』이라는 책을 쓰셨는데요, 고문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문에 대한 책을 쓰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80년대에 한국의 제5공화국 시절에 사실은 고문사례들이 많았죠. 물론 그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그러면서 그 사건들을 변론하는 동안에 그 당시 구속됐던 많은 사람들 중에 고문을 당한 사람이 많았죠. 그리고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많았죠. 물론 대부분은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문을 받았다는 것이 증명이 된 사례들이 많았고.. 그러면서 관심이 많았는데요, 이런 거대한 국가에 의한 폭력을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사례들을 모으고 있었고요..

박 변호사님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시면서 많은 고문 피해자를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문피해자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증상을 겪고 있던가요?

고문은 사실 발병이 빠른 시간 내에 바로 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재판을 받고 감옥을 경험하고 복역이 끝난 다음에 사회에 나와서 후유증이 발생돼서 자살에 이른다거나 또는 여러 가지 후유증을 겪는 사례들이 많이 보고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외상에 의한 부상 이런 것 보다는 훨씬 더 잠복기간이 길고 또 나중에 나타나고 그 대신 이것이 치유가 참 어려운, 그러니까 초기에 증상이 발견되면 치유의 길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것이 굉장히 악화되고 나서야 남들에게 알려지고 그렇게 되니까 치유의 가능성도 굉장히 줄어드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고문의 후유증이 고문당한 사람들의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십니까?

고문을 견디고 아주 그대로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죠. 그렇지만 이제 고문이 훨씬 더 가혹할수록, 특히 젊은시절에 고문이라고 하는 무지막지한 경험을 처음 당하는 사람일수록 아주 쉽게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증상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는 아주 중한 정신질환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정신)분열증세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경운데요, 그렇게 되서 아주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물론이고 가정생활조차도 어려워서 아예 정신병동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고요.. 또 그런 것 때문에 실제로 자결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아주 비극적인 삶의 파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고문 피해자들이 잠시 아픔을 잊었다가도 곧 후유증이 재발돼 사회적으로 폐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한 번 고문을 당한 사람이 정신적 피해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인간의 영혼이 질그릇 같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고문이라는 것이 굉장히 특수한 상황, 그러니까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아주 무자비한 어떤 외형적인 폭력이 가해질 때 그 사람이 절망하게 되고 구원이 없는 상태에서 철저하게 영혼이 파괴되는 그런 과정이 아닐까 싶거든요? 그런데다가 단순히 폭력만 가하는 것이 아니라 허위진술을 하게 한다든지 또는 동료를 고발하게 한다든지 이런 과정에서 양심의 가책이나 강요를 경험하게 되고.. 아마 그것이 한번 외형적으로 마치 맞아서 상처가 났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계속 영혼 속에 상처가 남게 되고 그것이 계속 더 발전 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외국의 경우, 고문피해자들에 대한 치료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액트: 박원순 변호사> 덴마크나 영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고문의 피해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상들이 마련돼 있는 나라들도 있는데요.. 제가 91년에 영국 런던에서 1년 동안 산 적이 있는데요, 그 때 보니까 ‘더 타임즈’ 인지 어느 신문의 기사를 보니까 아프리카에서 고문당한 사람들을 영국에 데려와서 치유하는 치유동산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이 만들어졌다는 기사를 봤거든요? 근데 우리 한국의 경우는 사실 고문 피해자가 상당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나 의사들이 상당히 적고요, 사회적으로 봐도 이렇게 고문 피해가 사실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더 피해자들의 삶이 더 피폐화 되는 이런 상황으로 치달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문이 이뤄질 때 가해자와 피해자는 각각 어떤 감정을 갖게 되나요?

피해자들의 경우에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강제된 상황에서 (고문을) 받게 되니까 아주 처절한 한계적 상황에 이르게 되는 거죠. 본인이 버틸 수 있는 자존심이나 이런 것이 무너지는 것이죠. 그럴 때는 억지 자백을 하거나 또는 수사관이 요청하는 데로 다 따르게 되고.. 그런 것이 나중에 커다란 상처로 남는 거죠. 그 다음에 가해자는 직업적으로 (고문을) 했던 사람들을 보면 결국 인간의 영혼이 양쪽에서 파괴된 것이다.. 그러니까 피해자도 물론 파괴됐지만 가해자도 사실 정상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고문 전문가라는 것이 정상적인 어떤 인간성을 가지고 하기는 힘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말하자면 군사독재정권이라는 것이 인간의 파괴, 인간 정신의 파괴를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래서 가해자도 또 하나의 피해자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문이 갖고 있는 폭력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고문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범죄 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것으로 볼 수 있고요, 또 독재정권의 보편적인 양상이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국가권력을 보통 독재 그 자체는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들어선다거나 또는 그 자체가 헌정에 위반되는 이런 경우가 많은데 그런 불법적인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그것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억누를 수밖에 없고 그것을 합법적인 수사나 재판을 해서는 혐의를 밝혀내기 어려우니까 고문이 거의 공식처럼 등장하게 되고요.. 그래서 이런 것이 국가적 시스템으로 된다, 어떤 우발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사실은 국가가 엄호하고 있는 이런 상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고문에) 종사하는 경찰 한 두 명의, 수사관 한 두 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체계적으로 동원되고 고문이 하나의 어떤 정책으로 유지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죠.

독재와 고문과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독재정권은 대체로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까 강제로 억압적으로 국민들을 통치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점점 자유를 요구하는 대열이 많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근데 그것을 합법적으로 통치하면 통치가 불가능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 가지 편법이나 불법적인 힘을 동원하게 되는데 그 중에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하나의 수단이 고문이고.. 그러니까 고문을 자행할 수밖에 없는 이런 국가적 시스템이 작동되게 되는 거죠.

북한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권이라든지, 고문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에 대해서는 정보가 제한돼 있어서 워낙 폐쇄적인 국가니까 (알 수는 없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된 국가에서는 고문이 있을 가능성이 많죠. 어떤 고문이나 권위주의적인 폭압적 통치는 분명히 저는 있을 것이라고 보고요, 그것은 국제사회가 일정하게 개입을 해야죠..

고문은 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은 원래 존엄성을 띄고 태어났잖습니까? 그것이 이제 UN 인권선언을 보거나 한국의 헌법을 보거나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은 그런 강제적 폭력에 의해서, 자기의 신념에 반하는 사실에 동의하거나 진술을 하거나 그럴 수는 없는 존재죠. 그래서 고문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거든요? 고문이라는 것이 어떤 경우에도 공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자행이 되거든요, 겉으로는.. 그런데 실제로는 나중에 보면 권력의 유지를 위하는 것이라거나, 이렇게 되서 아주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어 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의 경험이고 교훈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고문은 허락될 수 없다, 이것이 인류역사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