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제2 연평해전’ 추모식 열려

6년 전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북방 한계선을 넘어 온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 공격으로 남한과 북한간의 교전이 발생해 남한은 6명의 사망자와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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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이후 햇볕정책을 앞세운 남한 정부는 사건 해결과 전사자 대우에 무관심 했지만 미국인들은 그들의 희생을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미망인을 통해 알려진 제 2 연평 해전 추모식이 미국 동부 메사추세츠주 우스터시에서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중부에 위치한 우스터(worcester) 시. 인구 20만의 제2의 도시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입니다. 하지만 김종선 씨에게는 남편의 숨결이 묻어 있는 제 2의 고향입니다.

이 곳에 세워진 한국전 기념비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191명의 매사추세츠 주 출신 참전용사와 함께 6명의 한국인 이름이 벽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2002년 6월 29일. 북방한계선을 넘은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 공격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남한 해군들의 이름입니다.

당시 한국에서 조차 무관심했던 이들의 이름이 미국 우스터시 한국전 기념비에 새겨지게 된 것은 연평 해전에서 북한 경비정과 싸우다 전사한 고 한상국 중사의 아내, 김종선씨와의 작은 인연 때문이었습니다. 매사추세츠 주 한국전 추모협회의 제프리 부샤국장의 설명입니다.

Jeff busha: Worcester honor the soldiers who may this supreme sacrifice they are given their lives so that those in Korea we are in the United States can be free. We met Hanna Kim the widow of Han Sang Guk, the pilot of the PKM 357. We feel it very important to educate an to inform public that today we need to continue to strength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United States.

저희 우스터시는 한국과 미국의 자유를 위해 위대한 희생을 보여준 전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당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미망인, 김종선(한나 김) 씨를 이 곳 미국에서 만났습니다. 그녀는 여러 차례 우스터시 한국전 추모식에 참석했죠.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연평해전 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한국과 미국의 우애를 더 강화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북한 경비정의 공격으로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김종선 씨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우스터시에 한국전 기념비가 세워진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됩니다. 딱히 가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냥 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3년 11월 우스터시에서 열린 첫 한국전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김종선씨: 거기를 가서 그 식에 참석을 했죠. 제가 온 것에 대해 다들 놀라신 거에요.. 여자 혼자의 몸으로 태평양을 건너서 왔다는 것 자체를 너무 놀라워하셨어요. 너무 저를 예뻐해 주시고... 그 다음해에 이분들이 한국에 오셨어요. 저도 같이 다니면서 제 2 연평해전, 그 당시의 침몰했던 배도 보여드리고, 당시 대원 가족들도 다 만나고... 그 때 남편 이름이 새겨진 벽돌을 하나 주시더라구요. 당시 회장님께서 "내가 약속을 하는데 이 여섯 분들 이름을 (우스터시 기념비에) 다 새겨 놓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2005년도 제가 미국을 갔어요. 그 때 가서 보니까 다 되어 있더라구요.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를 중시하던 한국 당시 그 어느 곳에서도 남편의 이름을 남길 수 없었는데 먼 미국 땅에 남편의 이름이 새겨진 다는 것은 김종선씨에게 너무나도 기쁜 일이었습니다.

인천 월미도에 전적비를 세운다고 할 때도 주민들의 반대가 너무 심했는데 전혀 자신과 관련이 없는 미국땅에서 남편과 전사자들을 기억해 준다니 우스터시는 이제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라고 김종선 씨는 고백합니다.

우스터시는 29일, 한국전과 제 2 연평 해전 추모식을 가졌습니다. 연평해전 추모식은 미국 내에서는 처음입니다. 한국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종선씨는 정작 한국에서는 이들의 이름이 점점 잊혀져 가는데 먼 미국 땅에서 처음으로 추모행사까지 열린다니 너무 감격스럽다고 말합니다.

김종선씨: 솔직히 너무 행복해요. 너무 감사하구요. 이렇게까지 해 줄 거란 생각은 안했거든요. 거기 잇는 것만으로는 위안이 되고, 사실 한국에 그것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군이나 나라에서 지금에서야 해줬지만 미국에 있을 때도 그 쪽에 더 많은 의지를 했어요. 마음 한 편에 좋으면서도 아픈 곳이죠. 그 곳에서 첫 번째 추모식을 한다고 하니까 많이 떨리고 가서 보고 싶은데 가지를 못하니까 너무 안타깝고 그래요.

김종선씨는 남편과 다른 전사자들에게 보인 한국 정부의 무관심에 실망을 느껴 지난 2005년 미국으로 혼자 떠났습니다. 미국 뉴욕에 도착해 "한나(Hannah)" 라는 이름으로 발 관리사, 청소부, 슈퍼마켓 직원으로 일했던 김종선씨는 3년 간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지난 4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당분간은 남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우스터시는 갈 수가 없습니다.

돌아와 보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연평 해전 추모행사도 국가 주관 행사로 격상됐고, 추모비도 세워지는 등 나라를 지키다 숨진 남편의 명예는 되찾은 것 같지만 아직도 무언가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북한의 진실된 사과입니다.

제 2 연평해전 추모행사를 주최한 매사추세츠 주 한국전 추모협회의 대니엘 브랜녹 회장은 북한이 한국전 뿐만 아니라 제 2 연평해전에 대해서도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전 협정 55주년이 엊그제였기에 이번 추모행사의 의미는 더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Daniel Brennock: I will say this that believe that without apology, it will be very difficult to unify the North with the South. I think eventually, its sane men who are working for same goal of unification are to come to some agreement on that, apology will have to be extended and accepted.

(북한측의) 사과과 없다면 남한과 북한이 하나가 되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궁극적으로 남과 북이 통일에 대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북한은 과거에 대한) 사과를 당연히 해야 하고 그 사과는 또 받아들어져야 할 겁니다.

남편을 바다와 가슴에 묻은 지 6년, 김종선 씨도 이제 북한의 사과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남한과 북한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기 보다는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북한이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 주기를 김종선씨는 바라고 있습니다.

김종선 씨: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정말 나쁘죠. 사과도 안하고, 당시 정부 쪽에서도 아무런 조치도 안했었고. 지금이라도 북한이 사과를 한다면 참 좋겠어요. 어차피 인도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굶어죽는다는데 이념이 무슨 상관이에요. 북한이 진정으로 사과를 한다면 (사과를 받아야죠. 사과한다는데...)

메사추세츠 위스터시는 한상국 중사 등 6명의 전사자의 추모벽돌을 세우고 연평 해전이 일어난 6월 29일을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날로 제정해 선포했습니다. 위스터시는 매년 여느 한국전 참전용사와 함께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희생을 앞으로도 계속 기억할 것이라고 매사추세츠 주 한국전 추모협회측은 밝혔습니다.

김종선 씨: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미국에서 이런 행사를 해 준다니까 너무 고맙고, 아마 남편도 위에서 보면서 흐뭇해 할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영원히 기억될 남편의 이름. 남편의 명예를 위해 열심히 달려 온 김종선씨는 이제 새로운 내일의 비상을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