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유를 찾은 탈북 여성들은 정착 초기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하는데요.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 천지인 탈북 여성들이 이번엔 또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시죠?
대한민국에서 출근 시간 혹은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아파트 승강기를 타면 남성분들이 음식물 쓰레기 혹은 분리수거 쓰레기 봉투를 들고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남존여비가 심한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시영이는 그런 모습을 보고 처음엔 충격이었죠.
세상에 하늘 같은 남편에게 그것도 출근길에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집어 보낸다고? 도대체 저집 아내는 어떤 정신상태를 가졌기에 저런 무리한 짓을 하지라고 속으로 엄청나게 욕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를 하지요.
사람이 남긴 음식물을 집짐승에게 먹이는 북한이랑 다르게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짐승들에게 맞게 갖가지 사료를 먹이다 보니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나 강아지에게 주인이 먹던 음식을 주는 경우가 거의 없답니다.
혹시 시골에 가면 어르신들이 마당에서 뛰어노는 누렁이에게 고기 한점 혹은 수산물 한토막은 던져주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되지만요. 그러니 집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라고 적혀진 비닐봉지에 남은 음식을 담아 아파트 아래 큰 플라스틱 용기에 버리는데 그양이 어마어마합니다. 날짜와 시간을 정해놓고 수거업체들이 아파트 아래에서 가져가 돈을 내고 소각한답니다. 처음엔 그것도 북한에 보내주어 뼈만 남은 북한의 소, 돼지, 강아지에게 주고 싶더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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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퇴근하고 남편들은 당연히 하루 동안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아파트 아래로 내려오고요. 또 다양한 쓰레기도 버리러 내려왔다 올라갔다 합니다. 물론 계단으로 걸어 다니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하게요.
북한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 사는 남성들은 당연한 거 아니냐고 살림을 하는데 여자일 남자 일이 따로 있냐고 서로 도우면서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고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시영이도 몇년 습관이 되었는지 최근에는 동생들이 집에 놀러오면 담배 피려 내려가는 길에 오물을 버리고 오라고 시키기도 하지요. 참 이곳에선 집안에서 혹은 계단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어 남자들은 엘리베이터(승강기)를 타고 밖으로 내려가 담배 한대 피우고 올라옵니다. 금연하면 되는 데 그 피곤한 행동을 계속하는 지인 동생들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5대 이모님을 아세요?
북한에서 김부자가 무거운 가정일 곳에서 여성들을 해방해준다고 홍보하는 이야기를 책에서 보았는데 대한민국에는 주부들을 가정의 힘든 일에서 해방해주는 5대 이모님이 등장했습니다.
북한에선 어머니의 자매들을 이모라고 부르지만 이곳에선 동네 아주머니들보고 이모님이라고 많이 부릅니다. 가사를 도와주시는 도우미 이모님, 육아를 도와주시는 육아 돌보미 이모님, 아파트 청소 이모님 이런 식으로요.
청취자님들은 이모님이 어디서 오시는지 궁금하시죠? 대한민국 5대 이모님 중 오늘 소개해드릴 이모님은 바로 주방에서 시영이를 도와주고 있는 식기 세척기 이모님이랍니다.
식기 세척기에 그릇을 넣으면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처럼 깔끔하게 씻어 뽀송뽀송하게 말리기까지 하는데요. 식기 세척기의 크기는 북한 가정에 흔히 있는 냉장고 반만큼 한 크기입니다. 문을 열면 안에 그릇을 놓을 수 있는 선반들이 있는데 먹고 난 그릇에 음식물만 제거하고 넣고 문을 닫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안에서 수돗물도 나오고 세제도 나오고 마지막엔 건조에 도움을 주는 린스라는 것도 나오면서 그릇을 깔끔하게 씻고 소독하고 건조까지 시켜줍니다.
남자들이 여자를 사귈 때 ‘평생 손에 물 안 묻히고 살게 해줄게’ 한다는 말을 들었나요? 식기 세척기가 주방에서 설거지하면서 물을 묻히던 저의 손을 요즘은 마르게 해준답니다. 어머니랑 둘이 사는데 설거지할 게 뭐 있냐고 생각하면서 사용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언니들이랑 동생들이랑 저의 집에 놀러 오면서 설거지 양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먹을 것이 풍요로운 이곳이다 보니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차리면 그릇이 정말 많이 나오고요. 또 맥주 포도주 양주 다양한 술 종류에 따라 잔이 나오다 보면 술잔도 장난 아니랍니다. 이럴 때 고무장갑 하나 끼고 싱크대 수돗물에 남은 음식물만 슬슬 내려 식기 세척기에 척척 꽂아 넣으면 설거지 끝입니다.
그릇이 깔끔하게 씻어지고 뽀송뽀송하게 마르면 완료되었다는 음악 소리가 들리고 문을 열면 반짝거리는 접시, 술잔, 밥사발 국사발이 저를 바라보고 마른 손으로 식장에 착착 위치를 찾아 올려두기만 하면 깔끔합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옷 앞에 물이 튀거나 얼룩질 일은 전혀 없지요. 그러니 설거지 해주는 식기 세척기가 잘하지 못하니 생색을 내시는 이모님보다 훨씬 좋답니다.
주부습진에서 해방
사실 시영이는 북한에서 식당 영업을 7년 동안 하다 보니 주방에서 세제를 너무 많이 사용하여 주부습진이 걸렸답니다. 직원 한명 더 쓰면 돈이 아까워 몇년 동안 세제를 사용했더니 결과가 너무 나빠진 거죠. 병원에 가니 펠라그라 비타민 주사를 달고 살고 별의별 치료를 했지만 저는 손이 찢어지고 갈라지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답니다. 탈북 후 대한민국에서 약도 먹고 바르고 또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손에 물을 묻히지 않으니 주부습진이 싹 나아졌습니다.
북한에서 손만 낳게 해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자유를 찾고 손도 나아지고 오늘도 제가 탈북하기 참 잘했죠? 식기 세척기 가격은 남한 돈으로 치면 150만원 정도입니다 청취자님들에게 알려드리기 쉽게 설명하자면 1,500 달러정도지요. 1,500 달러가 북한에서는 너무나 큰돈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미안하고 또 우리의 일상이 여러분을 찾아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신혼부부들은 결혼하면서 꼭 주방에 식기 세척기를 구매합니다. 언젠가 우리 고향에서 결혼하는 신혼부부들도 주방에 식기 세척기 하나쯤은 부담 없이 구매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