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의 탈북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남한과 북한의 문학작품을 감상도 해보고 비교도 해보는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도명학 작가와 전화 연결돼 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은 굉장한 분이 등장하시죠? 선생님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을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네, 임진왜란 때 큰 전공을 세워 명성을 날린 애국 명장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와 그에 대해 다룬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MC:‘이순신 장군’이라고 하면 남한에서도, 그리고 북한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혹시나, 혹시라도 모르는 분이 계실까 싶어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순신, 백성 걱정만
도명학: 말씀하신 것처럼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우리 민족 중에 없을 것입니다. 다만 누구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상세한 부분까지 안다고 할 순 없고, 그래서 기회가 생긴 김에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16세기 말 조선의 애국 명장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을 이끌었던 제독이었습니다. 시호는 충무공입니다. 장군은 1545년 3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났고 1576년애 무과에 급제하여 권지 훈련원 봉사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해 12월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으로 부임했습니다.
이후 1579년 충청도 병마 절도사 군관이 되어 충청도 해미 병영으로 갔다가 2년 후 군기 경차관으로 온 서익이란 사람이 과거의 일에 대한 보복으로 이순신이 근무태만을 한다고 거짓 보고를 올려 파직되는 고초를 겪게 되는데 몇 달 후 종8품 훈련원 봉사로 복직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함경남병사 이용이 이순신을 자신의 군관으로 삼게 되면서 경원 고을 건원보 권관으로 천거되고 여진족 토벌에 공을 세워 총7품 훈련원 참군으로 승진합니다.
장군은 1586년 42세 나이에 종4품 만호로 임명되는데 이는 장군직입니다. 이 시기 여진족과의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또다시 모함에 걸려 직위가 해제되어 백의종군 하다가 여진족 부락 공격에 참가해 공을 세워 사면되고 충청도 아산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이듬해 전라도 감사 휘하 조방장에 임명되었다가 다시 선전관으로 임명되어 서울로 올라갔다가 또 전라도로 내려가 정읍 현감이 되는 등 조선팔도 여기저기 많이도 옮겨다녔고 1591년에 종3품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어 이듬해 1592년 임진왜란을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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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진가는 임진왜란에서 남김없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그과정에 또다시 모함을 받아 해임되어 서울로 암송 당해 옥에 갇히는 등의 수난은 있었지만 워낙 출중한 장군인지라 이조판서 이항복 경림군 김명원의 건의로 종2품 삼도 수군통제사에 복직합니다. 하지만 전투능력을 상실한 수군을 폐지하라는 왕의 지시가 내려지자 오늘까지 전해지기로 유명한 말인 “전하,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라는 장계를 올려 수군 폐지를 반대합니다. 그리고 열두척의 배로 어란포에서 왜군과 조우해 교전 끝에 승리하고 진도 벽파진으로 진을 옮깁니다.
10배 넘는 왜군 함선 격파
벽파진에서는 왜선 13척과 조우해 승리를 거두고 한주일 후에는 전함 13척과 피난선으로 명량 입구인 임하도의 좁은 물목을 이용하여 왜군 함선 133척과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두는데 바로 이 전투가 그 유명한 명량해전입니다. 그렇게 장군은 일본 수군과의 계속된 전투에서 연전연승하여 전쟁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데 기여하고 패색이 짙은 왜군이 도망가던 무렵 노량에서 퇴각하는 일본군을 섬멸하여 대승을 거둡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합니다.
![충무공 탄신 기념행사(CG)
[연합뉴스TV 제공]](https://www.rfa.org/resizer/v2/4NDJWULCMVCQPAMWISRLHWDA5A.jpg?auth=e4ffaf8199261b70b49ec89c66e9ad4d149cd493360b3cbe73be39d3fd375fed&width=800&height=375)
참고로 이순신 장군 하면 인물이 영웅호걸답게 위엄있는 장수로 생각하지만 실은 장수로서 위엄있는 외모와는 거리가 멀었고 글을 읽는 단아한 선비 같았다고 합니다. 예의도 밝고 인정도 많았다고 하는데 두 형 이히신과 이요신이 벼슬을 얻지 못한채 각각 4명과 2명의 자식을 남기고 일찍 죽었는데 이순신은 이 여섯명의 조카들을 친자식 못지 않게 잘 키워냈습니다. 또 그가 전라도 정읍 현감으로 있는 동안 그와 가족들이 보여준 처신은 정읍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을 만큼 대단했다고 하는데 조카들의 혼례를 먼저 다 치러낸 후에야 자기 친자식 혼례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이순신 장군은 우리 민족 모두가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조선의 대표적인 구국영웅이며 세종대왕과 함께 최고의 위인으로 높은 위상과 명성을 자랑하는 인물로 세계적으로 살펴보아도 이름을 떨친 호레이쇼 넬슨 같은 명장들은 모두 정부의 많은 지원을 받고 전공을 세웠지만 이순신 장군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몰려드는 피난민들의 생계까지 직접 돌보며 힘겹고 외롭게 전쟁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참으로 이순신 장군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극한을 보여준 전설적 영웅이었습니다.
MC: 얼핏 듣기로는,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전략전술을 공부한다고 하던데요. 적이었던 일본군마저도 존경심을 표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또는 북한 주민들은 이순신장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도명학: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심은 남한에 비해 북한은 상당히 저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순신 장군 하면 세계 최초의 철갑선 거북선을 만들어 일본 수군을 요정낸 애국 명장이라는 정도 외 구체적인 것은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아는 부분이 정말 적습니다. 오히려 이순신 장군을 6.25 전쟁 때 공을 세운 인민군 병사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교육 받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비록 전공을 거둔 명장이긴 하지만 그 역시 봉건통치배 집단에 속한 인물로서 그가 충성을 바쳐 지키려 한 나라는 백성들 머리 위에 군림한 왕과 양반관료들을 위한 나라지 인민의 나라는 아니었다. 그런즉 인민이 주인 된 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 한목숨 바쳐 싸운 인민군 전사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영향 때문에 이순신 장군의 공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 당시 상황에서 대단했을 뿐이라는 식의 인식이 머리 속에 박혀 있습니다. 결국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최고의 영웅, 걸출한 위인은 김일성 장군뿐이라는 우상화 교육에 이순신 장군을 활용하는 것인데, 을지문덕 장군, 강감찬 장군 등 우리 역사에 나오는 다른 애국 명장들에 대해서도 다 그런 식으로 교육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역사 속 애국 명장들에 대한 인식은 그저 옛말 얘기 정도에 머문다고 할 수 있습니다.
MC: 북한에서 이순신 장군을 다룬 문학작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도명학: 네, 있습니다. 많지는 않은데, 제가 알기론 규모가 큰 작품은 장편소설 “리순신 장군”과 영화 “임진왜란” 정도 외 분량이 적은 단편적인 작품들이 몇몇 있습니다.
북한 작가 김현구가 쓴 “리순신 장군』은 1990년에 평양 문예출판사에서 간행된 총 6장의 장편역사소설이고, 북한에서 임진왜란을 지칭하는 임진조국전쟁에서 활약한 이순신 장군의 혁혁한 전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소설 첫 부분에서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 리순신은 ‘수군폐지론’에 접한 상황이고, 군대도 기강이 무너져 군량미로 술을 만들고 밭가는 황소로 고기를 잡는 등 관리들의 악정이 계속되는 속에서 리순신만은 백성을 보살피고, 거북선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이러한 리순신에게 오히려 민심을 소란케 한다는 이유를 근거로 ‘역적모의’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혐의가 씌워지던 중 왜란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왕을 위시한 관리들은 도망을 치지만 백성들은 적극적으로 싸움에 나섭니다.
이러한 백성들과 하나가 되어 리순신은 옥포해전을 숭리로 이끌고 거북선의 위력을 앞세워 한산대첩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순신에 비해 원균은 싸움엔 참가하지 않고, 싸움이 끝난 후 ‘적의 수급’을 베기에만 급급합니다. 백성들의 아픔을 걱정하는 리순신은 해전에서 뿐만이 아니라 육지에서도 왜군을 빨리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경상도 곽재우 의병장과 연계를 가집니다 이때 부패한 관료들이 의병들을 무시하는 반면, 리순신은 이들과 연합해 부산포해전에서 승리합니다. 리순신은 전쟁에서의 계속되는 승리 덕분에 전라좌수사와 3군수군통제사를 겸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리순신을 견제하기 위해 간첩 요시라가 파견되는데, 원균과 리몽구는은 요시라에게 넘어가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시간을 벌기 위해 왜군이 강화담판을 진행시키는 데, 원균과 리몽구는 마치 전쟁이 끝나는 듯한 분위기를 유포시키며 사기를 저하시키고, 리순신은 이를 책망합니다. 원균과 리몽구는 간계를 내어 “리순신이 딴 생각을 품고 있다”고 상고합니다. 리순신은 대역죄인으로 몰려 옥에 갇히고, 리순신이 없는 상황에서 원균은 전쟁 중 사망하고, 사태가 급박해진 조정에서 리순신에게 다시 벼슬을 내려 위기를 막게 합니다. 원균이 죽을 즈음, 리몽구가 왜군과 내통한 것이 드러나고. 거북선도 없고 배도 여남은 척 밖에 없는 상태에서 리순신은 암담해하나 이때, 박천세 영감이 작전을 제안해 이를 받아들여 진도벽파진 울돌목에서 수백 척의 왜군 함선과 수천명의 왜군을 무찌르게 됩니다.
영화 “임진왜란”도 이순신 장군이 나오는 영화인데, 다만 이 영화는 이순신 장군 위주로 제작되진 않았습니다. 영화는 임진왜란 전반을 다룬 스케일이 큰 영화로 이순신 장군, 권율장군, 계월향, 곽재우, 서산대사 등 당시 맹활약한 다수의 영웅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왜군에 저항하는 각계각층 인물들을 많이 등장시킴으로써 임진조국전쟁이 어느 장군 한둘이 잘싸워 승리한 것이 아니라 전 인민적 항쟁의 결과물이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MC: 결국 북한이,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는 문학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뭘까요?
도명학: 소설 “리순신 장군”은 북한당국이 간부들에게 강조하는 리더십, 즉 지도력과 성품을 이순신 장군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 나오는 리순신 장군의 리더십은 북한 간부들이 학습회, 강연회 등을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간부들이 갖춰야 할 품성과 자질과 신통히 같습니다.
영화 “임진왜란” 역시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입각한 혁명노선인 인민대중을 믿고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인민대중을 조직동원할 때 혁명의 승리를 이룩할 수 있다는 이론의 정당성을 은연중 강조합니다.
결국 소설 “리순신 장군”에 감춰진 메시지는 간부들이 어떻게 북한 주민들을 독재 정권을 위해 더 효과적으로 동원해 쥐어짜야 하는지 알라는 것이고, 영화 “임진왜란‘은 북한 주민 모두가 왜 각종 사회적 동원에 불만 가지지 말고 동참하는 것이 당연한지를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숨기고 있습니다.
MC: 그럼 남한의 작품 또는 작가들은 이순신 장군을 통해 무엇,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걸까요?
도명학: 남한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순수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고 작품 속 인물과 교감하며 애국심과 자부심 또는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작품이 완전히 동일한 메시지를 던진다곤 할 순 없지만 큰 틀에선 같을 것이고 개개의 작품이 추구하는 좀 더 차별화되고 구체성을 띤 메시지가 있을 것입니다.
MC: 네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오늘은 남북한 모두에 잘 알려진 이순신 장군과 그에 관한 작품을 알아봤습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