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이 1989년 동독이 무너진 뒤, 비밀리에 독일에 특사를 파견했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7일 연합뉴스는 독일의 일간신문인 쥐트도이체 차이퉁(Sueddeutsche Zeitung)신문의 6일자 기사를 인용해 당시 김정일이 특사로 파견했다는 김복덕이 김정일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 서신 내용을 전했습니다. 양성원 기자와 알아봅니다.
연합뉴스가 번역한 쥐트도이체 차이퉁 기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해 주시죠.
양성원 기자: 김정일 특사 김복덕이 김정일에게 보냈다는 보고서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면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베를린에 도착한 후 사흘 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아직도 혼란스런 것이 많지만 수집한 정보와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만약 독일에서와 비슷한 상황이 분단된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질 경우, 경애하는 지도자의 지혜로운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독일에 오기 전에 동독에서 접촉할 인사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았지만 모든 것이 바뀌어 아무도 만나볼 수 없었다. 주민 말에 따르면 공산당은 무너졌고 지도자는 체포됐다.
동베를린 거리에 있다는 지도자들의 동상이나 구호판은 찾아볼 수 없다.
동독의 정무원과 궁전은 폐허가 됐고 정치 지도자는 없는 상황이다.
동독이 보호막을 개방한 이후 즉각 제국주의자들의 공격에 붕괴된 것이 분명하다. 노동자 계급 정당은 실권했고 지도자는 죽었고 미망인은 칠레로 망명해 그의 유골단지를 지키고 있다. (여기서 지도자는 1971년부터 89년 동독이 무너질 때까지 통치했던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 사회주의통일당 서기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동독 정보부는 해산됐고 자료들은 서독의 보관청이 갖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은 반혁명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공략하면서 동독인들을 가리켜 ‘불평만 하는 동독놈들’ 이라고 비웃고 있다. 불안해진 동독인들은 자신들의 집에 머물며 옛 동독의 영화를 동경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동독의 경제는 가동이 중단됐고 국가는 생활필수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고 배급망은 완전히 붕괴됐다.
이 같은 상황은 북한도 국경을 남쪽에 개방하는 전략을 채택할 경우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연합뉴스는 이 기사에서 김복덕이 보냈다는 이 보고서의 의미는 당시 동독이 붕괴하고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합하는 상황에서, 남북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북한 지도부가 우려한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가 아니겠느냐고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양: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뉴스는 김복덕이란 특사가 보냈다는 이 보고서가 실제 있었던 것인지 의심이 가는 점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어, 김복덕의 보고서에서 동독 지도자였던 호네커의 미망인이 남편의 납골단지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었다는 것은 이 보고서가 호네커 부부가 칠레에 망명한 시기, 적어도 1994년 6월 이후에 작성됐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인데, 그렇다면 1990년 동서독 통일이후 4년이 지난 뒤에야 독일 통일 정황을 살피게 하기 위해 김정일이 특사를 보냈겠느냐는 지적입니다.
이때쯤이면 동독의 붕괴와 동서독 통일 이후의 상황은 이미 자세히 보도된 시점이란 것이죠. 또 특사 김복덕이 보고한 내용은 당시 언론보도 내용보다 더 자세하거나 새로울 것이 없다는 점도 의심 가는 대목으로 지적됐습니다.
여하튼, 이 보고서 내용을 처음 보도한 쥐트도이체 차이? 신문은 편집자 설명에서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동독정권이 무너지고 서독으로 흡수통일 된 것을 보면서 두려워했을 것이고 정확한 상황 파악과 그 대책을 마련하려고 했음이 틀림없다’며 김정일의 특사파견 목적을 나름대로 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이 보도한 이 보고서는 김복덕이 김정일에게 보낸 8개의 보고서 가운데 첫 번째 것이고, 현재에는 유일하게 남아서 전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