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주택부족 심각...김정은, 아파트 건설에 ‘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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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한반도 톺아보기'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시간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박수영 기자입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

<기자>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0주년 생일을 맞아 김정은 총비서와 김여정 당 부부장이 평양에서 631km나 떨어진 삼지연에서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앞서 김 총비서는 건설 부문 간부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삼지연이 김 위원장에게 드리는 '충성의 선물'이라고 강조한 바 있는데요. 김정은 총비서가 이처럼 삼지연을 부각시키는 이유는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삼지연시 개발은 김정은 정권의 최우선 사업 중 하나였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최측근 중 한 사람인 최룡해 당시 군 총정치국장을 삼지연 개발의 총책임자로서 임명한 바 있습니다. 삼지연은 북중 국경에 있는 백두산과 가깝고,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백두산 밀영과도 가까이 있습니다. 백두산은 중국인 관광객도 많이 방문하고 있는 유명한 관광 도시이기도 합니다. 북한은 삼지연시 개발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김정은 총비서의 충성심을 강조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외화벌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부인 고용희 (후처 중 한 명이자 김정은, 김여정의 모친) 씨를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고 여러 여성과 관계를 갖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총비서와 아버지 김정일 사이에서 갈등 관계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김정은 총비서의 권력의 근거는 백두산 혈통밖에 없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주의를 강조하면서 아버지를 존중하는 태도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을 부각하기 위해 삼지연시에서 기념 대회를 여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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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5일 삼지연시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동상) 탄생 80주년 기념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총비서의 모습을 조선중앙통신(KCNA)이 16일 공개했다. /AFP (STR/AFP)

<기자>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일성 주석 70주년 생일에 맞춰주체사상탑 등 여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 건축물과 비교하면 현재는 어떤 점이 달라졌습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70년대 초 후계자로 내정된 다음 1989년에 열린 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지명받았습니다. 그 때까지는 후계자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힘을 집중했던 사업 중 하나가 김일성 주석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대규모 건축 사업이었습니다. 1970년대 왕재산부터 개성까지 여러 곳에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기념탑이나 기념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건설 운동의 마무리는 1982년 김일성 주석 70주년 생일에 했던 대기념비적인 건설 운동이었습니다. 그때 평양에 인민대학습당이나 주체사상탑, 개선문과 같은 거대한 건축물이 많이 건설됐습니다. 이러한 건축물은 단순한 기념비라 생산성이 없었기 때문에 북한 경제에 큰 부담이 됐다고 합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단순한 기념비를 만드는 게 아니고, 외화벌이를 할 수 있는 관광 도시를 개발한다거나 하면서 아버지의 사업과 차별화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김정은 총비서가 '건설부문일꾼대강습회'에 보낸 편지에서 삼지연시 개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 80주년에 바치는 충성의 선물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번 달부터 시작한, 평양시에 새로 짓는 1만 세대 건설 착공식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주 입었던 이른바 장군 점퍼와 비슷한 옷차림과 선글라스를 끼고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만 세대의 건설도 김정은 총비서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1만 세대 주택은 집이니까, 기념비 같은 단순한 정치적인 건축물이 아니고 인민들을 위한 건물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목적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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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총비서가 평양 화성지구 1만세대 주택 건설 착공식에 참석하고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주입던 스타일의 점퍼와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Reuters (STR/AFP)

<기자>북한의 전반적인 기념물 건설 목적과 건설 작업의 특징도 간단히 짚어주시죠.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은 1950년대 한국전쟁 때 많이 파괴됐습니다. 당시에는 소련이나 동유럽 국가들이 북한의 도시 건설을 많이 도와줬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남아있는 평양시의 오래된 아파트 중에는 소련과 협력해 건설한 소련식 아파트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나라를 초기에 회복하기 위해서 속도전과 천리마운동을 많이 꾀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도한 기념물 건설 운동도 이처럼 주민을 대량 동원하는 방식의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평양에서는 겨울 새벽에 건설 현장에서 모닥불을 피우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고 합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 평양은 겨울철 밤에 영하 20도 정도까지 기온이 떨어집니다. 물과 시멘트, 모래, 자갈을 섞어서 콘크리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때 물이 자주 얼었다고 합니다. 이를 피하려고 모닥불을 피웠다고 하지만, 콘크리트 강도에 문제가 생겨서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양에 남아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 가보면 계단 하나당 높이에 차이가 크게 난다고 합니다. 이는 건설의 속도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하루에 계단을 몇 단 만들어야 하는 기준으로 생긴 결과라고 합니다. 특히 기념물의 경우에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나 노동당 창당 기념일까지 건설해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이 중요시됐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기자>북한은 평양시에 해마다 1만 가구씩, 2025년에 5만 가구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는데요. 지난 12일에는 두 번째 1만 세대 건설 착공식이 진행됐습니다. 경제난과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김 총비서가 5만 가구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뭔가요?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은 과거 정치적인 건축물 건설이 최우선시됐습니다. 이는 경제적 파급 효과를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평양에 있는 류경호텔은 높이 약 320m 15층짜리인데 1987년에 공사를 시작했다가 자금이 없어서 외벽 공사만 끝내고 1992년에 공사가 한 번 중단됐습니다. 2012년 김일성 주석 생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2008년부터 공사를 다시 시작해서 외장 공사를 끝냈다고 했지만 2016년도에 재단장 공사도 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된 바 있습니다. 북한이 중요시했던 정치적인 건축물도 완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시민들을 위한 아파트 건축은 거의 진전되지 않아 심각한 아파트 부족 상태가 돼버렸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방 두 개, 식당, 부엌이 있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반드시 두 세대가 같이 동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에는 공동 화장실이 층마다 한 개씩만 있기 때문에 아침 출근 시간대에는 화장실을 가기 위한 사람들로 줄이 길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김정은 총비서를 지지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가지고 있는 고위층에서도 정치적으로 안 좋은 여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 총비서가 평양에 아파트 건축을 서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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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at ground-breaking ceremony of construction of flats in Hwasong area 김정은 총비서가 평양 화성지구 1만세대 주택 건설 착공식에 참석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KCNA)이 2022년 2월 13일 보도했다. /Reuters (KCNA/via REUTERS)

<기자>최근 열린 '건설부문일꾼대강습'에서 김 총비서는 북한 건설 작업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마감재의 높은 수입 의존도와 건설 작업의 기계화 비중이 작다는 점을 꼽았는데, 북한이 이런 문제점을 신속히 개선할 수 있을까요?

마키노 요시히로 :김정은 총비서는 북한 건설 사업에 대해서 "기계화 비중이 작다, 노동력 대량 동원에만 매달리고 있다, 정치적인 마감 시간만 생각하면서 건설계획을 지키지 않는다"며 북한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솔직하게 지적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지적한 것 자체는 높이 평가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처럼 단순히 정치적인 기념비만을 만들지 않고 실제로 생산성이 있는 관광 시설이나 주택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보기엔 현시점에서도 북한이 실력에 맞지 않는 사업을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총비서는 삼지연시를 근대적인 도시로 만들고 싶어 친환경 에너지를 중요시해 정화시설 설치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삼지연시는 겨울에 영하 30도 정도까지 떨어지고 산간지에 있는 수력 발전소도 동결되기 때문에 특히 겨울철에는 심각한 전력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밑에 있는 사람들은 세대마다 난로나 석탄, 땔감을 쓸 수 있는 난방 시설 중 한 가지는 설치해야 한다고 호소해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년 업적을 강조하기 위한 기록영화에서 평양시에 건설하고 있는 새로운 주택의 모형실을 김정은 총비서가 방문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는 고급 소파가 있는 등 고급 호텔 같은 방이었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제품을 5만 세대에 다 공급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본인이 지적한 문제점과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것 사이에 있는 모순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기자>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