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반도 톺아보기'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시간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북한 선수가 보인 비신사적 행동 … 당 방침에 따른 결과
<기자> 2023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지난 8일 폐막했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일부 북한 선수단의 과격한 행동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렸습니다. 북한 대표단 선수들이 이렇게 거친 행동을 보인 이유를 뭐라고 보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네. 이번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에서 일본과 대결한 북한 대표팀이 옐로우카드(경고) 6장을 받았습니다. 북한 선수들에게 음료수를 제공한 일본 대표팀 관계자에게도 강압적이거나 무례한 행동을 취했습니다. 사격 경기와 여자축구 경기에서는 한국과 일본 국기 게양을 무시하는 행동도 취했는데요. 다른 나라와 경기에서는 특별히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들에 대한 비난이 집중됐지만, 그 배경에는 정치적인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한국, 미국, 일본 등 세 나라에 대한 비난을 되풀이하고 있고, 조선중앙통신은 여자축구 8강전에서 맞붙었던 한국 대표팀을 ‘괴뢰팀’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을 적대시하는 북한 외교방침에 맞춰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선수들도 한일 양국에 대해 호전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적대시하는 나라들에 야만스러운 행동을 취한 것은 스포츠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 특히 외교에서도 과거 남북 협의에서 고사성어를 사용했던 한국 대표에게 당시 북한 대표였던 김영철 씨가 "중국 사람 같다"며 비난한 사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2018년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당시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이런 주장은 안 할 것 같다"며 "당장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라"며 휴대폰을 폼페이오 장관에게 던졌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예의 없는 행동은 북한 사람들이 계속 해왔던 일이고요. 아시안게임에서 선수들이 한 비신사적 행동은 개인적인 행동이라기보다 북한이란 나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대회에 출전한 북한 선수단들이 상부, 즉 북한 지도부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이란 말씀이신가요?
[마키노 요시히로] 한국의 고영환 통일부 장관 특별보좌관과 최근 얘기를 나눴는데요. 북한에서 해외로 나가는 외교단이나 스포츠 선수단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처 방침을 사전에 지시한다고 합니다. 북한 외교관이나 선수들이 가끔은 해외에서 한미일 갈등에 대한 여러 가지 기자단의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외교관이나 북한 선수들의 기분이 좋았다거나 얼마나 기자들이 열성적으로 취재했는지에 달린 사안이 아닙니다. 그건 다 북한 노동당이 미리 정해놓은 대처 방침에 따라 행동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번 대회의 여자축구 결승전에서 북한 선수들이 일본 국기의 게양을 무시했지만 , 경기 도중 남자축구처럼 거친 행위는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마 남자축구 8강전에서 북한 대표팀의 행동이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았고, 북한이 앞으로 올림픽이나 월드컵 예선에 출전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양이 대처방침을 수정했다고 생각하고요. 경기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 미국처럼 북한과 적대관계가 되고 있는 나라들과 접촉해야 할 경우에는 엄격한 대처 방침이 미리 결정돼 있다고 저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필요하게 대화를 하지 않는다거나 정보 교환을 안 하는 것은 물론, 사진 촬영도 같이 안 하는 등의 방침이 미리 결정돼 있다고 합니다.
또 외교관이나 선수단에는 반드시 당 비서나 국가보위성 보위원들이 같이 동행하면서 감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 보위원들은 신문 기자 또는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한다고 하는데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북한 대표단이 200명 정도의 규모였기 때문에 아마 보위원 5명 정도가 동행한 것 같다는 게 고영환 특별보좌관의 설명입니다. 혹시나 이러한 대처 방침을 위반했을 때에는 나중에 정치적 비난 대상이 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북 "경기는 이기는 것에 의미가 있다"
<기자> 원래 북한에서 운동 선수들의 위상과 이들에 대한 대우는 어떻습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에서 운동 선수는 조금 특이한 입장입니다. 북한은 원래 선택과 집중을 많이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자원과 예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폭 넓게 예산을 쓰지 못하고,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분야에만 투자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스포츠에 대한 북한 당국의 발상도 똑같다고 생각하는데요. 북한에 있는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후원한다는 발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전국에 있는 거의 모든 초등학교가 수영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고등학생의 대부분은 어떤 운동부에 소속돼 있고요. 일본 고등학교 대상 전국 야구대회에서는 3천 개 정도의 학교가 참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이처럼 폭넓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예산이 없다는 말입니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선수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스포츠 분야를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 김일성 주석도 “올림픽은 참가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이기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북한은 이번 아시안게임에 200명 정도의 선수단을 파견해 11개의 금메달을 포함해 총 39개의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선수단 규모에 비하면 꽤 효율적으로 메달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역으로 보면 이길 수 있는 경기에만 선수들을 파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국제대회에서 승리한 선수들이 큰 혜택을 기대하는 나라입니다. 1999년 8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했던 정성욱 선수는 30만 명의 평양 시민들이 마중을 나갔고, 727 번호판을 단 벤츠 차량과 고가의 선물을 받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출전했던 북한 선수들도 고급 아파트를 선물로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도 스포츠에 큰 관심이 있다고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말씀하신 대로 김정은 총비서는 원래 스포츠에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스위스에서 유학했을 때에도 농구나 수영, 스키에 많이 열중했다고 합니다. 축구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고, 2010년에 열렸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현지 대표단한테 직접 지시도 했다고 합니다. 또 2013년에는 평양국제축구학교도 개설했고요. 2017년 경에는 전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하나씩 선물로 보낼 것을 지시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다만 그것은 서방 국가들로부터 존중을 받고 싶은 김 총비서의 욕심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 김 총비서는 서방 국가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새해 기자회견에서 녹화방송을 취소하고, 자신이 집무실에서 기자회견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방송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서방국가 관계자들이 했던 연출을 거의 똑같이 따라한 결과라고 볼 수 있고요. 얼마 전 신형잠수함 진수식에서는 서양식의 기념식도 진행했습니다. 서방 국가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축구에서도 북한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김 총비서의 머릿속에 수많은 국민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이 보인 행동들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어려운 북한 내부 상황에 따른 ‘조급함’을 방증하는 것 같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마키노 요시히로] 네. 고영환 특별보좌관은 이번에 북한이 보인 비신사적인 행동은 어려운 북한 내부 사정의 결과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은 아시다시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자연재해, 신종 코로나비루스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 총비서는 경제가 계속 나빠지는 상황에 따른 민심 악화나 외부에서 유입되는 정보에 대한 경계심이 있기 때문에 내부 통제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 통제를 강화하면서 북한 사람들의 민심이 더 악화하는 악순환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적을 만들어 내고, 민심을 단결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해 왔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이나 한국에 대해 매우 과격하고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던 배경에는 이러한 노림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북한 선수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북한 선수들도 결국, 김정은 총비서가 하고 있는 독재정치의 희생자라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 앞으로 이같은 비신사적 행동의 재발을 방지하는 효과를 발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