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드’로 장마당 통제… “한류 확산 꿈도 못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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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의 보릿고개 상황이 더 악화하는 가운데 북한 당국이 식량, 생활용품의 거래와 유통을 엄격히 단속하면서 직접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고 일본의 언론매체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가 밝혔습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특히 북한이 국가유통망을 복원하면서 바코드, 즉 상품관리를 위한 막대 코드가 없는 물건은 시장에서 판매조차 할 수 없고, 비사회의주의란 명목으로 사람을 고용하거나 개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도 단속 대상이 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높은 수위의 처벌을 앞세워 한국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을 강력히 단속하는 가운데 “이제 북한에서 한류의 유입과 확산은 당분간 상상하기 어렵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워싱턴 DC를 방문한 이시마루 대표와 대담했습니다.

“양곡판매소 쌀도 바닥나… 구걸하는 도시 주민 증가”

[기자] 이시마루 지로 대표님. 오늘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에 워싱턴을 방문하셔서 북한 전문가와 의회 관계자 등을 만나서 북한의 현 상황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대표님께서 특별히 강조하신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

[이시마루 지로] 북한이 3년 이상 코로나 봉쇄 정책을 펼치면서 북한 내부 정보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북한 내부에 대한 관심도 많이 떨어졌는데, 이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이 떨어진 사이에 북한 내부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통제 강화이고, 두 번째가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경제적 곤란, 그리고 기아와 인도적 위기의 발생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없다는 이유로 보도도 잘 안되고, 미국, 일본, 한국의 정부 관계자들도 북한에 대해 언급할 기회가 많이 줄었지만, 지금 북한은 올해 들어 심각한 위기이고, 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기자] 지난 4월에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아시아프레스'와 함께 북한의 보릿고개 상황을 짚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당시 심각했던 내부 상황을 전한 적이 있는데, 두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 대표님의 주장인데, 얼마나 심각한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북한에서 보릿고개가 매년 반복되지 않습니까. 전년도에 수확한 식량을 다 소비해서 농촌과 도시에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장에서는 값이 오르고 ,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보유한 식량이 바닥나 먹을 것 자체가 없어지는 현상이 매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렇게 단순한 상황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누가, 왜 굶고 있는가'를 좁은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누가, 왜 어려움에 빠졌는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농촌보다는 지방 도시의 주민들입니다. '아시아프레스'에서 조사한 함경북도와 양강도, 평안북도에서는 전반적으로 도시 주민의 현금 수입이 크게 떨어진 데다 구매할 수 있는 식량 자체가 많이 줄었습니다. 여기에도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국가가 시장을 통한 식량 유통을 많이 축소하고 국영 양곡판매소에서 구매하라는 식으로 매우 강하게 개입하고 유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국영 양곡판매소의 식량 자체가 많이 모자라게 됐어요. 그래서 판매량 자체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니까 쌀을 구매하고 싶어도 쌀이 없다는 거죠.


또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면서 북한 당국이 “직장에 무조건 출근하라. 출근하면 배급을 어느 정도 준다”는 식으로 출근을 강요하면서 지난 2~3년간 무리하게 기업소에서 배급을 줬습니다. 그것도 충분한 양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못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곡판매소와 기업소에서 주는 배급이 모자란다는 것은 국가가 보유한 식량 자체가 바닥이 난 상황이죠. 바로 이것이 지금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릿고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도시 주민의 타격이 매우 큽니다.

[기자] 그렇다면 지금도 보릿고개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숨지는 사람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나요?

[이시마루 지로] 4월 하순부터 그런 정보가 많아졌습니다. 지금 북중 국경지대에 사는 '아시아프레스'의 취재 협조자들이 한결같이 비슷한 소식을 전해옵니다. "자기가 사는 인민반에서 누가 죽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이가 많은 부모나 자식을 집에 두고 외출했는데,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부모나 자식이 숨지거나, 아니면 길거리로 나가 꽃제비 생활을 하는 상황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시 주민이 농촌에 가서 구걸하는 현상에 대한 보고도 많습니다. 한 농촌 지역에 우리 취재협조자의 친척이 있는데요. 현지 상황을 물어보니까 "5월 중순 이후부터 하루에 4~5명의 도시 주민이 자기 집으로 구걸하러 오는 일이 많다"고 하고요. 지금 농촌에서 식량을 그냥 달라고 하면 누가 주겠습니까. 그걸 잘 아는 도시 주민들이 "일감을 달라", "일을 해 줄 테니까 한 끼라도 먹여 달라"는 식으로 애원하는 사례가 이전보다 많아졌다고 합니다. 사망자의 경우도 도시 주민 중에서 노인 세대나 병약자, 과부 등 사회적으로 취약 계층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도 2021년도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숫자가 올해 보릿고개 시기가 되면서 많이 늘어났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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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의뢰를 받아 일본 ‘아시아프레스’가 북한 내부 취재협조자와 주고받은 문자를 재구성한 내용. / RFA graphic

상품 거래와 유통 장악 시도 … "바코드 없는 물건은 시장 거래 안 돼"

[기자] 특히 북한 시장에서 장사가 잘 안되는 것도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팔 물건이 없고, 현금수입의 감소에 따른 구매력 저하도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만, 북한 당국의 단속도 큰 원인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 북한 시장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시마루 지로]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난 3~4년간 김정은 정권의 시장 정책, 상업 정책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봅니다. 이전에는 북한이 장사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시장이라는 공간을 국가가 관리했는데, 지금은 시장 자체를 축소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유통망을 복구해서 상품 거래와 유통의 주도권을 되찾아 오자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 시장에서 팔면 안 되는 물건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식량입니다. 지금 쌀과 옥수수는 원칙적으로 시장에서 판매가 금지됐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확인한 함경북도, 양강도, 평안북도의 시장에서는 올해 1월부터 완전히 금지됐어요. 그러니까 국영 양곡판매소에서 사라는 방식이고요. 그다음에 국산 의료품, 또는 치약이나 비누, 칫솔, 신발 등도 무역이 중단되면서 중국산 물건이 많이 줄지 않았습니까. 그 대신 사람들이 국영상점에 가서 국산품을 구매하라는 식으로 지난 2~3년간 유도해 왔습니다.

또 이전 같으면 국영 공장에서 만든 국산품이 여러 경로를 통해 시장으로 유입돼 거래되지 않았습니까 . 그런데 지금은 국가가 엄격하게 개입하면서 시장에서 못 팔게 합니다. 지금 국산품에 바코드(상품관리를 위한 막대 코드)를 붙이는데요. 바코드가 없는 국산품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유통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바코드가 있는 국산품은 시장에서 팔 수 있는데, 이는 생산 공장에서 직접 유입된 것이 아니라 국가 유통망을 통해 시장에 도매가 된 겁니다. 그러니까 도매 장사꾼들의 돈벌이가 잘 안되는 겁니다. 국가 유통망을 한 번 거쳐서 들여와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국가가 상품의 유통을 장악하고, 국가 상업관리망을 다시 조직하는 방향으로 강하게 추진해 온 결과, 사람들의 장사가 잘 안되고, 수입도 감소하고, 구매력도 떨어지면서 물건과 돈의 유통이 막히는 악순환이 생겼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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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개성시 골목길에서 과일과 채소 등을 파는 북한 주민들. / AP

[기자] 개인적으로 사람을 고용하거나 물건을 날라주며 먹고살았던 사람들도 단속 대상이 된다고 하던데요. 비사회주의 현상이라는 이유 때문인가요?

[이시마루 지로] 이 비사회주의 현상이라고 해서 개인이 개인을 고용하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개념이죠 . 이전에는 집에서 주변 사람을 불러 임금을 주고 빵이나 떡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판다든지, 아니면 직접 장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두 명 이상 고용해서 판매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짐꾼들이 리어카를 이용해 짐을 날라주는 개인 서비스도 자유롭게 했고, 어떤 사람이 리어카 2~3대를 가지고 일꾼을 쓰면서 운영하는 것도 고용 형태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도 금지됐다고 합니다. 개인이 사람을 고용하면 안 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노동의 기회를 상실했고요. 그만큼 현금 수입도 떨어지고, 구매력도 떨어졌기 때문에 시장에서 돈과 물건의 유통이 잘 안되는 악순환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젠 무서워서 한국 드라마, 노래 동영상 안 봐”

[기자]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보도했습니다만, 양강도 혜산시에서 메모리카드(소형기억장치)를 몰래 팔던 장사꾼들이 잇달아 당국에 체포됐다고 하는데요. 대표님께서도 “이제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나 영화, 노래가 확산하기는 쉽지 않다”, “이제 한류의 유행은 어렵다”고 분석하셨습니다.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이시마루 지로] 예를 들어 '평양문화어보호법'이 있지 않습니까. '평양문화어보호법'은 "괴뢰말씨를 본따지 말라"든가 "괴뢰말로 쓴 책이나 동영상 같은 것을 유통하지 말라"든가, 그리고 최악의 경우 "사형에 처한다"라는 엄벌주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법을 만들고 이를 위반한 사람들은 간부든, 부유층 자식이든, 일반 주민이든 관계없이 무자비하게 집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간부 자식들이나 당원, 돈주들의 자식들도 잡아가고, 미성년자도 용서 없이 단련대나 교화소에 보내는 등 엄벌에 처합니다. 우리 취재협조자들에 따르면 "지금 한국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물론 은밀하게 보는 사람이 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를 유통하려면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그만큼 이익이 있냐는 것도 생각해야죠. 그러니까 지금 너무 위험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걸 보려 하지도 않고, 팔려고도 안 하는 경향이 굉장히 커졌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한국 드라마나 여러 동영상 등 한류 문화와 정보가 들어가는 것은 당분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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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연변의 한 가게에서 한국 드라마 DVD를 판매하고 있다. / AP

[기자] 혹시 ‘아시아프레스’ 취재 협조자분들도 이전에는 한국 드라마나 동영상 등을 많이 봤나요? 지금은 전혀 보지 못하겠군요.

[이시마루 지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드라마들이 있지 않습니까 . 예를 들어 '사랑의 불시착'이라든지 '오징어 게임'이나 한국의 여러 가수가 나오는 동영상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코로나 이전에는 우리 취재 협조자들도 "몰래 봤다", "중학생 딸이나 아들들이 한류 스타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선호하고 잘 보고 있다, 연습까지 한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무서워서 오히려 자녀들이 "아빠, 엄마 보지 말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지금 공포가 지배하는 분위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표님께서 이번 미국 방문에서 북한 내부 상황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고, 앞으로 계속 북한 상황을 취재하실 텐데, 최근 당 8차 전원회의 상반기 평가 내용을 보면 특별히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7월부터는 하반기가 시작되는데, 대표님께서 특별히 관심 있게 지켜보시거나 우려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시마루 지로] 역시 걱정되는 것은 인도주의 위기입니다 . 지금 지방 도시에서는 기아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1990년대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영양 부족으로 목숨을 잃는 사태가 아주 광범위한 지역에서 생기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지금 북한을 볼 때 최우선으로 걱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보는데, 6월 중순이 되면서 햇감자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장에서도 판매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배급도 준다고 합니다만, 감자가 나오면서 상황이 회복되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죠. 더 심각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제사회가 계속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기아 문제라고 봅니다. 여기에서 혹시 태풍이나 수해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올해 가을 이후도 식량 위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년에도 위기가 지속될 수 있고요. 이에 대해 국제사회가 관심을 둬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제가 제일 우려하는 부분입니다.

[기자] 네. 이시마루 지로 대표님, 말씀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일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로부터 현재 북한 상황에 관해 짚어봤습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