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어온 이야기] ② 나뭇잎에 아로새긴 탈북민 작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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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탈북과 인신매매, 그리고 강제 북송 도중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등 온갖 고난의 길을 걸은 끝에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작가 심수진 씨. 하지만 그가 한국에서 맞닥뜨린 것은 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시한부 선고였습니다.

오랜 투병 생활에서 시골길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에 동질감을 느낀 그는, 낙엽에 소원을 담아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한국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진행 중인 ‘선을 넘어온 이야기’에 전시된 심 작가의 나뭇잎 작품과 그 안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천소람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죽어가는 나뭇잎이 꼭 저 같더라고요”

[심수진] 나뭇잎 100개를 파기로 작정하고 시작했어요. 소원을 빌었죠. 근데 그 소원이 이뤄졌어요. 간이식을 했고, 지금 새 생명으로 다시 살고 있잖아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낙엽은 저에게 ‘간절함’이었어요. 근데 전달이 됐나 봐요. 죽어가는 낙엽에 내가 새로운 걸 부여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거잖아요. 얘도 나에게 보답을 해줬다는 느낌이 들어요. 소원이 이루어진 거니까.

한국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진행 중인 기획전시 ‘선을 넘어온 이야기’.

그 전시의 끝에는 탈북민 심수진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작품의 이름은 ‘보물찾기’.

커다란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나뭇잎을 섬세하게 오려낸 이 작품은 울창한 숲을 묘사했는데, 작품 속에는 5마리의 동물과 곤충이 숨어 있고, 관람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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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 통일전망대 ‘선을 넘어온 이야기’에 전시된 심수진 작가의 작품 ‘보물찾기’ / 심수진 작가 제공

1978년 북한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심수진 작가는 18살이었던 1997년 중국으로 탈북했습니다.

이후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돼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과 결혼했지만, 22살의 나이에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심수진] 식당에서 일하다가 22살 때 공안이 온 거예요. 식당 앞에 공안 경찰서가 있는데, 그 식당 주인이 경찰을 끼고 일해서 걱정을 안 했어요. 근데 주변에서 나를 신고한 거예요. 신고하고 돈을 받은 거죠. 경찰 3명이 왔는데, 신분증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경찰서에 가자고 해서 같이 갔어요. ‘북조선 사람 맞냐’고 물어봐서 ‘아니다. 나는 연길에서 온 조선족이다’라고 했죠…. 조사를 한 지 4일이 지나니까 족쇄를 채워서 오늘 저녁에 북송된다고 해요.

북한으로 향하는 열차 안.

[심수진] 장춘에서 연길까지 가는 급행차에 우리가 탔습니다. 같이 북송되던 언니와 같이 뛰자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경찰관 2명이 계속 교대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새벽 5시가 됐어요. 이제 ‘안 뛰면 안 된다’는 느낌이 왔어요. 중국에서 4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열차를 타니까 멀미에 구토까지 하더라고요. 내가 얼굴이 창백해지니까 족쇄를 풀더라고요. 신이 도운 거예요.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해야 하니까. 6시가 되니까 사람들 1~2명이 슬슬 일어나서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식당에서 일하다가 잡혀서 북한에 간다. 북한에 가면 무조건 총살당할 거다’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부탁이 있다’고 말했어요.

심수진 작가는 그에게 도움을 준 작은 키의 승객을 잊을 수 없습니다.

‘창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하자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다 기차 바퀴 안에 들어가면 시체도 못 건진다’는 우려 섞인 경고가 돌아왔지만, 이미 마음을 정한 후였습니다.

[심수진] 나는 북한에 가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남자분에게 제가 신호를 보내면 창문 좀 열어달라고 그랬어요. 그분이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면 사람 형체도 없이 날아가 버린다’고 나에게 판단을 잘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여기서 안 뛰면 나는 못 살 거 같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알았다며 문을 열어주는데, 얘기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그냥 바깥으로 몸이 날아갔어요. 매달리고 있던 것만 기억이 나요. 제가 매달리고 있으니 사람들이 가득 창문에 다 몰려 있어요. ‘사람이 바깥에 매달려 있다’고. 그래서 경찰관은 난리가 났죠. 근데 어느 순간 발로 차고 열차에서 손을 놓았어요.

심 작가가 기억하는 북송 당일의 기억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느 지역에 떨어졌는지, 며칠이 지났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심수진] 그다음에 기억이 없습니다. 그다음 기억은 내가 누워 있는데, 하늘이 보였어요. 하늘이 엄청 파란데, 구름이 몇 개 있더라고요. 앉았는데 중국어가 보여서 한참 앉아서 생각했어요.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그는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고, 이후 중국과 라오스 등을 거쳐 2007년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심 씨는 한국에서 대학교에 진학해 꿈을 키워가던 중 졸업을 앞두고, 잦은 위궤양으로 응급실을 드나들었고, 끝내 시골에서 투병 생활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간경화까지 겹쳐 기나긴 투병 생활을 했지만, 경과가 좋지 않자 2020년에는 시한부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간이식이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기증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수소문해 봤지만, 연락이 닿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나눠 준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투병 생활 중 우연히 산책로에서 발견한 나뭇잎 하나.

[심수진] 병원을 다녀오며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데, 가로수길에 나무들이 있고 사람들이 지나가잖아요. ‘왜 나무들은 10년이 지나도 저렇게 변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을까. 나는 10년이 지나면 죽겠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치더라고요. ‘착하게 살았고, 그동안 고생했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줄까. 너무 공평하지 않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병원에 가도 ‘장기적으로 가면 손을 못 쓴다, 마음의 준비를 해라’ 이런 얘기를 하니까 나 혼자 그걸 감당하는 게 힘들잖아요.

그러다 문득, 중국에 있을 때 100개의 종이학을 접던 지인이 생각났습니다.

[심수진] 중국에 있을 때 민박하던 언니의 남편이 학 100마리를 접더라고요. ‘이걸 왜 접냐’고 물었더니 100개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그래서 ‘나도 한 번 나뭇잎 100개를 만들면서 소원을 빌어봐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기자] 100개를 정말 다 채우셨어요?

[심수진] 네. 100개를 했어요. 마지막 ‘보물찾기’ 그림이 메인(핵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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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 통일전망대 ‘선을 넘어온 이야기’에 전시된 심수진 작가의 ‘나뭇잎 컷아웃’ 시리즈 / RFA Photo

중국의 전지 공예와 닮은 그의 ‘나뭇잎 오려내기’ 작품에는 그와 닮은 낙엽에 자신의 이야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나뭇잎을 주워 그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세척과 말리기를 반복한 뒤 오려내기를 시작하는데, 작품 하나를 만들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리기도 하고, 100개의 나뭇잎을 완성하는 3년 동안 그가 사용한 칼날은 셀 수 없습니다.

작업이 가장 힘들었고, 시간도 오래 걸렸던 작품이 ‘보물찾기’라면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낙엽이 떨어지고’입니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자신의 인생과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심수진] 떨어지는 잎이 딱 나 같은 거예요. 어느 날 낙엽을 주으러 갔을 때 잎이 떨어지는데 그 낙엽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올해 수명을 다했구나.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얘네들은 그래도 봄이 되면 다시 피잖아요. 그러면서 또 위로했어요. 사람이 나무를 자르지 않는 이상 평생 살 수 있다고. 100년이고 200년이고. 그렇지만 나는 아니잖아요. 30대부터 (병) 진단을 받고 나니까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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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진 작가의 ‘나뭇잎 컷아웃’ 시리즈에 사용된 칼날들 / 심수진 작가 제공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선을 넘어온 이야기’ 전시에는 총 35개의 심 작가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용 그림이 가장 눈에 띕니다.

[기자] 작품에 용이 많은 것 같아요.

[심수진] 다른 동물들은 하늘을 날지 못하잖아요. 근데 용은 땅에서도 살고, 하늘에서도 살잖아요. 훅 날아서 북한에 잠깐 갔다가 오고….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어요. 제가 바다낚시를 좋아해요. 바다를 보면 ‘물고기들은 북한도 갈 수 있고, 러시아도 갈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특히 고래는 수명도 길고. 똑똑하고 전 세계를 다 갈 수 있잖아요. ‘나도 고래가 된다면, 수영을 잘한다면, 북한에 수영하러 가고 싶다. 그런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죠.

[기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심수진] 작년 전시회 때는 북한 지도와 남한 지도를 잘랐어요. 그리고 징검다리를 만들어서, 나중에 통일이 된다면 자유롭게 관광을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그렸습니다. 한 네덜란드 관광객이 그 그림을 여러 번 둘러보고 설명해달라는 거예요. 나는 북한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한국에 살고 있고, 작가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근데 나중에 통일이 되면 내가 이 사람처럼 징검다리가 돼서 자유롭게 왔다 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설명했어요.

[기자]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직 크게 남아 계신 것 같아요.

[심수진] 미움도 있고, 보고 싶기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만약 통일이 된다면 맛있는 거 갖다주고 싶고. 중국에 있을 때와 한국 초창기 때 안 입는 옷을 빨아서 어디다 보관해 놨어요. 중국에 있을 때 그렇게 모아서 보낸 적도 있어요. ‘이거 팔면 쌀이라도 바꿔 먹을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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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진 작가의 작품 /심수진 작가 제공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16일까지 한국 청주시 한국공예관에서는 심수진 작가의 개인전 ‘고난 후에 피는 꽃’이 진행 중입니다.

개인전에는 캔버스와 한지 위에 아크릴로 작업한 그림들이 전시되는데, 한지는 마치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심수진] 한지 작업을 좋아해요. 한지 작업은 갈라짐이 있는데, 우리는 갈라진 아픔이 있잖아요. 배경을 ‘갈라진 아픔’으로 정했어요. 한지를 가지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밑에서 다른 색이 올라와요.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데 모든 게 복합돼 표현이 되니까 너무 내 마음을 비춰주는 느낌인 거죠. 갈라진 아픔을. 우리도 보면 갈라진 아픔이 있잖아요. 근데 작품을 들여다볼수록 오묘한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우리도 들여다보면) 같은 사람이에요. 한민족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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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진 작가의 ‘고통속에서 피어난 생명력 2’ /심수진 작가 제공

그중 심 씨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 생명력 2’ 입니다.

파란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갈라짐을 표현한 배경 위로 꽃이 피어나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심수진] 나비가 들어간 그림은 나에게 희망이 와서 새 삶을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희망을 나비로 표현했어요. 어둠을 이겨내고 터널에서 나온 거죠.

탈북과 중국에서의 인신매매, 그리고 강제 북송의 위기와 오랜 투병 생활까지 겪은 심 씨에게 그림은 고향의 그리움이자 현실의 고통, 새 삶의 희망입니다.

[심수진] 그림을 보면 잎이 하늘에서 날잖아요. 흔들흔들 날면서 자연도 보고 공기도 마시고 그러잖아요. 우리도 좀 훨훨 날아가고 싶다. 사랑의 불시착처럼 우리도 나뭇잎을 타든, 낙하산을 타든 밤에 잠깐 가족을 보고 다시 오는 그런 상상을 해보곤 하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는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죽어가는 낙엽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새롭게 보이고,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 거잖아요. 낙엽이 새롭게 태어나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듯이 우리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