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가장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돈을 버는경제활동의 주체로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 민 김혜영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혜영 씨, 안녕하세요. 최근 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지난 8월 초, 양강도 혜산시의 골목 시장 풍경이 소개됐습니다. 혜영 씨는 장사하는 사람들, 물건을 거래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점을 느끼셨나요?
[김혜영] 저도 이 동영상이 소개한 북한 골목 시장의 풍경을 봤는데요. 길거리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바구니에 채소를 담아 팔거나 옷, 빗자루와 같은 생필품을 판매하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아마 혜산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더 많은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첫인상은 골목시장이 이전보다 활기차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단 거래하는 물건의 종류나 양이 많지 않아 보였고요. 채소가 주를 이뤘는데, 대부분 자기 집에서 재배한 것을 팔러 나온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 국면에 북중 국경이 봉쇄됐어도 나름 시장 경제는 돌아가는 것 같지만, 수입품보다는 국산품 중심으로 판매하는 것 같습니다.
- 말씀하신 대로 북중 국경 봉쇄와 시장 단속 등에도 길거리 장마당은 여전히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 하지만 눈에 띄는 품목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들은 어떻게 유통되는 걸까요?
[김혜영] 제가 볼 때 중국산 제품보다는 북한 내에서 생산되는 것들이 많이 거래되는 것 같습니다. 주로 주민들이 직접 재배하거나 집에서 만든 것을 가지고 나와 파는 거죠. 시장 거래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공식 시장 안을 살펴봐야겠지만, 일단 골목시장만 보면 거래 품목이나 양 등이 점점 빈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 골목에 나와 장사하는 사람들은 넉넉한 형편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날 벌어 그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렇다 보니 이들의 파는 품목도 빈약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 국면과 북중 국경의 봉쇄에 따른 중국산 부족분을 국내산으로 대체하려 하지만,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 또 시장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대기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 일거리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김혜영] 네. 저도 그렇게 느꼈는데요. 리어카를 세워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실어 나를 만한 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손님도 없고요. 이것은 시장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시장 활동이 위축되고 물건의 유통량이 적으면 거래도 이전처럼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일거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공식 시장도 원활하게 운영되지 않는 데다 무역이나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운송이나 배달 관련 종사자들의 현금 수입도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요. 많은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거리가 없어진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는 연쇄적인 북한의 경기침체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북중 간 화물열차나 트럭 등이 운행을 재개하면 중국산 물건이 북한에 다시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각 지방 무역회사들도 분주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각 지방에도 숨통이 트일 텐데요. 각 지방 무역회사들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김혜영] 지방에 있는 무역회사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합니다. 평양에 본사를 두고, 각 지방에 나가 있는 지사를 지방의 무역회사라고 보면 됩니다. 중국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평안북도 신의주나 양강도 혜산, 함경북도 무산과 회령, 그리고 라선시 등에 무역 회사가 많은데, 중국과 합리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역할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단둥과 신의주 사이에만 열차가 오가고, 다른 지방은 공식적인 무역 재개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점점 확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한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단둥과 신의주 사이 화물열차나 트럭 운행이 재개되면 중국산 물품이 우선 평양으로 보내질 테고, 각 무역회사는 평양에서 자기 지역으로 물건을 가져가 이를 유통하는 역할도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각 지방의 상황도 나아지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코로나 극복을 선언하고 , 정상적인 방역 대책으로 선회했습니다. 코로나 정책에 변화가 생기면 북한 경제활동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김혜영] 글쎄요. 당장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방역 대책의 변화만으로는 당장 경제활동에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은데요. 기본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북중 국경이 열려 중국 물건을 들여와야 거래도 활발해지고, 조금씩 경제효과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전까지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또 북중 국경지방은 방역 정책이 완화되지도 않았고요. 여전히 활동에 제약이 많은 고강도라고 합니다. 제가 볼 때 북한이 코로나로부터 승리를 선언했지만, 아직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닙니다. 엊그제 제 고향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저와 연락한 사람의 70대 친척이 코로나로 숨졌다는 겁니다. 또 지방에는 발열자가 생겨도 약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코로나로부터 완전히 승리했다는 당국의 선언도, 정상적인 방역 대책으로 전환한다는 것도 북한 주민들이 체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 마지막으로 그동안 코로나와 북중 국경 봉쇄 , 최근 수해 등으로 북한의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는데요. 민심도 좋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코로나 극복 선언을 통해 경제 성과를 내려는 것도 민심을 의식한 행보일 것 같은데요. 최근 들으신 북한 민심에 대해서도 전해주시겠어요?
[김혜영] 며칠 전 저와 연락이 닿은 북한 주민은 일본에서 온 귀국자 자녀입니다. 그런데 생활이 너무 어려우니까 저에게 연락해 일본에 소식을 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요. 제가 믿을 수 없다고 하니 사진을 보냈는데, 얼굴을 백골처럼 야위고, 얼굴색도 까맣게 변해서 제가 옛날에 보았던 그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북한에 여전히 코로나가 있고, 코로나보다 먹지 못해 죽는 사람이 더 많다며 전화 통화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 모습만 보더라도 일반 북한 주민의 상황과 민심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북한의 민심은 국가로부터 오래전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 네 . 오늘은 '북한 길거리 시장을 통해 본 경제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지금까지 북한 무역일꾼 출신 탈북민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김혜영 씨, 오늘도 고맙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