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3년 넘게 이어지는 국경봉쇄와 시장 통제, 보릿고개 등으로 북한 주민의 생활고가 악화하는 가운데 한국 내 탈북민 사회도 최근 북한으로부터 부고 소식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지난해부터 잇따라 들려오는 가족과 지인의 부고 소식으로 탈북민 사회의 분위기가 무거운 가운데, 일부 브로커들은 이 상황을 악용해 ‘송금 사기’를 일삼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RFA 긴급진단, 북한 보릿고개]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잇따른 부고 소식으로 우울한 탈북민 사회를 천소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사망 후 한참 뒤 알게 된 경우도 많아”
탈북민 박소연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는 지난 4월 초, 북한에 계신 가족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북중 국경이 봉쇄되고, 장사도 여의치 않아 생활이 어렵다는 집안 사정은 알고 있었지만, 단속이 심해 자주 연락하지 못했고, 송금도 쉽지 않아 애만 태우던 중 접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박 씨는 주변 친구와 지인들의 위로 속에 마음을 추스리고 있지만, 부고 소식의 충격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박 씨처럼 최근 북한의 가족과 지인의 부고 소식을 접한 탈북민은 적지 않습니다.
한국 ‘탈북자 동지회’의 서재평 회장도(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지난해 북한으로부터 많은 부고 소식을 접했다고 말했습니다. 본인이 연락하던 국경 지역의 브로커도 4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습니다.
[서재평] 부모가 한국에 와서 정착했는데, 북한에 있는 자녀들이 죽은 사례가 많아요. 그 자녀들은 40대 정도인데요. 한 인민반에서 사망자가 보통 2~3명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올겨울 사망자가 많았어요. 엄청 추웠잖아요. 올겨울에 땔감을 준비 못 한 사람들이 많아서 겨울 기간에 몸이 추우면 사람이 면역력이 떨어지고, 잘 먹지도 못 하면 약한 사람들은 취약하잖아요. 오죽하면 추위가 지겹다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만난 탈북민 출신의 지성호 한국 국회의원도 최근 연이어 들려오는 부고 소식으로 무거운 탈북민 사회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지성호] 최근 탈북민이 많이 힘들어하는 이유가 북에서 가족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달받게 되는 겁니다. 그게 환경상 (사망 소식을 바로) 아는 게 쉽지 않다 보니까 때로는 6개월, 1년이 지나서 (사망 소식을) 알게 됐을 때 무너지는 가슴이, 그 아픔이 더 큰 것도 사실입니다.
“생활고에 스스로 목숨 끊거나 양육 포기도”

북한에서는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11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들려온다고 밝혔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많지 않지만 여기저기서 보고가 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안 보이는 가정들이 당연히 있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가족과 마지막 식사를 하고 쥐약 같은 것을 먹고 자살하는 집들이 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듣고 (이에 관한) 보고가 옵니다. “오늘, 또는 어제 어느 동네에서 어느 가족이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또 생활이 너무 힘들다 보니 부모를 봉양하거나 아이를 양육하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이시마루 대표는 덧붙였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어려운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양육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래서 집에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꽃제비가 되면서 노숙 생활을 하고, 노인들도 집에서 먹이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에 대한 보고가 점점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대책이 없는 겁니다. 노력해서 돈 벌어서 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시마루 대표에 따르면 국경봉쇄와 시장 통제 등으로 일감 자체가 줄어 개인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워진 것이 큰 타격이 됐고, 먹고살기 위한 대책이 없어 가족을 포기하거나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이어진다는 겁니다.
이처럼 부고 소식과 어려운 북한 상황을 접하는 탈북민 중에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탈북민 김단금 씨는 (10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주변에서 북한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고 말했습니다.
[김단금] 탈북민의 심리상태를 봤을 때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다 보니 우울증 증상도 생기는 사람들이 옆에서 많이 보이긴 해요. 우리 가족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이나 브로커들을 통해 돈을 보내라고 하면서 “돈을 안 보냈으니까 가족이 굶어 죽지 않냐”고 말하는데, 그게 또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에….
특히 단속과 통제 강화로 전화 통화도 어렵고, 가족의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 들려오는 주변 탈북민 가족들의 부고 소식은 그들을 더 불안하게 만듭니다.
[김단금] ‘우리 가족도 어떻게 되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 집은 저렇게 됐다고 하는데, 북한이 지금 식량 사정이 너무 힘드니까 굶어 죽는 사람들도 많고, 부고 소식이 들리는데 우리 가족이라고 뾰족한 수는 없잖아요.
이를 악용한 브로커들 기승 … 송금 사기 빈번

코로나비루스의 확산과 함께 의약품과 식량 부족, 국경봉쇄, 이에 따른 경제난과 보릿고개까지.
탈북민 사회에서는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이 커져가는데, 이 상황을 악용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서재평 회장은 지적했습니다.
[서재평] 지금 국경 통제가 삼엄하니 타지방에서 국경으로 사람이 못 들어오잖아요. 그런데도 돈이 전달되니 돈을 보내라고 그러고 있어요. 나도 어제 또 전화를 받았어요. 우리 조카 이름 말하면서 돈 보내라고. 사람이 오지 못하고, 연결을 못하는데 내가 돈을 무한정 계속 보낼 수도 없고, 보낸 돈이 (제대로) 갔는지 안 갔는지 확인도 못 하잖아요.
국경봉쇄로 인해 그나마 통신이 터지는 국경지역이 아니면, 가족들과 직접적인 소통은 불가능한 상황.
김단금 씨도 북한 주민들이 생활고를 겪고,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상황을 심리적으로 이용해 브로커들이 악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단금] 제가 아는 언니도 계속 돈을 보낸다고 합니다. 목소리를 녹음해서 ‘돈 받았다, 안 받았다’라는 목소리 연결을 들려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쪽 상황을 알 수가 없잖아요. (정말) 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가족이 당장 굶어 죽게 되고 힘들다는 소리가 들리면, 부모나 형제들에게 보내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죠.
[서재평]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북한 혜령에 남동생이 있는데, 작년 4월에 본인이 직접 통화해서 “누나 좀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달 뒤 또 연락이 와서 다시 도와달라고 해서 “내가 저번에 도와줬잖아”라고 하니까 “간복수(간에 물이 차는 현상)가 왔다”고 하는 거예요. 누나가 “너 술도 안 먹는데 무슨 간복수냐,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고 끊었는데, 몇 달 후에 동생이 죽었다고 소식이 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 누나가 통곡하는 거죠. 동생 말이 사실이었는데.
브로커들의 송금 사기 피해가 속출하자, ‘탈북자동지회’는 홈페이지에 송금 주의 안내를 게재하기까지 했습니다.
안내문에 따르면 “최근 북한 가족에게 송금했던 탈북민의 송금 사기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며 “송금 브로커들은 최근 코로나 사태로 가족, 친척이 국경지역의 접근이 어려운 점을 이용해 여러 가지 사기 수법을 동원해 마치 돈이 가족에게 전달된 듯이 꾸며 송금인을 유혹하고 있다”고 주의를 줬습니다.
탈북자 동지회는 북중국경 봉쇄 직후인 2020년부터 현재까지 다수의 신고를 접했다며, 더는 방치할 수 없어 탈북민 사회에 알리고자 한다며 취지를 밝혔습니다.

북한의 식량난과 잇따른 부고 소식으로 우울한 탈북민 사회.
가족을 돕고 싶지만, 전화나 영상통화로 얼굴 또는 목소리를 확인할 수 없기에 돈을 보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가족에게 돈을 안 보낼 수도 없는,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탈북민들의 한숨은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서재평] 지금 (돈을) 보내기도 그렇고, 안 보내기도 참 그렇고. 브로커가 진짜로 연결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잖아요. 안 보냈는데 훗날 사망 소식이 알려오면 마음이 참 그렇죠.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 입니다.
기자 천소람,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