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보릿고개] ⑤ “일 년 내내 식량난… 늘 ‘보릿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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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네 차례에 걸쳐 북한의 식량난을 비롯한 보릿고개 상황, 당국의 대책, 국제사회의 우려와 지원 노력 등을 전해드렸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한 탈북민은 “일 년 내내 식량난에 시달리는 데, 보릿고개가 따로 있느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는데요.

[RFA 긴급진단, 북한 보릿고개]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이번 심층보도를 취재했던 천소람 기자와 함께 북한 보릿고개의 실상을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언제 보릿고개 아닌 적 있었나?”

  • 천소람 기자 . 4월 들어 북한이 본격적인 보릿고개에 들어섰는데요. 질문에 앞서 북한의 보릿고개를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네. 보릿고개는 지난해 수확한 식량이 바닥나고, 올해 농사지은 보리가 미처 여물지 않은 춘궁기를 뜻합니다. 제가 취재한 한 탈북민에 따르면 북한에서도 이 ‘보릿고개’라는 단어를 점점 사용하지 않는 추세라고 합니다. 이유가 흥미로운데요. 보릿고개는 일 년 중 특히 힘든 시기를 뜻하는 말인데, 지금 북한 주민들은 365일 내내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계속 힘든 상황을 겪고 있으니, 굳이 ‘보릿고개’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 그렇군요 . 북한 당국이 강력한 시장 통제를 하고 있고, 곡물 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북한 주민들이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의 보릿고개 시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기자] 지난 4월 15일이 북한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이었습니다.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겨지는 태양절이었겠지만,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상황은 그렇지 않은 듯 보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일본 ‘아시아프레스’의 북한 내부 취재협조자를 통해 지난 4월 초부터 10일까지 북한 양강도와 함경북도의 상황을 전해 들었는데요. 과거에는 가장 먼저 보릿고개의 타격을 받는 곳이 농촌이었지만, 요즘은 농촌보다 도시 주민에 미친 타격이 크고,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내부 취재 협조자에게 현재 상황이 어떤지 물어보니 양강도의 한 여성은 “생활고로 별 것 아닌 병으로도 사람이 쉽게 죽고 있다”고 전했고요. 같은 기간 함경북도의 또 다른 취재 협조자도 문자를 통해 “며칠 전 다리 밑에서 숨진 여자아이가 발견됐는데, 이 아이가 한동안 방치됐다가 처리됐다”고 전했습니다. 또 “봄이 되면서 도시에 꽃제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4월에 본격적인 보릿고개 시기로 들어서면서 유아나 지병이 있던 고령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서 사망자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도둑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내부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 농촌보다는 도시 주민에 미친 타격이 크다고 말씀하셨는데 ,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걸까요?

[기자] 농촌에도 분배된 식량을 다 소비해 식량이 없는 상태인, 이른바 ‘절량세대’가 나타나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도시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식량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 곡식을 직접 구해야 하는데, 현금 수입이 없어 곡식을 구매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시장을 통해 식량을 구해야 하는 도시 주민들인데, 북한 당국의 강력한 시장 통제와 그로 인한 현금 수입의 감소, 고물가 등으로 식량을 구매하기 어려워지면서 보릿고개의 직격탄을 맞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시장에서 쌀과 옥수수 등의 진열 판매가 중단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단속을 피해 개인 장사꾼의 집에서 암묵적으로 거래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식량에 대한 접근성과 구매력이 더 떨어지면서 도시 주민들의 생활고가 더 심해졌습니다.

  • 북한 당국의 통제와 보릿고개 시기가 맞물려 주민들이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 같은데요 . 지금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요?

[기자] 북한 내부 취재협조자에게 “요즘 무엇이 가장 힘든지”도 물어봤는데요. 양강도 주민은 “장사 통제”라고 답했습니다. 사실상 식량을 배급과 시장 거래에 의존하는데, 요즘은 장사뿐 아니라 차량을 이용한 운송까지 통제하고 있어 시장에서 팔 수 있는 원천이 거의 없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잇따른 부고 소식에 브로커 사기까지… 탈북민 사회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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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orth Korean woman puts her hands on her child suffering from malnutrition in a hospital in Haeju EDITORS NOTE: PICTURES TAKEN ON A GOVERNMENT CONTROLLED TOUR FOR REUTERS ALERTNET A North Korean woman puts her hands on her child suffering from malnutrition in a hospital in Haeju, capital of the area damaged by summer floods and typhoons in South Hwanghae province September 30, 2011. Isolated North Korea has appealed for food aid following the disasters and years of mismanagement. In South Hwanghae province, which traditionally produces about a third of the country's total cereal supply, officials say a savage winter wiped out 65 percent of the barley, wheat and potato crops. Then summer floods and storms destroyed 80 percent of the maize harvest, according to the province's governing People's Committee, and may have an impact on the October rice harvest. Only 30 percent of a U.N. food aid target for North Korea has been met so far.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the North's two biggest donors before sanctions, have said they won't resume aid until they are satisfied the military-led communist regime will not divert the aid for its own uses and progress is made on disarmament talks. Picture taken September 30, 2011. REUTERS/Damir Sagolj (NORTH KOREA - Tags: HEALTH SOCIETY POVERTY) (Damir Sagolj/Reuters)
2011년 9월 30일, 황해남도 해주의 한 병원에서 여름 홍수와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에게 북한 여성이 손을 얹고 있다. /Reuters
  • 그렇군요 . 북한 내 보릿고개 상황에 대한 한국 내 탈북민 사회의 분위기도 궁금합니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탈북민들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 같은데요.

[기자] 네. 3년 넘게 국경봉쇄가 이어지다 보니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지난해부터 잇따라 들려오는 가족과 지인의 부고 소식으로 탈북민 사회의 분위기는 굉장히 무겁다고 합니다. 한 탈북민은 이번 달 초에 북한에 있는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고요. 한국 ‘탈북자동지회’의 서재평 회장도 지난해 북한으로부터 많은 부고 소식을 접했다고 하는데요. 한 예로 본인이 연락하던 국경 지역의 40대 초반의 젊은 브로커도 어느 날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국경봉쇄와 북한 당국의 단속으로 가족과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가족이 사망한 후에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탈북민 출신의 지성호 한국 국회의원도 자유아시아방송에 “가족의 부고 소식도 힘들지만, 때로는 6개월 혹은 1년이 지나 사망 소식을 알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무거운 탈북민 사회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 부고 소식을 바로 알지 못하는 상황 ,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 등이 한국에 있는 탈북민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 네. 이로 인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탈북민도 있다고 하는데요. 단속과 통제 강화로 전화 통화도 어렵고, 가족의 생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 들려오는 주변 탈북민 가족들의 부고 소식이 그들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힘든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요. 그 상황에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 되지 않았을까’를 계속 생각하게 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기에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는 듯합니다.

  • 특히 탈북민 사회는 지금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이 클 것 같은데요 . 이 상황을 이용해 악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요?

[기자] 네. 국경봉쇄로 통신이 터지는 국경 지역이 아니면 가족들과 직접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인데요. 이런 가운데 일부 브로커들이 ‘당신 가족이 힘들다, 돈을 전해 줄 테니 송금하라’고 한 뒤 중간에서 가로채는 사건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답답한 사실은 가족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건데요. 정말 힘든 상황인지, 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말 가족이 당장 굶어 죽을 수 있는 상황일 수 있으니 돈을 안 보낼 수도 없고, 이 돈이 정말 가족에게 전달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없기에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북, ‘농업 변화’보다 ‘정책 변화’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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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iew shows a village near Pyongyang A view shows a village in the Onchon County near Pyongyang, North Korea August 12, 2005. Picture taken August 12, 2005. REUTERS/Yuri Maltsev (YURI MALTSEV/REUTERS)
2005년 8월 12일 북한 평양 인근 온천군 마을의 전경. /Reuters
  • 그렇군요 . 그렇다면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보릿고개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책은 나온 게 있습니까?

[기자]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나올 만큼 심각한 상황인데, 북한 당국이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내부 취재협조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양강도의 취재협조자는 인민반 별로 생활이 어려운 집을 조사한 뒤, 부양가족이 없는 경우에만 식량을 준다고 전했습니다. 인민반장이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일주일 치 옥수수를 가져다준다는 건데요. 하지만 모두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기준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양강도의 또 다른 취재협조자도 “농장 당위원회가 생활이 어려운 농장원과 문제가 있는 대상을 잘 관리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모두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만큼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당국에서 어려운 집을 도와줘야 하니 옥수수를 내라고 강요하고 있어 “당국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을 포기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무리하게 지원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합니다.

  • 이런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식량난의 대책으로 '과학 영농'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문제점은 없을까요?

[기자] 최근 북한 매체의 보도를 살펴보면 식량난 해결을 위해 과학 농업, 과학 축산 등 과학을 접목한 첨단 기술 개발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업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강조하는 ‘과학적 방식’이 만성적 식량난의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식량안보 전문가인 제리 넬슨 미국 미주리대 명예교수는 북한 당국이 선전하는 ‘고급 농업 기술’은 선진국이 말하는 기술과 많이 다르다고 평가합니다. 매우 초보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이라는 거고요. 한국의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 동북아연구원장은 북한이 현재 농사에 꼭 필요한 기초적인 종자, 비닐, 비료, 농약, 농기계조차 부족해 목표로 한 농산물을 생산하지 못하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결국, 기초적인 부분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학 농업과 첨단 기술 개발은 근본적인 대책 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 결국 , 당장 식량난을 해결하는 방안은 외부로부터 식량 지원을 받는 것일까요?

[기자]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정권이 하루빨리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최선의 대책일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권태진 원장은 북한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농업의 변화’보다는 ‘정책의 변화’를 통해 외부에서 부족한 양의 식량을 도입하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핵 문제를 해결 가능한 방식으로만 풀어간다면, 곧바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제사회의 협력이 실행될 거라는 겁니다.

인도적 지원 거부하는 북 당국에 '무책임' 지적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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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is Saturday Oct. 8, 2011 file photo, a North Korean farmer walks along a highway outside the eastern coastal city of Wonsan, North Korea. In late 2010, In late 2010, Pyongyang unveiled a uranium enrichment facility that could give North Korea a second route to manufacture nuclear weapons in addition to a plutonium-based program. In the meantime, million continue to go hungry, according to the World Food Program. The North suffered a famine in the 1990s that killed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and chronic food shortages persist in the country with little arable land. (AP Photo/David Guttenfelder, File) (David Guttenfelder/AP)
2011년 10월 8일, 북한 농부가 북한 동부 해안 도시인 원산 외곡의 고속도로를 따라 걷고 있다. /AP

  • 하지만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계속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

[기자] 북한의 식량난을 걱정하는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에서 인도주의 지원은 면제하면서까지 북한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국경을 철저히 걸어 잠그고 도움의 손길을 외면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북한은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식량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가’로 분류한, 외부 지원이 필요한 국가 중 한 곳입니다. 국제기구와 대북 민간단체들은 그동안 꾸준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왔지만, 북중 국경봉쇄의 장기화로 지원을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계식량계획도 북한 당국이 식량 지원 요청을 했지만, 식량 분배와 감시 절차에 관한 조율이 잘 이뤄지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군요 .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 정부와 연방의회, 대북민간단체, 대외원조 기관 등이 북한에 인도주의 지원을 할 의사를 밝혔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북한에서 아무런 요청이 없기에 지원에 나설 근거와 명분이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정 박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부대표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에 “미국 정부는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을 도우려 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한 의사를 분명히 밝혔지만, 실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북한에 있다”며 북한 당국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식량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선 외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미사일 개발로 대북 제재는 강화되고 있지만, 최근 유럽연합 이사회는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재 대상에서 면제한다고 밝혔고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대북 제재위원회 전문가단의 임기를 1년 연장하면서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를 유지해 인도적 지원의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 . 국제사회가 끊임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며 이를 외면하고 있는 북한 당국이군요. 지금까지 천소람 기자와 북한의 '보릿고개' 상황과 북한 당국의 대책, 국제사회의 움직임 등을 살펴봤습니다.

기자 천소람,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