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변화 고려한 북 농업정책, 여전히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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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올해 내세운 농업 정책은 북한 주민들의 소비 변화를 반영하고, 오랜 기간 구조적 개선을 염두에 둔 정책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북한 농업 전문가인 한국 권태진 GS&J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권 원장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북∙중 국경 봉쇄의 장기화 속에 북한이 자력갱생을 통한 버티기 전략으로써 식량 확보를 위해 농업에 집중했을 것이라면서 근본적인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대담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협동농장 대부 상환 면제는 일종의 '결자해지'

[기자]권태진 원장님. 최근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전원회의에서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 생활환경 개선과 농업 분야 생산량 확대 등을 강조했는데요. 이번 전원회의 결정문 내용에서 나타난 새로운 사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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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진]새로운 사실은 북한의 식량과 식품 소비에 대한 구조조정이랄까요. 북한 시장이 개방되면서 식품 소비 구조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최근 국제사회의 제재가 워낙 심했기 때문에 이를 크게 볼 수 없었지만, 2017년 이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의 소득이 어느 정도 늘었습니다. 순전히 시장의 확대에 따른 것이죠. 그래서 여기에 식량을 공급하는 측면에서도 수요의 변화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쌀과 옥수수가 기본적인 주식이었지만, 앞으로는 쌀과 밀가루가 기본적인 식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또 축산물, 과일, 채소, 그리고 버섯까지 계속 강조하는 것은 이같은 새로운 수요 변화, 그리고 가공 산업 발전을 통한 식품 물류의 공급을 원만히 하겠다는 바탕에 근거해 정책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이 지금까지 논의된 것과는 다른 새로운 내용이라고 볼 수 있죠. 지금부터는 식량 문제에 대해 단기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10년 정도의 구조적인 변화에 맞춰 대응하겠다는 메시지가 나온 것 같습니다.

[기자] 하지만 비료와 농기구가 부족하고 주민들에게 주는 인센티브, 즉 보상이 없어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김정은 정권이 어떻게 해소하겠다는 걸까요?

[권태진] 8기 4차 전원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보면, 농업 생산량 증대와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농업분야에 지원을 많이 해야한다는 이야기는 있습니다. '비료와 농기구 등 부족한 것들을 국가적으로 지원해야한다'는 말을 강조했는데요. 일단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농자재에 관한 국가 지원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기대를 해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인센티브(보상)라고 하는 것은 사회주의 책임관리제 부분이고 협동농장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목표 생산량이 너무 높기 때문에 협동농장 혹은 (농사에) 참여하는 농민에게 인센티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죠. 농업분야 뿐만이 아니고 일반 공장에서도 마찬가지일텐데요. 이것은 북한이 안고 있는 하나의 숙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어떻게 생산량을 확대할 수 있을까요?

[권태진]생산량 확대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된 건 없습니다만, 앞으로 10년 간 식량 생산 목표를 어느 정도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전략을 밝혔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농촌의 국가적인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원을 충분히 해야할 것이다' 라는 건데요. 농사를 지으려 하면 농지와 노동력, 비료나 농기구 등의 자본재가 필요하잖아요. 농지는 새 땅 찾기 등 간척을 통해 계속해서 확대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농지의 외형적인 확대가 어려울 경우에는 이모작 재배 확대를 통해 실질적인 재배면적을 늘리겠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밀이나 보리의 생산량을 늘려야 된다는 이야기도 하는데요. 밀이나 보리는 이모작을 통해 확대하겠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기자]노동력 부분에는 어떤 개선 노력이 있을 거라 보십니까?

[권태진]노동력은 결국, 협동농장 농민들의 노동력뿐 아니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는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한 농촌 지원을 통해 최대한 노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또 기계화를 통해 노동력을 대체하겠다고도 합니다. 이것은 기초적인 거죠. 또 자본재는 주로 화공업, 금속공업 등 후방 산업을 통해 농업 부분에 충분히 지원해야한다고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토지노동자본'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인데요. 사실은 이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죠. 인센티브를 어떻게 따로 주겠다는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겠다지 등의 이야기는 없었고요. 이미 '포전담당책임제'라던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등의 시스템을 강조했기 때문에 북한이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을 계속해서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기자]김정은 총비서가 "협동농장들이 국가로부터 대부를 받고 상환하지 못한 채무를 모두 면제하겠다"는 특혜조치를 선포했는데요. 이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근로 의욕이 고취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를 인센티브와 같은 개념이라고 봐도 될까요?

[권태진]형식상으로 인센티브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정부에 빚이 있는 것을 풀어버리겠다는 뜻인데요. 협동농장이 빚을 지게 만든 주체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탕감하겠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결자해지 즉, 국가가 협동농장에 빚을 떠안게 만들었으니 그것을 탕감함으로써 거둬들이겠다는 뜻이지, 이것이 실질적인 인센티브는 될 수 없습니다.

국경 봉쇄 해제해도 근본적 식량부족 해결 역부족

[기자] 그렇다면 북∙중 국경이 열리면 이같은 문제들이 해결될 거라 보십니까?

[권태진] (국경봉쇄가 풀린다면)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는 있습니다. 국경봉쇄는 두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일으키는데요. 하나는 주민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식품을 비롯해 생활 필수품을 제대로 수입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시장에서 생활 필수품 가격이 굉장히 많이 올랐거든요. 이것이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는데, 국경봉쇄를 해제하면 이전보다는 생활 필수품에 대한 수입, 특히 식품류에 대한 수입이 늘어날테니 아무래도 주민들의 고통을 어느 정도 덜 수 있습니다.

[기자]소비적인 측면을 짚어 주셨는데요. 생산적인 측면에선 어떻게 보시나요?

[권태진]생산 측면에서도 국경봉쇄로 농자재 수입이 제약을 받으니 이런 봉쇄를 풀면 농자재 수입이 늘 것이라 기대합니다만, 그렇게 되면 농자재 공급이 늘고, 농업 생산량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거죠. 그렇다고 북한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입니다. 국경 봉쇄를 해제하더라도 충분한 농자재와 생활 필수품을 사올 수 있는 형편이 못됩니다. 북한이 직면한 외화 부족때문에 국경 봉쇄 해제가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역부족입니다.

[기자] 현재 북한의 식량상황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소금 값이 급등했고, 고기는 커녕 식용유를 살 여유가 없는 주민들이 많다고 하는데요.

[권태진]한국 농촌진흥청의 추정에 의하면, 2021년도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전년보다는 7% 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일단, 2020년도 생산량이 굉장히 적었기 때문에 2021년 생산이 증가한 거죠. 자연재해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 식품과 관련해서는 국경 봉쇄 측면에서 영향을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지, 단순히 국경이 봉쇄됐다고 해서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역시 근본적인 곡물이나 식품류의 부족 문제는 앞으로도 해결되기 어렵고, 이것은 북한이 국제사회와 더불어 대화하고, 핵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핵문제를 언급하셨는데요. 이번 전원회의에서 핵문제는 따로 언급하지 않고 농촌 문제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농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제재완화가 필요할 텐데요.

[권태진]그렇습니다. 북한이 금속, 전기, 화학공업 부분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왜 농업∙농촌 문제만 중요하게 다뤘나를 생각해보면, 북한이 당장 핵문제 해결 의사가 별로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자력갱생을 통해 버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농업에 집중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요. 왜냐하면, 북한이 버티려고 하면 다른 것보다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바로 농업과 농촌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당분간 수입을 통해 식량수급안정을 도모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정책을 당분간은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력갱생을 통해 비교적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농업∙농촌 부분입니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당분간 북한이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않고, 버티기를 하다 때가 되면 북한이 경제 제재의 해제를 요구하는 형태로 갈 확률이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주로 도시와 중화학 공업 분야를 여전히 강조해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농촌 주민들의 불만들이 굉장히 컸습니다. 이를 정치적으로 잠재우기 위한 효과도 있기 때문에 농업∙농촌 부분에 중점을 둬서 논의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기자]네. 권태진 원장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 천소람,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