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코로나비루스에 대한 승리를 선언한 이후에도 북한에서는 코로나로 의심되는 발열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병원에서는 그 원인을 '코로나'가 아닌 '감기'로 진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방역 조치 완화로 경제 활동 재개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이전과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코로나 승리 선언 이후 내부 분위기를 노정민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양강도 , 함경북도 등 지방 도시에 발열자 여전
최근(8월 15일) 북한의 브로커와 전화 통화를 한 탈북민 김혜영 씨(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는 지난달 코로나로 사망한 지인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혜영] 80세 고령의 누구네 아버지가 코로나를 앓다가 숨졌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이제 코로나가 종결됐다고 하던데'라고 말하니까 (브로커는) '누가 그러냐'며 '그런 뉴스를 믿느냐'고 합니다.
이 브로커는 김 씨에게 여전히 발열자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곧이어 김 씨와 통화한 양강도의 지인도 ‘여전히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극심한 생활고에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일본의 대북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는 최근 (8월 17일~19일) 양강도와 함경북도 두 지역을 조사한 결과 지방 도시마다 ‘코로나에 대한 면역이 생기면서 코로나는 끝났다’고 선전하지만, 발열자는 계속 나오는 상황이라고 (8월 19일) RFA에 밝혔습니다.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특히 북한 내부 취재협조자의 주변인 중 코로나 의심 환자가 있어 병원을 찾았지만, 이제는 코로나가 아닌 감기 환자로 취급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한 가지 특징은 발열자가 나와서 병원에 가도 코로나로 취급하지 않고, 감기로 취급한다고 합니다. 주변에 발열자나 기침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인민반을 통해 문의도 하고, 병원도 가면 일단 감기로 다 취급하고, 코로나로 인정 자체를 안 해준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10일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를 열어 ‘코로나 위기가 해소되고, 북한이 비루스로부터 청정구역’임을 선언했기 때문에 각 지방 도시나 병원에서는 이를 뒤집는 판단을 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김 총비서는 ‘방역 전쟁의 종식과 승리’를 선언하면서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염병 확산 사태를 짧은 기간에 극복한 것은 놀라운 기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오랜 기간 북한의 보건∙의료 체계를 연구해 온 미국 존스홉킨스대 공중보건대학의 길버트 번햄 교수는 (8월 16일) RFA에 “북한의 열악하고 불완전한 시험 결과 (testing data)로 현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숫자를 조작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북한에서 발표한 수치를 믿을 수 없다고 평가절하한 겁니다.
한국 통일의료연구센터의 안경수 센터장은 (8월 15일) RFA에 ‘북한에서 발열자는 계속 발생하는 것으로 안다’며 오미크론비루스의 전파력은 세지만, 실제 확진자도 줄었고, 치명률도 낮기 때문에 북한 당국에서는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안경수] (코로나) 환자는 지금도 계속 나오는 상태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통계는 왜곡됐고 거짓이지만, 그 통계가 현상과 완전히 반대로 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충분히 북한 내부에서 통제가 가능한 상태라고 보고 있고요.

국경 지방도 방역 조치 완화 … 코로나 확인 더 어려워져
김정은 총비서의 ‘코로나 승리 선언’ 이후 노동신문은 (13일) ‘정상 방역 이행에 따라 전방 국경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가 해제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국가적인 답사 기관과 휴양지 관광의 정상화와 함께 거리두기, 시설 운영시간 제한 조치 등이 해제됐다고도 전했습니다.
실제 양강도와 함경북도에서도 방역 완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발열자와 기침하는 환자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자발적 외출 금지만 권고할 뿐 아파트나 동, 마을 전체를 봉쇄하거나 격리하는 조치는 없어졌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좀 뜻밖의 반응들이었는데, 국영 매체를 통해서 북중 국경 지역과 한국과 휴전선 인근 지역은 (방역 조치 완화를) 제외한다는 것을 명시했잖아요. 그런데 국경 지역도 많이 완화됐다고 전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마스크 단속인데, 이것도 많이 풀렸다고 합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착용하라는 정도고, 밀집 지역에 갈 때나, 열이 있는 사람, 그리고 회의 같은 집단 모임에 나갈 때는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지시는 있지만, 마스크 단속까지 하거나 착용하지 않는 사람을 잡아가는 것은 지금 없어졌다고 합니다.
또 지역 간 이동 제한도 완화됐는데, 이전에는 여행 증명서 발급이 쉽지 않았고, 이동 초소가 많아 이동 제한이 많았지만, 지금은 여행증명서만 있으면 이동할 수 있게 됐다고 이시마루 대표는 전했습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방역 조치를 완화했지만, 오히려 코로나 환자에 대한 구분이 더 불명확해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안경수 센터장은 백신이 전혀 공급되지 않았고, 전반적인 코로나 검사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방역 조치 완화는 북한이 코로나 환자 발생을 공식 인정했던 5월 12일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습니다.
[안경수] 북한 당국이 정치적으로 코로나 국면을 마감했습니다. 승리자 대회를 광범위하게 했지만, 백신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 상황과 똑같은 겁니다. 게다가 북한에서 환자는 계속 발생하고 있죠. 그런데 이제는 그 환자가 코로나 환자인지 모릅니다. 일반 동네에서는 (환자가) 끙끙 앓으면서 해열제를 먹는데, 코로나 검사는 안 한다는 거죠.
북한 주민 사이에서도 코로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김 총비서의 선언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도 엿보입니다. 당국의 발표와 달리 주변에서 발열자가 계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안경수 ] 북한이 정치적으로 80일 만에 유열자를 0명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극히 자의적이고 인공적인 겁니다. '우리는 80일 만에 유열자를 없애고, 91일 만에 이 국면을 마감했다'고 선언을 한 것이죠. 방역적인 입장과 정치적인 요소가 합쳐진 인공적인 세레모니라고 할까요.
[김혜영] 그렇게 해야 중국이나 다른 나라와 무역도 하겠죠. 북한에 코로나가 심하다고 하면 누가 무역하러 가겠습니까. 북한에 코로나가 많다고 하면 문을 열겠습니까. 안 열죠. (북한) 사람들도 안 믿습니다.

북 주민 , 방역 조치 완화에 경제 활동 재개 '기대'
김정은 총비서가 코로나로부터 승리를 선언한 배경에는 코로나 관리가 가능하다는 판단과 함께 북중 무역 재개를 통한 경제 성과를 꾀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또 코로나 국면 3년 차를 맞아 주민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경제적 어려움을 인지하고, 이른 시일 내에 코로나 방역을 이뤄냈다는 정치적 성과를 내세워 민심 악화를 막아보려는 것도 승리 선언을 앞당긴 이유로 꼽히고 있습니다. 여기에 ‘실제 코로나가 별것 아니다’라며 주민들의 경계심이 느슨해진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방역 조치 완화와 함께 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코로나 통제로 먹고사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졌는데, 당국에서 통제를 완화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반가워합니다. 집에서 못 나가게 하거나, 유통에 문제가 생기거나, 장사에 제한이 많은 것에 사람들이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통제가) 풀렸으니까, 사람들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죠. 이제 이동도 조금 가능하고 격리도 없어졌기 때문에 먹고살기 위해서 사람들이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반면, 북한의 정상적인 방역 지침에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회의적인 분석도 있습니다. 국면 전환을 위해 말만 바뀌었다는 겁니다. 또 코로나비루스가 언제든 다시 확산할 수 있다는 잠재적 위험도 남아 있습니다.
[안경수] 외부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무언가 변화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북한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봅니다. 주민들이 느끼고 체감하는 국면은 3년째 계속 똑같은데, 권력의 언어로 분위기 전환을 한 거라고 봅니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 국면에서 북중 국경 봉쇄의 장기화로 북한의 경제 상황이 계속 나빠지는 가운데 최근 가뭄과 수해 등으로 올해 북한의 작황이 예년보다 크게 감소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김정은 정권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코로나 극복’ 선언이 북한 사회와 경제에 새로운 기대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에 호응하듯 북한 당국이 방역 조치의 완화에 따라 주민들의 사업과 생산활동, 생활을 정상 수준으로 이행시키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주민들이 체감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