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 당국, 외상판매 단속 강화

0:00 / 0:00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가장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돈을 버는경제활동의 주체로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 김혜영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 합니다 . 혜영 씨. 안녕하세요. 북한에서'외상 판매 '라는 말이 는데요 .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

[김혜영] 네. 외상 판매라는 것은 돈이 없는 사람들이 물건을 먼저 받고, 이를 팔고 난 뒤에 이자와 함께 되갚는 행위를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외상이라 하면 나중에 물건값만 갚는 것인데, 북한에서는 빌려준 물건에 대한 이자까지 더하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출과 같다고 보면 되고요. 외상으로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요. 주로 환전상들이 이윤을 남기기 위해 돈을 빌려준 뒤 한 달에 얼마씩 이자를 받는가 하면, 장사하는 사람들은 먼저 물건을 외상으로 넘겨받고, 이를 모두 판 뒤에 이자까지 쳐서 되갚는 것인데, 북한에서는 외상 판매가 일반적이라고 보면 됩니다. 흔히 ‘대거리’, ‘이자돈’이라고 부릅니다.

  • 그렇다면 외상 판매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지 , 또 주로 누가 누구에게 외상 판매를 하 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김혜영] 외상 판매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이뤄집니다. 도시의 부자들이나 농장 간부들이 먹을 것이 없는 농민이나 주민들에게 수확 후 갚는다는 조건으로 높은 이자를 책정해 곡물이나 현금, 또는 생활용품을 빌려주는데요. 저도 북한에서 무역을 할 때 자동차를 거래하면서 중국 상인들에게 외상 판매를 했었습니다. 한때 자동차를 외상으로 줬다가 물건을 찾지 못해 중국으로 찾으러 간 적도 있었습니다. 시장에서는 물건이든 식량이든 외상 판매에 대해 항상 이자를 붙이는데요. 이런 외상 판매는 신용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외상 판매를 하지 않고요. 지인이나 친인척, 잘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은 대상에 한해서만 외상 판매를 한다고 보면 됩니다.

0428-2.jpeg
북한 남성 두 명이 평양의 한 지하철 입구에서 암달러를 거래하고 있다. / AFP
  • 외상 판매가 일반 상인들 농민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데 ,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에 대한 부작용은 없나요 ?

[김혜영] 당장 먹을 것이 없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외상을 통해 장사 밑천을 마련할 수 있고, 식량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됩니다. 생존 수단과 기회가 생기는 거죠. 외상으로 물건을 구한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원금과 이자를 잘 갚으면 빌려준 돈주의 신뢰가 쌓이고, 다음에 더 큰 외상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가는 거죠. 하지만 높은 이자 때문에 생활고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신고를 받거나 전담 단속반에 의해 외상 판매를 하는 현장이 적발되면 물건을 모두 몰수당하기도 하는데요. 그 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다 져야 합니다. 돈주들이나 힘이 있는 사람들은 몰수당한 물건을 되찾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 한 사람들은 다 빼앗기거든요. 그럼 갚아야 할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더 힘든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돈주들이 만약을 우려해 외상 판매를 잘 안 하려 하지만, 한다고 해도 절대 한꺼번에 큰돈이나 많은 양의 물건을 거래하지 않고, 적은 단위로 거래하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외상 판매에서 거래 규모나 이자율 등은 파는 사람 마음인가요 ? 일반적인 기준은 없습니까?

[김혜영] 그 기준이 천차만별입니다. 주는 사람 마음이지요.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가격이나 이자율 등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높은 이자로 더 많은 이익을 보려고 합니다. 물론 가족이나 친척 간에는 거의 원금에 가깝게 거래하거나 이자율도 낮게 책정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높은 이자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늘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처럼 시장 침체로 장사가 잘 안되는 때에 현금 유통도 원활치 않다 보니 약속한 원금과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외상 판매 때문에 오히려 삶이 피폐해지는 북한 주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0428-3.jpeg
평양 통일거리시장의 모습 / AP
  • 북한에서 '외상 판매 '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사회주의 제도를 위협하는 비사회주의 행위 이기 때문에 단속 대상이라 는 건데요 . 착취계급이 만든 나쁜 제도라는 거죠 .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 십니까 ?

[김혜영] 물론 외상 판매가 높은 이자율 때문에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를 보완하고 견제하는 장치나 제도를 만들면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요. 북한에서는 자본주의 방식이라면 뭐든지 단속하고 견제하려 합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생활 지원이 보장되지 않은 북한에서 외상 판매마저 없다면 어렵게 사는 지방 도시나 농촌 지역의 주민들, 특히 농민들이나 노동자들의 삶은 정말 힘들 겁니다. 단속을 강화할수록 돈이 있는 돈주들은 외상 판매를 꺼리게 되고요. 그러면 돈이나 식량 등을 융통할 곳이 없는 취약계층이나 노동자, 상인들은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당연히 물건이나 현금이 돌지 않기 때문에 경기 침체도 불러오게 되고요. 제도적 보완 없이 무조건 외상 판매만 금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외상 판매가 북한 무역이나 시장에서 건전하게 자리 잡을 방법은 없을까요 ?

[김혜영] 한국에서는 신용과 담보가 있으면 은행에서 낮은 이자율로 돈을 대출해주지 않습니까. 다른 의미의 외상 판매라 할 수 있는데요. 돈이 없는 사람들이 외상으로 물건이나 돈을 먼저 융통하고 나중에 갚는 제도가 제대로 정착한다면 장사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당장 생활이 어렵고 밑천이 없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기준에 따라 싼 이자로 먼저 빌려주면 생활에도 보탬이 되지만, 돈을 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개인이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당국에서 정해준다면 더 많은 사람이 공평한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엄격하게 단속만 하니까 오히려 부작용만 더 생기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아무리 통제한다고 해도 장사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북한에서 외상 판매는 개인끼리 오래전부터 해 왔던 수단인데, 북한도 한국처럼 제도화된 대출, 즉 외상 판매 제도를 통해 많은 사람이 장사 밑천도 만들고, 공정하게 거래하면서 기분 좋게 돈을 벌 수 기회를 갖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 오늘은 북한의 외상 판매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북한무역일꾼 출신 탈북민 김혜영 씨와 함께 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